지난 밤 숙면을 취해서인지 목이 따끔거리는 걸 빼면 컨디션이 좋다.
산장에서 아침을 먹고 짐을 챙긴다.
친절한 모건은 매번 우리 짐을 옮겨다 준다.
가방이 작아서 그런가?
아니면 지난 번에 라면을 먹은 값인가?
아니면 착각일지라도 우리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었나?
10분 정도 차로 이동 후 오전 8시 15분경 트레킹을 시작했다.
싸늘하지만 상쾌한 공기가 반긴다.
900m를 올리고 700m를 내려간다더니 초반부터 계속 오르막길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경사가 가파르지 않다는 것.
흐린 날씨가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이미 다양한 날씨를 경험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며칠 내리 흐리고 비가 내려서 제대로 경치 감상을 못 했는데
마지막날이라고 생각을 하니 모두들 몹시 섭섭한 눈치이다.
이러다가 몽블랑 정상을 못 보고 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태산이고.
몽블랑 둘레길이라고 해서 어디서나 몽블랑 정상을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방향이 전혀 아니었는지 아니면 날씨 탓인지 몽블랑 정상을 볼 수 없었다.
맞아. 여기 와서 몽블랑 정상을 못 보고 가면 안 되는데...
얼마쯤 오르자 가이드 비는 멀리 내려다보이는 마을을 가리키며
로마시대부터 있던 스위스 전통마을이라고 일러 준다.
구획 정리가 잘 되어 보이는 마을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아주 깔끔하고 정겨워 보인다.
며칠 전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니스에서 테러가 일어났었지.
가이드 비의 설명에 의하면 테러가 일어난 날이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날이라고 하던가.
그런 날을 기해 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토록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자신이 살기를 바라지는 않았을텐데
벌레 한 마리 죽이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리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가볍게 여길 수 있는지...
세상에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는가.
우리가 트레킹을 하는 동안 테러에 이어 스위스 베른강에서 실종된 한국인 뉴스, 터키에서 일어난 쿠데타까지 신경 쓰이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 일행들에게 오는 소식이 걱정으로 꽉 찼나 보다.
산 속에서야 무슨 일이 있으려고?
나도 가족에게 문자 한 통 보내주고 TMB 트레킹 마지막날을 기분 좋게 보내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다.
천천히 걷는다.
다들 기운을 내어 잘 걷는다.
일행들 기분도 좋아 보이고, 날씨도 어제에 비해 아주 우호적이다.
첫날은 아주 더웠고 나머지 나흘은 비를 맞았는데 마무리는 제대로 하게 해줄 모양이군.
시기적으로 7월이 우기라고 하니 어쩔 수 없기는 했지만.
걷다 보니 돌로 쌓은 이상한 형태의 건물이 보인다.
사람들이 사는 공간 같아 보이지는 않는데 돌로 쌓았으니 견고해 보이는군.
가이드 비의 말에 의하면 축사라고 한다.
경사를 이용해 짓는 바람에 언뜻 보면 굴처럼 보이는 곳에서 몸을 쉴 소들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사람들이 사는 마을까지 매번 소나 양을 몰고 왔다갔다 하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산에 이런 건물을 짓는구나.
차갑던 날씨가 많이 풀렸다.
아침에 입었던 우모복을 벗고 얇은 재킷으로 갈아 입었다.
이러니 배낭에 옷을 골고루 넣어 가지고 다닐 수밖에 없겠지.
숨이 찰 무렵 사람들이 경치 구경을 한다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만년설이 쌓인 봉우리에 구름이 걸쳐 있는 전형적인 알프스의 모습이다.
그래도 다시 오기 쉽지 않은 곳이다 보니 연신 카메라를 들이댄다.
가이드 비는 멀리 보이는 건물을 가리키며 그 산장에는 들어가지 말라고 이른다.
빨간 창문을 가진 멋진(?) 집인데 사람들이 불친절하다고 소문이 났단다.
지금까지 만난 스위스 사람들은 대부분 무표정하고 무뚝뚝해 보였다.
관광대국인데 왜 그럴까?
코발트빛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빨간 창문의 산장을 바라보며 구시렁거린다.
설렁설렁 걸어서 산장 근처에 갔다.
사방이 뻥 뚫린 느낌에 조망이 좋다.
그런데 고도가 있고 바람이 불어서인지 금세 추워진다.
다시 배낭을 내린 후 옷을 바꿔 입고, 모자도 바꿔 쓰고, 장갑도 끼고...
바쁘다 바빠.
몽블랑 정상이 기다렸다는 듯 장엄한 모습을 하고 우뚝 서 있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몽블랑 정상이 보이는 곳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우리도 각자 사진을 찍고 단체사진을 찍기 위해 모여 섰다.
몸이 안 따라주는데 펄쩍 뛰라는 주문에 억지로 뛰어보기도 하고.
가이드 비가 그만 내려가자는 신호를 보낸다.
여기는 다시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넘어가는 경계지점이다.
결국 우리는 시계방향으로 몽블랑 주위를 걸어 三國을 걸은 후 원점회귀하는 셈이고.
'여행기,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폭염 속 광교호수공원을 걷다 (0) | 2016.08.25 |
---|---|
알프스 TMB를 걷다 ; 마지막날 (포클라즈 고개 - 샤모니) 20160715 (2) (0) | 2016.08.19 |
알프스 TMB를 걷다 ; 다섯째날 ( 라 폴리 - 포클라즈 고개 ) 20160714 (2) (0) | 2016.08.14 |
알프스 TMB를 걷다 ; 다섯째날 ( 라 폴리 - 포클라즈 고개 ) 20160714 (1) (0) | 2016.08.12 |
알프스 TMB를 걷다 ; 넷째날 ( 쿠르마이어 - 라 폴리 ) 20160713 (4) (0) | 2016.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