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되자마자 예상을 깨고 선전하고 있는 영화 '왕의 남자'는 사극이다. 근래 들어 사극이 영화로 만들어져 성공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장르에 관계없이 참신한 소재 발굴과 다양한 볼거리, 그리고 강렬한 배우들의 연기는 수준 높아진 관객들을 만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바로 '왕의 남자'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원작은 '이 (爾)'라는 소설이고, 연극으로 만들어져 이미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라고 한다. 조선왕조실록에 딱 한 줄 공길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데 거기에 상상력을 동원해 생명을 불어 넣어 한 편의 멋진 드라마를 만들어낸 작가의 솜씨에 찬사를 보낸다.
광대 장생은 공길과 양반들의 손에서 놀아나지 않겠다며 한양으로 올라와 무리를 규합해 놀이판을 벌인다. 그 와중에 한창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던 임금 연산과 장녹수를 풍자하는 판을 벌이다 임금을 능멸했다는 죄목으로 잡혀 들어가는데...
임금을 웃기면 죄가 사해진다는 말에 궁궐에서 판을 벌이다 공길이 임금의 눈에 띄어 임금에게 불리어가고, 공길과 특별한 관계였던 장생은 그 길로 궁궐을 떠나려 하나 말리는 공길을 두고 떠날 수 없어 머뭇거리는데 판을 벌일 때마다 사람이 죽어나가는 광경을 보며 머리를 흔든다. 그 과정에서 당파 싸움으로 목숨을 잃은 생모를 비유한 놀음을 하는 광대를 보고는 대비까지 죽이는 연산에게 공길은 연민을 느끼게 된다. 궁중의 음모와 암투 속에서 오로지 '자유'만이 광대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장생은 공길에 대한 미련 때문에 눈까지 잃고 마지막에 자신이 무엇에 눈이 멀어 살았는지 하나하나 열거하며 공길과 마지막 판을 벌인다.
이 영화에서 우리에게 폭군으로 낙인 찍힌 연산을 자유를 그리워하고 모정에 대한 굶주림에 지친 한 인간으로 표현한 점, 그리고 광대를 자유를 위해 목숨까지 내 놓을 수 있는 자유인으로 그린 점, 또 지존의 임금과 가장 미천한 광대를 한 자리에 놓고 비교한 점 등이 특히 마음에 와 닿는다.
코미디에 가까운 역사물인 줄 알고 보았던 영화에서 무겁고도 인간적인 고통과 연민을 느껴서 그랬는지 영화관을 나오며 마음이 가라앉았다. 어쩌면 장생이 마지막에 했던 말은 임금에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었을까. 무엇에 눈이 멀어 살았는가고.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너는 무엇에 눈이 멀어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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