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오늘은 일찍 라마유르를 향해 출발하는 날입니다.
오전 8시 30분에 달 호수에서 출발하기로 했습니다.
무려 10시간이 걸린다고 하니 하루 종일 차를 타야 하는 셈이지요.
우리나라는 서울에서 부산까지 간다고 하더라도 한 나절이면 충분하니 한반도 남쪽을 한 바퀴 돈다고 생각을 해야 할까요?
물론 도로 사정이 안 좋아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먼 거리임에는 틀림이 없겠지요.
중국에서도 이렇게 하염없이 차를 탄 일이 있었는데 인도의 도로 사정은 어떨지 궁금합니다.
인도라고 하더라도 산업이 발달한 지대가 아니니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지요.
이제는 높은 곳을 향해서 가는 길입니다.
악명 높은 조질라 패스( 해발 3529m)를 넘어가야 한답니다.
'~라'는 이곳 말로 고개라는 뜻이라지요.
얼마나 험하기에 그렇게 소문이 났을까 궁금합니다.
그래도 길이 많이 넓어졌다고는 하네요.
해발고도 높은 곳을 향해 가는 길이라 미리 고소 방지약을 반 알 먹어 둡니다.
체질적으로 고소에 약한 걸 그냥 인정하기로 한 겁니다.
약을 먹는다고 고소 증상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낫다고 알려진 약이지요.
귀숙씨는 우리나라에서 출발하면서부터 먹기 시작한 멀미약을 또 입에 털어 넣습니다.
완전히 약으로 버티고 있는 셈입니다.
그나마 차량의 앞자리에 타면 멀미가 좀 덜하다기에 일행들의 양해를 구하고 운전석 옆에 앉습니다.
도로는 좌우에 총을 든 군인들이 도열해 있습니다.
사뭇 삼엄한 분위기라 함부로 사진을 찍기에도 조심스럽습니다.
여기는 분쟁지역으로 알려진 '카슈미르'라니까요.
젊은 친구가 가이드에게 인도의 군대제도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지나가면서 보는 군인들이 모두 나이가 들어서 싸우지도 못 하게 생겼다고 하면서 말입니다.
인도는 모병제라지요.
한 집에서 한 명씩 군대를 갈 수 있다는군요.
군인 급료가 많은 편이라 공평하게 하기 위해서 실시하는 제도라고 합니다.
군대에 갔다가 눌러앉아 직업군인이 될 수도 있고요.
차는 덜커덩거리면서 앞으로 나아갑니다.
길은 좁아졌다 넓어졌다 하고, 포장도로였다가 비포장도로였다가 변덕스럽습니다.
구불구불하고 급경사인 길을 차는 힘겨운 소리를 내며 달립니다.
우리가 탄 차는 먼지를 풀풀 날리기도 하고, 때로는 앞에서 오는 차가 지나가도록 기다려주기도 하는군요.
다른 차를 아슬아슬하게 추월해 간담을 쓸어내리게 하기도 합니다.
정말 곡예운전이지요.
델리의 릭샤 운전기사를 포함해 모두들 대단한 운전실력을 갖추었구나 싶습니다.
언뜻 앞자리에서 하는 이야기를 들으니 우리를 라마유르까지 태워다 주고 운전기사는 바로 스리나가르로 돌아가야 한답니다.
생각만 해도 아찔하군요.
아무리 직업이 운전기사라 해도 하루 종일 그런 길을 운전하면 머리가 빙빙 돌지 않을까요?
젊은 사람이라 그나마 견딜 수 있겠지요.
그 말을 듣고는 심하다 느껴질 만큼 서둘러 운전하는 이유를 알겠네요.
중간에 잠깐씩 쉬어서 화장실에 들르기도 하고, 물을 사기도 합니다.
검문소도 여러 번 있군요.
더구나 우리는 외국인이기에 여러 번 검문을 받습니다.
한번은 우리 여권을 전부 들고 간 가이드가 오지 않아 일행 중 누군가 쫓아갔더니 사람 한 명마다 무언가를 일일히 기록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속이 터지는 일이지요.
어찌 되었든 불편한 길은 계속 이어지고 우리는 무거운 몸으로 차창 관광을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말들이 유난히 많은 곳을 지나는데 가이드 말[言]이 말[馬]을 타는 체험을 하는 곳이랍니다.
아유, 말 타는 것도 싫습니다.
아니 차량으로 이동한 지 몇 시간만에 무언가를 타는 것이 다 싫어지네요.
중간에 드라스지역 식당에 들러 간단히 점심을 먹습니다.
드라스는 기상 관측 이래 세계에서 두번째로 추운 적이 있는 곳이라고 합니다.
무려 영하 60도였다고 하니 상상이 되는지요?
그 추위가 어떠했을지 생각하는 것만으로 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습니다.
라다크 전 지역이 겨울에 여행객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니 짐작이 되겠지요.
친구는 입맛이 없다고 음식에 손을 안 대고 저쪽 편에 앉아 있네요.
벌써 며칠 내리 멀미약을 먹었으니 속이 좋을 리 없겠지요.
저는 이 험난한 여행을 하기 위해서는 그저 먹어두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꾸역꾸역 음식을 입에 넣습니다.
이럴 때 체력은 국력이 아니라 여행하는 힘이지요.
우리가 지나는 카르길은 공업지역이면서 군사지역이지요.
군데군데 군대의 막사가 보입니다.
군사공항도 있다고 하는군요.
일반인보다는 군인들과 군 차량을 훨씬 더 많이 볼 수 있는 지역입니다.
잠깐 서서 육중한 바위에 새겨진 보살상을 올려다봅니다.
어디든 그렇지만 대단한 불심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일이다 싶지요.
길가 살구나무에 가지가 찢어지도록 매달린 살구를 따 먹기도 하고 고산증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교육 사업을 한다는 친구가 준비한 약 홍경천을 나누어 먹기도 합니다.
이 친구 참 골고루 준비를 많이 했군요.
아무래도 이번 여행하는 동안 자잘한 신세를 많이 질 것 같습니다.
한동안 푸른 색을 보이던 산이 슬그머니 누런색으로 변했습니다.
슬슬 고도가 높아지니 수목한계선에 도달했나 보다 싶지만 갑자기 그런 풍경이 나타나니 놀랍기는 하네요.
그저 누렇다 못해 때로는 붉게 느껴지는 바위산이 중첩된 모습이라니...
코끼리 잔등 같은, 나무 한 그루 없는 붉은 산이 주는 황량한 아름다움을 무어라 표현할까요?
좁은 차 안, 에어컨을 켜지 못해 느끼는 더위, 고산증으로 힘들면서도 감탄사를 연발하게 됩니다.
연신 차창으로 보이는 풍경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누르지만 흔들리는 차 안에서 얼마나 사진이 잘 나올지는 모르겠습니다.
한동안 바깥 풍경에 눈을 떼지 못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마저도 비슷비슷해 시들해질 즈음 슬그머니 잠이 찾아옵니다.
그렇게라도 시간을 보내야지요.
차 안에서 10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것도 차가 스르르 미끄러지는 길이 아닌 곳에서 말입니다.
졸다가 깨어 보면 다른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습니다.
비슷하지요.
그러다가 배낭을 뒤져서 간식을 나누어 먹기도 하고.
중간에 잠깐씩 쉬었다 가는데 제 뒤에 앉았던 일행이 한 마디 합니다.
차가 달리는데 무언가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고요.
아이고, 그 소리를 들었군요.
잠이 들었을 때 차가 심한 '굽이길'을 지나갔는지 제 머리가 유리창에 부딪혔습니다.
그 바람에 잠이 깬 저는 창피하다는 생각에 안 그런 척 하고 있었지요.
다 들켜 버렸군요.
저 고개만 넘어가면 우리가 묵을 호텔이 나온답니다.
긴 하루가 끝나가는군요.
오후 6시 45분, 드디어 라마유르 문랜드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방으로 옮기면서 보니 친구 얼굴색이 안 좋습니다.
차가 멈출 때마다 잠깐씩 내려 바깥 바람을 쐬기는 했는데 몸이 감당을 못 하는가 봅니다.
하기는 차멀미를 전혀 하지 않는 저도 종일 차에 흔들리니 차에서 내린 다음에도 계속 차에 시달리는 것처럼어지럽고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으니까요.
결국 귀숙씨는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입술이 보랏빛으로 변한 걸 본 가이드가 병원 치료를 권했지요.
친구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떠난 다음 친구의 짐을 방에 들여 놓은 후 예상 못한 일에 기분이 울적해졌습니다.
처음으로 친구와 함께 하는 외국 여행인데 오지를 선택하는 바람에 이런 일이 생기는군요.
주로 트레킹만 다니던 사람들이 외도를 하니 문제가 생기나 봅니다.
남은 일행들과 한 방에 모여 라면과 누룽지를 끓여 저녁을 먹습니다.
방바닥에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어 먹으니 조금 더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정리를 끝내고 방에 들어와 씻고 난 후 침대에 누우니 생각이 많아지는군요.
종일 차에 시달려 몸은 파김치가 되었는데 쉽사리 잠이 들지 않습니다.
친구가 오늘 호텔로 돌아올 수 있으려는지, 쉽게 치료가 가능한 것인지, 지금 여행 초반인데 앞으로는 어떻게 버텨야 하는지 말입니다.
그러다가 까무룩 잠이 드나 싶은 찰나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다행히 친구가 돌아왔군요.
무척이나 반갑습니다.
링겔 주사를 맞고 왔다는 병원은 호텔에서 무려 1시간이나 걸린답니다.
거기에 링겔 주사 맞는데 시간 걸리고, 돌아오는데 또 시간 걸리고...
병원에서 도리어 병이 옮을 것 같았다고 병원 분위기를 전하는데 그래도 근처에 병원이 있다는 것에 고마워 해야 할 일이지요.
친구를 위로해 주다 힘든 하루를 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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