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공기가 싸늘하다.
오늘도 고생하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되네.
가이드 비가 추위와 비에 대비해 단단히 준비를 해야 한다고 겁을 준다.
이렇게 아침부터 추운 것도 어제 산꼭대기에 눈이 와서 찬 공기가 내려왔기 때문이라는 소리가 들린다.
정말 알 수 없는 날씨이다.
차를 타고 30분 가량 달려 호숫가에 도착했다.
빙하가 녹아서 된 호수라는데 그 빛깔을 무어라 표현할 수가 없다.
물고기도 많다는데 찬 물에 적응이 되어 진화를 한 것이겠지.
그러고 보니 강태공도 많구만.
흐르지 못한
아득한 곳에
수면처럼
흔들리는
천년의 그리움
바람이 불어오면
출렁이다가
흔들리다가
날선 눈빛
시퍼런 그리움에
풍덩,
투신하는
투신하는 별
호수는
혼자 운다.
권영민의 < 湖水 > 전문
오전 9시 10분, 완만한 경사를 따라 오른다.
길도 좋고, 공기도 산뜻하니 날씨만 도와주면 금상첨화이겠는데...
슬금슬금 구렁이가 담 넘어가듯 꼬리를 감추는 雪峰의 구름을 보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이곳 날씨는 예측불허이니 두고 보아야겠지.
몸이 풀리면서 더워진다.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걷는데 하늘이 어두워지네.
그러더니만 쏟아지는 비.
오늘도 날씨는 나를 배신했다고 혼자 구시렁거린다.
아무리 준비를 해도 악천후에는 속수무책인 걸
인간이 무슨 수로 자연을 당할 손가.
비옷을 입고, 모자를 바꿔 쓰고, 잠시 하늘을 원망해 본다.
몸이 젖어들자 또 와들와들 떨린다.
장갑까지 찾아 끼지만 크게 달라질 건 없다.
그러다가 비도 쉬어가려는지 잠시 구름이 걷혔다.
날씨에 따라 마음도 수시로 변덕을 부린다.
가다가 카페에 잠시 들렀다.
볼일도 보고, 간식도 챙겨 먹고, 물도 마시고...
쉬다가 외국인들과 섞여 트레킹을 하는 다국적팀에서 한국인을 만났다.
한국에서 잠깐 고민을 했지만 영어로 설명을 하기는 마찬가지일테니 그것도 괜찮은 방법 아닐까 싶다.
빗방울이 다시 떨어진다.
다른 팀들도 모두 중무장을 하고 걷는다.
그런데 프랑스 젊은이팀 가이드가 우리를 보고 농담을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인터뷰를 하는 시늉을 하면서 나 보고는 자기네 팀과 함께 가잔다.
아이고! 사양하겠습니다.
공연히 나이 먹은 사람 구박하려는 건 아닌가요?
쉬지 않고 앞만 보고 걷는다.
하늘이 멀게지면 혹시나 비가 그칠까 기대를 하면서.
하지만 하늘은 비를 눈으로 바꾸었다.
'7월의 눈'이라...
전에 읽은 소설 제목 아니었나?
비보다는 분위기도 좋고 기분도 한결 낫다.
다만 추위가 더해졌다는 것.
변화무쌍하다는 말이 실감나는 날이다.
점심을 먹으려던 산장에서는 만원이라고 문전박대를 당했다.
한국 같으면 어떻게라도 비집고 들어가련만 산장에서는 이런 날씨에 자리 없다고 냉정하게 내쫓는다.
눈이 내리면서 녹기는 하지만 다시 배낭 메고 하염없이 눈 속으로 나선다.
점점 굵어지는 눈발!
높이가 있으니 다소 추울 수는 있지만
알프스 산자락에서 한여름에 눈을 만나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역시 큰 산은 큰 산이다.
물론 전에도 여름 눈에 시달렸겠지만 노랗고 빨간 꽃들은 이 눈을 어찌 맞을꼬?
이제 그런 환경에 적응된 DNA를 가지고 있을까?
공연히 안쓰러워 시린 손을 비비며 눈길을 준다.
배가 고프고 지치니 먹는 생각만 나는지
여기저기에서 워낭 소리 들리는데 소고기는 본 적도 없다는 볼멘소리가 들린다.
하기는 걷는 동안 만난 것이 주로 소떼들인데 스테이크 한번 구경을 못 해 보았네그려.
나도 엊저녁 혹시나 하고 기대를 했는데 '역시나'였지.
지금쯤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때도 되었다.
누구는 냉면이 먹고 싶다고 하고,
누구는 얼큰한 김치찌개가 생각난다고 하고,
누구는 된장찌개가 떠오른다고 한다.
보통 해외 여행이나 트레킹을 다녀도 한국 음식을 한번쯤은 먹는데 얄프스 산 속에서는 기대할 수가 없지.
물론 외국에서 한국 음식을 먹어도 한국에서 먹는 것과 맛이 다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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