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의 한자를 보기 전까지는 무슨 뜻일까 생각했다. 한자를 보고 나서는 다시 한번 생각했다. 푸른 제비라...
'청연'이라는 제목의 영화는 우리 나라 민간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최초'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입지전적인 이미지가 있겠지만 시대적으로 어려운 일제 강점기이기에 더욱 그 의미가 강렬한지도 모르겠다.
가진 것 없고 나라도 자신에게 해 줄 것 없는 상태에서 아무리 다른 사람이 무어라 해도 그는 '난 사람'이었다. 친일을 했다거나 민족의식이 없다거나 하는 말은 한낫 제삼자가 할 수 있는 말일 뿐이다. 그런 시대에 가만히 앉아 있는다고 나라를 위하고 민족을 위하는 것이 아닐 바에는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꿈을 이루는 자세가 훨씬 나은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하겠다.
모든 것이 낯선 나라 일본에서 돈도 없으면서 여자 몸으로 비행사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용기였을 것이다. 왜 비행을 그렇게 좋아하느냐는 말에 주인공 박경원은 그렇게 말한다.
" 하늘에서는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여자든 남자든 중요하지 않아."
어쩌면 그가 살아오는 과정에서 피맺히도록 느껴온 말을 한 마디로 압축한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시대적인 상황에서 잃게 되고 연인이었던 한지혁의 말대로 사랑을 잃는다면 원하는 것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해서 장거리 비행을 하게 되지만..
결과는 푸른 제비가 많이 찾아오는 고향에 가지 못 하고 악천후에 부딪혀 일생을 마감하는데 나는 주책스럽게도 누선에서 한없이 눈물이 나왔다. 입지전적인 인물이 그렇듯이 내용은 전형적이다. 하지만 요즘 같이 무엇이든 쉽고 편한 일만 찾는 세태에서, 그리고 무엇이 가치있는 일인가를 깊이있게 생각하지 않는 세태에서 한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자유란 무엇일가? 사실 나는 자유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아무런 제약없이 할 수 있는 상태를 주인공은 자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훨훨 날아갈 수 있는 방법을 택한 것이 비행 아니었을까? 이 영화를 보며 정말 배움도 남녀 차별도 없는 곳이 주인공이 택한 하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그래도 남녀 차별이 존재하고 여자라는 편견에 부딪힐 일이 많다. 모든 것을 극복하고 자신의 꿈을 이룬 주인공에게 찬사를 보내며 열연으로 그 모습을 재연한 배우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누구든 최선을 다한 사람에게 세상은 공평하게 모습을 드러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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