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아껴 두었던 보물을 꺼내보듯 '올해의 작가'로 선정된 서세옥 전을 보러 덕수궁에 갔다. 비오는 덕수궁은 고즈넉하고 평화로웠다.
法古創新이라고 했던가.
말 그대로 전승을 계승하되 현대적인 기법으로 그것을 표현하려 애쓴 선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내내 나는 흐뭇했다. 그리고 가끔 전율에 휩싸였다.
전 생애의 작품이 다 나온 것은 아니지만 주로 사람들이 그의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한 명도 있고 두 명도 있지만 주로 군상이 눈길을 끈다. '기다리는 사람', '춤추는 사람들', '사람들' 등
모두 함께 춤추고, 함께 기다리고, 함께 어디론가 간다. 결국 그가 중시하는 것은 관계와 화합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로서로 손 잡고 한 가지 목적을 향해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가 지향하는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와 닿았다.
'기다리는 사람들'은 두 가지로 표현되었다. 하나는 사람이 우리가 간단히 집을 그릴 때 그리는 선의 형태로 표현되었다. 안정감과 더불어 가족의 의미도 포함된 것이었을까? 나름대로 분석을 해 본다.
다른 하나는 내가 주관적으로 볼 때 산의 형상으로 표현되었다. 무엇인가 기다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바심을 낸다. 그러나 산은 그렇지 않다. 묵묵히 진득하게 기다릴 줄 안다. 새들의 노래도, 봄이 오는 것도,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도...
그가 기다리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춤추는 사람들'은 단순한 몇 개의 선을 이용하여 역동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세세한 것에 집착하지 않고 특징만 포착하여서도 충분히 의도를 표현한 것에 그만 나는 입을 다물지 못 한다.
'사람들'에서는 사람들이 몇 개의 선과 몇 개의 점으로 이루어졌어도 손이든 발이든 아니면 몸의 어느 부위든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이란 그렇게 서로 얽히고 설켜서 살아가게 마련 아닐까.
끝으로 내 눈길을 한동안 잡아끈 것은 그의 전각과 스케치를 모아 놓은 곳이었다. 메모지, 스프링 노트, 스케치북, 심지어 음식점의 냅킨에까지 그 때 그때 생각나는 것을 스케치해 놓은 것을 볼 때 대가는 그냥 탄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는 스케치가 필요없을 것 같은 선과 점인데 굵고, 가늘고, 진하고, 옅고 등등을 메모하고 스케치해 놓은 것을 보며 참으로 많은 것을 느꼈다.
세상에 천재라고 해도 거저 되는 것은 없는 모양이다. 수없이 바라보고, 관찰하고, 생각하고, 표현해 봄으로써 작품이 탄생하고 그 작품을 통해 우리는 한 사람의 작가뿐 아니라 그 작가가 산 시대, 더 나아가 국가 그리고 세상을 보는 창을 갖게 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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