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너는 내 운명

솔뫼들 2005. 10. 22. 12:20
728x90

 

 오랜만에 멜로 영화를 보았다.

지난 국정 감사때 여성부 감사에서 이 영화 한 편 보면 여성 정책의 방향을 알 수 있다고 했다던가. 그리고 단체로 관람했다는 영화이니 더욱 궁금증이 일었다.

물론 자료조사 부실하게 하고 그렇게 감사를 마쳤다는 국회의원들이 한심해서 한숨이 나올 지경이지만 도대체 어떤 영화일까 하는 일말의 호기심까지 없앨 수는 없었다.

 

'너는 내 운명'

제목부터 신파조다. 요즘 세상에도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나 의심스럽다. 하긴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지고지순한 것이 사랑 아닌가. 그리고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행복 아닌가.

이 영화의 주인공은 에이즈에 걸린 다방 레지와  시골 노총각이다.

첫눈에 다방 레지에게 반한, 목장에서 일하는 노총각 석중은 일편단심 다방 문 앞에 우유를 배달해 놓고, 그 다방 간판까지 무보수로 닦아주는가 하면 티켓 다방 레지로 일하는 은하가 안쓰러워 자신이 낮에 모텔로 불러 쉬게 해 주는 등 눈물겨운 노력을 한다. 자신이 살아온 인생 역정을 통해 사랑에 대해 회의적인 은하마저 이런 노력에 감동을 받아 결국 두 사람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러나 행운은 석중의 편이 아니다. 그런 일에 늘 끼게 마련인 상투적이고 진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기둥서방(?)이 나타나 은하를 협박하고 석중에게는 전재산과 마찬가지인 소를 판 돈을 갈취해 사라진다. 그런 어려움을 겪고 다시 사는가 싶을 때 이번에는 또 어이없는 청천벽력. 은하가 에이즈 양성 반응 환자라고 보건소에서 통보를 해 온다. 그것으로 인해 온 동네가 발칵 뒤집히고 근처 부대의 군인들이며 동네 노인들까지 혈액 검사를 받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이런저런 일로 인해 은하는 석중을 떠나고 석중은 은하를 찾아 헤매다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된다. 그러던 중 은하가 에이즈에 걸린 살태로 매춘을 한 것이 발각되어 신문과 잡지에 대서특필되는 사건이 일어난다. 그런 상황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은하와 석중. 결국 2년 6개월을 선고받고 복역하는 중 석중의 면회를 번번이 거절하다가 독하게 마음먹고 면회를 허락한 날, 자신 때문에 석중이 폐인이 되다시피 하고 농약을 먹고 목까지 상해 말을 제대로 못 한다는 사실을 은하가 알게 된다. 다시 마음의 문을 열고 두 사람이 은하의 만기 출소 후 합쳐지는 것으로 이 영화는 막을 내린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한다. 뒷 이야기가 몹시 궁금하던 차에 오늘 신문에 두 사람은 지금 헤어졌고, 은하는 아직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실렸다. 그럼에도 감독은 마지막을 해피엔딩으로 장식했고 현실이 그렇지 못 하기 때문에 더욱 그런 갈망을 품고 사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세상이 변해 젊은이들은 소위 '쿨하게'라는 말로 깨끗하게 헤어져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금세 다른 사람과 다시 마음을 주고 받는다고 한다. 글쎄, 예전처럼 징징 짜고 울부짖는다고 흘러간 옛사랑이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사람의 감정이라는 것이 어찌 몸이 돌아선다고 마음까지 그리 쉽게 돌아서겠는가. 특히 우리 나라 같이 情이 많은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것 아닌가.

 

 영화를 보고 난 후 친구와 나는 한참 논쟁을 벌였다. 나는 은하 본인이 자신이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하고 친구는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보건소장이 석중을 찾아와 은하가 에이즈에 걸렸으므로 남편인 석중도 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말을 할 때 은하가 창문 뒤편에서 듣고 있었는데 놀라는 기색이 없었음과 은하가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기둥서방이 알고 있었다는 것, 그래서 기둥서방이 신고했다는 정황 등으로 미루어 은하가 전부터 자신이 에이즈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친구는 아무리 그렇게 몸을 파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다방 이름처럼 '순정'이 있는데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석중을 진정 사랑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어떻게 남편과 아무렇지도 않게 관계를 가질 수 있느냐고 반박했다.

어떤 것이 사실이든 통속적이라고 쉽게 치부해 버릴 수 있는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고 마음에 싸아 하니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경험을 모처럼 했다. 소를 닮은 석중이처럼 우직하고 듬직하고 성실하고 일편단심인 남자 어디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