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155

한해를 보내며

12월이다. 사소하다면 사소한 일이지만 해마다 이맘때면 빼놓지 않고 하는 일이 있다. 원하는 내년도 수첩을 구입하는 일이다. 이번에도 네 군데 헤매다 어제 구입했다. 동네 문구점은 미리 주문해야 가능하다고 하고, 영풍문고 두 곳은 또 하필 그 사이즈가 빠졌다고 한다. 무려 네 번이나 버스와 전철을 갈아타고 교보문고에서 수첩을 구하고 나니 저절로 미소가 지어질 만큼 기분이 좋았다. 내가 성인이 되면서부터 줄곧 사용하던 수첩이 양지사 72면짜리 수첩이다. 지난 수첩을 주욱 꽂아 놓았는데 일기를 쓰지 않은지 오래 되었으니 거기 내 인생이 모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마트폰 일정표도 사용하지만 아직도 아날로그 방식으로 연필로 쓴 메모가 수첩에 다 적혀 있다. 물론 가계부도 그렇게 연필로 쓴다. 역시 성인..

살며 사랑하며 2022.12.31

사람 사는 냄새

어제는 이러저러한 핑계로 안부 전화를 미루고 오늘 비로소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담이 결려서 고생을 하시는데 병원에는 안 거르고 다녀 오셨는지 기분은 어떠신지 궁금했다. 조금 덜 했다가 콩 타작을 하느라 더 심해지셨단다. 하나마나한 말을 하는 것도 이제 지쳐서 더 이상 아무 말씀 안 드리고 그저 병원은 꼬박꼬박 다니시라고만 했다. 전에는 그 놈의 콩 덜 먹으면 되지 꼭 그렇게 70대 노구를 이끌고 무리를 해야 하느냐고 화를 내었는데 일년 농사 지은 것을 눈으로 보면서 수확 시기를 놓치는 것은 농사를 평생 지으신 어른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 말씀도 안 드린다. 어제는 해가 지고 늦은 시간까지 콩타작을 하는 어머니를 보고 우리집을 짓는 인부 한 명이 이런 소리를 하더란다. " 할머..

살며 사랑하며 2022.09.02

말 한 마디의 위력

책을 읽다가 오늘 하루 내가 누구를 기분좋게 했나 하는 구절이 나왔습니다. 생각해 보니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단지 한동안 격조했던 친구에게 먼저 안부 전화 한 일 밖에. 그 일도 누군가를 기분좋게 한 일인지 모르지만... 어제는 비가 출출 오는데 얼굴도 푸석푸석하고 마음도 축 가라앉아 영 모든 일에 의욕이 안 났습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 있는지라 아침에 독서 치료 수업 다녀오고 오후 일 나가기 전에 자동차 리콜 대상이라고 연락 온 것을 보고는 서비스센터에 점검을 받으러 갔습니다. 서비스센터에 가면 누군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늘 친절하게 물어 주더군요. 절차와 기계적인 것에 어두운 사람에게 친절한 말 한 마디는 용기가 되기에 충분하지요. 무슨 일로 왔느냐는 질문에 대답하고 사무실로 들어가는데 " 참..

살며 사랑하며 2022.06.19

이런 자식 사랑

며칠 전 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사실 코로나 19가 기승을 부려 모두들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한 상황이라 안부를 묻는 것이 일상화된 느낌이다. 게다가 추가접종 후유증은 없는지도 염려가 되고 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니가 손주를 본 이야기로 넘어갔다. 시험관 시술을 통해 어렵게 얻은 쌍둥이라 언니네 부부 관심은 엄청나다. 코로나 시국이라 손주가 태어나도 쉽사리 볼 수 없다는 말에 수술로 세상을 구경을 한 손주가 신생아실로 옮기는 과정에서라도 잠깐 얼굴을 보겠다고 대학병원 수술실 앞에서 대기중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오빠한테서 전화가 왔다고. 둘째 결혼 소식 있느냐는 이야기를 뜬금없이 물어보기에 짝이 없는데 무슨 결혼이냐고 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다가 손주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느냐는 이야기도 ..

살며 사랑하며 202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