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솔뫼들 2005. 11. 10. 0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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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이런 별난 제목을 가진 영화를 보러 광화문에 가는 길에 나는 지하철역에서 힘겹게 목발을 짚고 계단을 오르는 장애인을 보았다. 얼마나 힘들어 보이는지 보는 나도 덩달아 힘이 드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도와줄 수도 없고 그저 안쓰럽게 바라보기만 했는데...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목발을 짚고라도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작은 축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는 일본 영화이다. 처음 일본 영화가 우리나라에 개봉되었을 때는 선입견 때문에 일부러 보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일본 영화를 보고는 감동을 받았고 나의 생각이 편견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술에까지 나의 편협한 생각이 작용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츠네오'라는 대학생과 '조제'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를 원하는 장애인이다. 마작을 하는 장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츠네오는 어느 날 새벽 유모차가 굴러 떨어지는 것을 목격했는데 바로 그 유모차 안에 양 다리를 전혀 못 쓰는 장애인 조제가 있었다. 처음에 츠네오는 일말의 호기심과 동정심으로 조제를 가까이하게 되다가 조제의 요리 솜씨와 박학함에 반해 친해지게 된다.

 

  할머니와 함께 사는 조제를 위해 복지과에 연락해 집을 고쳐 주고, 조제가 원하는 사강의 책을 구해 주는 등 성의를 보이게 되는데... 그러던 중 복지 분야에 관심이 있던 츠네오의 애인이 조제의 집에 구경을 왔을 때 둘이 친한 것을 본 조제가 마음의 상처를 받아 둘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만다.

 

 한동안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학교 행사에서 조제가 읽는 책의 전 주인이었던 후배를 만나게 되고 그러면서 다시 조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조제를 마음 속 깊이 생각하는지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을 위해 찾아간 회사에서 조제의 할머니가 졸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조제에게 달려가는 츠네오. 그 후로 둘은 동거에 들어간다.

 

 츠네오를 통해 세상을 보게 된 조제는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가장 보고 싶었던 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호랑이'라고 하는데, 호랑이 앞에서 조제가 생각한 것은 자신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츠네오가 없는 세상이라는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을까?

 

다음으로 조제가 보고 싶어한 것은 '물고기'였다. 츠네오네 집 제삿날에 함께 가기로 하고 여행을 떠나서는 수족관에 들렀을 때 수족관은 휴무일이었다. 그런데 거기에서 조제는 마구 떼를 쓴다. 자기가 그 먼 데서 찾아왔는데 어떻게 문을 닫았을 수가 있느냐고. 물고기처럼 마음껏 헤엄치며 살고 싶은 것이 자신의 소망이었는데 보지 못 하게 된 물고기를 통해 앞으로의 자신의 삶을 새삼스럽게 확인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결국 바다를 돌아보고 '물고기의 城'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조제는 자기가 츠네오없이 다시 해저 깊숙히 들어가게 될 것임을 예감한다. 물고기같이 헤엄치지 못 하고 조개 같이 한 군데에서 꼼짝도 못 하고 느리게 가는 세월을 느끼게 될 조제.

 

 함께 살던 조제와 츠네오는 잠깐 외출하는 것처럼  헤어진 후 츠네오는 옛 애인을 찾아가고, 조제는 전동휠체어에 의지해 삶을 지탱해 나간다.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그러나 마음 속에 있는 그리움이나 연민은 어떻게 할 것인가. 츠네오는 애인을 만나면서도 조제의 생각에 오열을 한다.

삶은 그런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보여 주면서.

마음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 하는 츠네오에게 우리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영화가 끝나고 음악에 묻혀 자리를 뜨지 못하면서 가슴 한 구석이 허전하고 그러면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 모두 그런 사람이기 때문은 아닐까. 어쩔 수 없이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거기에 매어 무거워 하는 사람, 거기에 내 모습이 오버랩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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