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베트남 달랏 넷째날 (3)

솔뫼들 2017. 12. 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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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고 돌아 나오는 길.

버스는 천천히 달린다.

시내이고 숙소에서 가까우니 언제든 오다가다 들를 수 있는 곳이라고 하여 뒤로 미룬 달랏역으로 향하는 길이다.


 1932년 프랑스 건축가가 설계했고 1938년 문을 열었다는 달랏역은 식민지 시대 호치민까지 연결되어 있었는데 전쟁으로 파괴되었다고.

지금은 7km 정도 복구해서 관광열차가 다니고 있다는데 어제 갔던 영복사까지 운행된단다.

달랏역사 안에 들어가니 예전 열차 시간표와 요금표 등이 붙어 있어 아련한 느낌을 자아낸다.



 안쪽으로 들어가니 관광용으로 있는 열차에 매달려 사진을 찍는 사람, 역무원 복장을 하고 사진을 찍는 사람, 철로에서 날아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사람 등등 다양하다.

그런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네.

우리나라에도 폐선이 된 곳을 관광지로 만들어 개방하는 곳이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서울과 부산에도 있고, 강원도에도 있고...

그런 폐선로를 걸어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어떤 향수에 빠져든다.


 80년대 비둘기 열차라는 완행열차가 있었다.

주말만 되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시골집에 다니러 가는 학생들로 꽉 찼었지.

좌석은 엄두도 못 내고 통로에 편하게 서 있을 수만 있어도 다행이었다.

강의 끝나고 서둘러 그 열차를 타면 대부분 서울로 대학을 온 선후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다 보니 고향역에 내려 밥 한끼 함께 하다가 연애로 연결이 되기도 했고.



 그때 역 앞에는 상아탑 다방, 대부분의 기차역 앞에 있는 역전 다방, 역마차 다방 등등 다방이 성행했다.

어느 다방을 더 자주 갔더라?

아마도 내가 원하는 노래를 더 잘 틀어주는 DJ가 있는 곳을 자주 드나들지 않았을까 싶다.

누가 신청한 노래가 더 자주 나오나 친구들과 내기를 하기도 했었지.

지금도 그 시절 유행한 노래가 나오는 곳에서는 나도 모르게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추억에 젖곤 한다.


 플랫폼에서 서성이면서 생각에 잠긴다.

그때 그 친구들이며 선배며 모두들 무얼 하며 살고 있을까?

희끗희끗 흰머리를 날리며 남은 인생 후반기를 어떻게 살아갈까 나처럼 고민하고 있겠지.



기차는 아직 오지 않았다

부드러운 능선 위로

갑자기 쏟아지는 붉은빛

어디까지나 파고드는 고요함

녹슨 철길에 뻗는다


한때나마 나도 누구에게 뜨거운 사람이었는가

기차가 지나가듯이 벌판이 흔들리고

잘 익은 들녘이 타오른다

지는 해가 따가운 듯 부풀어 오르는 뭉게구름


기차를 기다린다

지나간 일조차 쓰리고 아플 때에는

길 위가 편안하리라



 김수영의 < 간이역 > 전문



어제와 그제 비 때문에 부지런히 일정을 소화해서인지 오늘은 좀 넉넉하게 시간을 준다.

달랏역 앞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노점상에서 내기에 진 부산 혜란씨가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돌리는데 어쩌다 보니 모든 사람에게 돌리게 되었다.

아이스크림 노점상 아저씨 얼굴이 환해지는 걸 보는 우리도 기분이 좋다.

혹시 20명 분량을 팔고 아이스크림이 바닥나지 않았을까?



 잠깐 자수박물관 관장의 사저에 있는 또 하나의 박물관에 들렀다가 달랏 시장으로 향한다.

시간을 정해 주고 호수 근처에 주차된 노란 버스 앞에 모이라는 센터장님 말씀에 "저 버스 가 버리면 어쩌나요?" 하는 항의가 이어졌다.

결국 센터장님이 두 손을 들고 근처 롯데리아 앞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오늘 커피농장에서 5년짜리와 7년짜리 나무로 당하시더니 이번에는 움직이는 걸 목표로 정해 얼굴도 벌게지며 항복하신게다.


 혼자서 설렁설렁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부산팀을 만나 함께 걸었다.

정말 없는게 없다.

온갖 채소와 꽃, 육류, 과일, 의류 등등.

우리나라 난전 노점상처럼 주로 아주머니들이 물건을 앞에 놓고 손님들을 부른다.




채소와 과일을 층층이 쌓아 놓고 파는 곳에서는 낯선 것도 보인다.

알고 보니 아보카도였다.

아보카도 기름이 건강에 좋다고 한창 매스컴을 장식하더니 저렇게 생긴 거였구나.

겹겹이 꽃봉오리처럼 보이는 건 바로 여기에서 아티소라고 부르는 아티초크.

차로 마시는 것이다.


시장 구경은 늘 재미있다.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방향을 잘 보면서 건물에도 들어가본다.

건물 안은 주로 의류와 신발류, 가방 등등이다.

부산팀 중 2명은 옷을 골라 하나씩 사서는 바로 입고 나선다.

순발력도 좋군.



 그 와중에 속도를 내고 달리는 오토바이를 피하려면 때로 곡예를 부리듯 움직여야 한다.

어떻게 그리 사람 사이, 오토바이 사이를 요리조리 잘 빠져나갈까?

정말 대단한 재주다.

물론 여기에서 살다 보면 적응이 되겠지만 일단 오토바이만 보면 흉기처럼 느껴져 무섭네.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거리 음식의 맛이 궁금해 먹어 보고 싶은데 맛있는 저녁 식사를 위해 참는다.

사실 시장 구경의 재미는 그런 것 아닌가.

어릴 적에 어머니 따라 쫄래쫄래 시장에 가는 것도 다 그런 이유였지.

다음에 다시 찾게 된다면 꼭 야시장에 와서 맛난 거리 음식을 먹어 봐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한 바퀴 돌고 시장을 빠져 나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한쪽에서 꽃시장이 철수하고 옷시장으로 변모를 시작한다.

새벽에는 도매시장, 낮에는 꽃시장, 밤에 열리는 야시장에서는 옷시장으로 변한다더니 막 그런 순간이군.

본격적인 야시장 구경을 못 하는 것이 못내 아쉽기는 하지만 모이기로 한 장소로 발길을 옮긴다.


 일행들이 모여 있는데 보니 봉지봉지 손에 든 것이 많다.

건과일과 딸기잼, 과일효소를 구매한 사람이 많은 모양이다.

누군가 어르신들께 오늘 본 중에서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는 질문을 했더니 정신이 없어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는 대답을 하셨다고 한다.

하긴 나도 순서가 마구 뒤죽박죽 헷갈리니 그러실 만도 하다.

아침부터 저녁 시간까지 강행군을 함께 하시는 것만도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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