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인도 라다크 여행 셋째날 - 스리나가르 달 호수 (2)

솔뫼들 2019. 9. 16. 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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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오후 5시에 하우스 보트 앞에 모여 서너 명씩 시카라라고 하는 전통배에 탑니다.

달 호수를 둘러보는데 무려 2시간 30분이나 걸린다고 하네요.

호수가 얼마나 넓기에 그럴까 기대가 됩니다.


 배에 타고 주변을 둘러봅니다.

산을 배경으로 나지막히 자리잡은 건물들,

드문드문 떠 있는 배,

모든 것을 담아낼 듯 비추는 호수,

그리고 이런 풍광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즐거움.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진정한 여행을 하는 듯한 만족감이 밀려옵니다.



 배는 서서히 잔잔한 호수를 미끄러져 갑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배들이 가까이 다가오네요.

무슨 일인가 했더니만 장삿배였습니다.

어디나 물건을 강매하려는 장사꾼들이 있군요.

장식품에 과일, 아이스크림, 그리고 茶 등등.

장사들을 뿌리치고 배는 흘러갑니다.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연신 셔터를 누릅니다.

어느 방향을 향해 셔터를 누르든 작품 사진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입니다.

사진에서 본 모습이 바로 눈 앞에 펼쳐져 있으니까요.

눈도, 손가락도 바빠지는 시간입니다.



  배는 일행들의 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호수를 따라 내려갑니다.

얼마쯤 갔을까요?

목공소 같은 건물이 보이네요.

여기에서 배를 만드는 것일까요?

생각보다 호수 위에서 많은 일이 이루어지고 있구나 싶습니다.

이 지역 사람들이 호수를 삶의 기반으로 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요.

많은 하우스 보트의 주인들이 있을 것이고, 호수에 떠다니는 배 또한 주인이 있겠지요.

그리고 여행객이 왔을 경우 식사를 준비해 주거나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있을테고요.


 슬그머니 떠가던 배가 슬쩍 어느 곳엔가 멈추어 섭니다.

왜 그러나 했더니 물건을 파는 곳이었습니다.

어제 꾸뚜미나르 가는 길에 릭샤도 우리의 양해 없이 상점 앞에 우리를 내려놓더니만 인도에서는 그런 일이 다반사인가 봅니다.

서로 常生을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요.



 물건을 사든 안 사든 내려 구경이라도 하라는 가이드의 말에 따라 배에서 내렸습니다.

늘 무언가를 구경하는 건 재미가 있지요.

더구나 여행중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오늘 이 유람 말고는 다른 일정이 없으니 한가합니다.


 상점에 들어가자 눈이 부신 공예품들이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불빛을 받은 공예품들이 번쩍번쩍 하네요.

꼼꼼하게 세공된 공예품들이 시선을 끌지만 물건을 사는 건 사양합니다.

언제부턴가 물건을 사서 소유하는 것이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소유하는 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소유한다는 건 그만큼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에 다름 아니지요.

누가 제게 그러더군요.

'나이를 먹으면 살까 말까 고민이 되면 사지 말고, 할까 말까 고민이 되는 건 하라.'


 전에는 책을 꼭 사서 보아야 하고 그 책을 오래도록 간직해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러니 집안에 사방 책장이고 그 책장이 모자라 고민이었지요.

그러던 제가 나이 50이 넘어서고 나서 다시 안 볼 것 같은 책을 모아 도서관에 기증했습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최근에는 날 잡아서 한번 본 책을 헌책방에 팔기도 하고, 관심있는 헌 책을 구입하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도 배낭에 헌 책 몇 권을 넣고 가서 판 다음 다른 책을 사서 배낭에 넣고 씩씩하게 귀가했습니다.

그 중 한 권이 비행기에서 읽은 책이지요.



 배는 다시 호수를 떠 갑니다.

한쪽에는 연잎이 파랗게 떠 있군요.

연꽃밭입니다.

그런데 아직 연꽃이 많이 피지 않았네요.

한국보다 이곳 기후가 서늘한가 봅니다.


 배가 방향을 돌려 오던 길로 돌아갑니다.

2시간 30분 걸린다던 유람은 1시간만에 끝났습니다.

가이드의 말로는 배를 빨리 몰아서 그렇다는데 어쩐지 그 말에 의구심이 생깁니다.

과장이 심했던 것이겠지요.


 배에서 내리니 저녁 시간입니다.

현지식 식사를 한답니다.

이곳 사람들이 준비해 준 카레와 밥, 감자를 조금 먹고 휴식을 취하다가 뱃전에서 맥주 파티를 하기로 했습니다.

술 한 잔에 조금은 흩어진 모습의 일행들 표정이 편해 보입니다.

어둠이 찾아온 호수를 한참 바라보다가 방으로 들어왔습니다.



얼마나 다행인가


눈에 보이는 별들이 우주의

아주 작은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이

별들을 온통 둘러싸고 있다는 것은


우리가  그 어둠을 뜯어보지 못했다는 것은


별은 어둠의 문을 여는 손잡이

별은 어둠의 망토에 달린 단추

별은 어둠의 거미줄에 맺힌 밤이슬

별은 어둠의 상자에 새겨진 문양

별은 어둠의 웅덩이에 떠 있는 이파리

별은 어둠의 노래를 들려주는 입술


별들이 반짝이는 동안

눈꺼풀이 깜박이는 동안

어둠의 지느러미는 우리 곁을 스쳐가지만

우리는 어둠을 보지도 듣지도 만지지도 못하지


뜨거운 어둠은 빠르게

차가운 어둠은 느리게 흘러간다지만

우리는 어둠의 온도도 속도도 느낄 수 없지


얼마나 다행인가

어둠이 아직 어둠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나희덕의 < 어둠이 아직 >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