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양희경 모노 드라마 '늙은 창녀의 노래'를 보고

솔뫼들 2006. 2. 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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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늙은 창녀의 노래'라니....

제목을 듣고는 의아하게 여기고 거부감을 일으켜 하필 그런 연극을 보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제목이 이상스레 사람을 끄는 면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제목 속에 인생이 압축되어 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무튼 어렵사리 표를 구해 대학로로 달렸다. 대학로는 여전히 젊음으로 들끓었고 열기가 넘치는 것처럼 보였다. 가끔씩이라도 이런 공기를 함께 하면 나도 더불어 젊어지지 않을까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늙은 창녀의 노래'는 모노 드라마이다. 모노 드라마는 배우의 모든 역량이 다 표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관록있고 연극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만 할 수 있다.

 내가 모노 드라마를 처음 본 것은 대학 다닐 때였다. 대학 교수님께서 하신 너희들 아니면 우리 나라 연극계가 무너진다는 말씀 한 마디에 라면으로 저녁을 때우면서도 연극판을 쫓아 다니게 되었고 지금까지 연극을 가까이 하게 되었다. 그 때 처음으로 본 모노 드라마가 삼일로 창고 극장에서 고 추송웅이 열연한 '빨간 피터의 고백'이다. 그리고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몇 년 전 암 투병을 하던 배우 이주실의 작품을 하나 더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 작품은 양희경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작품이다. 10년 전에도 공연했다고 하는데 하긴 배우의 말대로 내가 그 때 이 작품을 보았다면 지금보다 훨씬 느끼는것이 적었을 것이다. 배우 양희경은 30대에 이 작품을 보면  느낌이 30%라고 잘라 말한다. 그만큼 삶의 애환이 녹아 있는 작품이다.

 18살에 사창가로 들어와 20년 넘게 한 곳에서 보낸 창녀의 삶. 어린 나이에 세상의 때가 묻지 않고 그런 곳에 왔기 때문인지 자신을 그런 곳으로 이끈 사람을 첫사랑이라 믿으며 살아가는 창녀가 41살 동갑내기 손님을 만나 자신이 살아온 얘기를 들려주는 것이 이 연극의 주축이다. 이제 자신을 지탱하게 해 주는 것이 손님이고, 어떤 손님이든 다 똑같이 여겨지는 경지에까지 이르러 늙은 자신을 선택한 손님에게 고마워 한다. 돌아가지 못 하는 고향에 대한 향수를 꿈속에서 달래며 창녀는 팍팍한 현대인에게 묻는 듯하다. 당신들은 과연 돌아갈 고향이 있는가고. 절절히 삶을 풀어내는 구수한 남도 사투리에 절어 있다 보면 어느 새 한 시간은 후딱 지나가고 내 눈시울도 더불어 축축해져 있다.

 

 겉모습만 다를 뿐이지 우리 모두는 한 사람의 이방인, 소외된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런 사실을 애써 외면하며 하루하루 꾸려가는 삶에서 초라해지는 우리는 주인공 창녀에 다름 아니다. 어쩌면 그보다 못한지도 모른다. 창녀가 간직한 순수함을 우리는 이미 어디에다 팽개치고 삶에 쫓겨 그렇다는 비루한 변명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송기원의 단편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이 연극이 작가가 직접 겪은 실화라는 사실을 기억하며 목포 어느 골목을 가면 몇 살 더 먹은 그 창녀가 아직도 넉넉한 가슴으로 세상을 다 품으며 있을 것만 같다. 배우 양희경의 푸짐한 몸매와 구성진 노래, 그리고 원숙한 연기가 이 작품을 더욱 빛나게 해 주었음을 힘주어 얘기하고 싶다. 모든 이를 위로하고 있는 이 작품이 영원히 무대에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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