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개봉했던 영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그 당시 보려고 했는데 게으름을 부리다가 그만 놓쳐 버렸다. 영화관에서 제대로 보아야 하는 영화라고 생각했지만 어쩔 수 없이 비디오를 빌려다 토요일 오후에 보았다. 집에서 비디오를 보는 것을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인데 오랜만에 편안한 자세로 차 한 잔 앞에 놓고 보는 맛도 괜찮았다. 이 영화는 작품성을 인정 받아 뮤지컬로도 인기를 끌었고 올 봄 다시 공연된다고 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와이키키 브라더스'라는 4인조 밴드의 기타리스트 성우이다. 서울에서 마지막 공연을 마치고 고향으로 가는 중 한 명이 빠지고 나머지 3명만이 충주에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여자에게 관심있는 정석과 자신의 여자를 빼앗기고 기분이 상한 강수가 다투면서 강수가 또 밴드에서 빠진다.
위기에 빠진 밴드에 성우의 학창시절 음악학원 원장이 합류하는데 그 원장은 알콜 중독자이어서 여러 가지로 이끌어 나가기가 힘들다. 그러는 중 고향에서 고교시절 함께 음악을 했던 친구들을 만나는데 다들 현실에 얶매인 사람으로 변해 있고, 다행히 자신이 고교시절 따라다니면서 좋아했던 여자 친구가 남편과 사별하고 야채 트럭 행상을 하는 것을 알게 된다. 간혹 그들은 만나서 서로 위안이 되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밴드 생활을 접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우여곡절 끝에 그들은 여수로 내려가 성우의 여자 친구 인희가 여고시절 장기를 살려 보컬을 맡으면서 명맥을 이어간다.
큰 사건 하나 없으면서 잔잔히 그려가는 70년대 후반 생활상이나 하나하나 변해가는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남는 것이 얼마만큼 힘겨운지를 시종일관 보여주는 감독의 시선이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삶의 쓸쓸함 아니었을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서늘해져서 슬픈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도 공연히 가슴이 저렸다. 살아남아 있다는 것이 때로는 절절하게 다가오는 영화는 나를 슬프게 한다. 이제 내 나이도 그런 삶의 진지함을 알게 되는 나이라서그럴까?
노래하는 인희를 보고 기타를 켜며 처음으로 웃음을 띠는 성우의 표정이 잊히지 않는다. 하루 밤 사이에 사라지는 것들이 속출하는 세상에서 작으나마 희망을 읽을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사라지는 것들이 때로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고 애써 말하면 억지가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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