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배점마을 주차장에 도착하자 아주 오래 전 이곳을 지나갔던 기억이 납니다.
20년 가까이 지났군요.
희방사에서 연화봉, 비로봉을 거쳐 국망봉을 타고 내려왔었지요.
죽계구곡이 아주 길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구곡길이군요.
조선시대 퇴계 이황이 계곡의 풍취에 심취되어 산수를 즐기면서 아홉 구비를 헤아려 손수 이름을 붙이고 書刻하기를 竹溪九曲이라고 했답니다.
경기체가의 대표적 작품으로 알려진 안축 선생이 쓴 '죽계별곡'의 배경이 된 곳이라고도 하지요.
구곡길은 산길을 따라 걷겠거니 했는데 이 길 또한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 길입니다.
게다가 경사까지 있는 포장길을 걸으려니 살짝 짜증이 납니다.
누가 여기가 좋다고 추천을 했느냐면서 그리 추천할 만한 길이 아니라고 부루퉁하여 투덜거립니다.
오른쪽 사과밭을 따라 걷는 길이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여기도 길을 정비하는 공사중이군요.
순흥저수지처럼 다음번에는 여기도 길이 바뀌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걷다 보니 새로 만든 다리로 계곡을 건넙니다.
습기가 많고 돌멩이가 발에 걸리는, 걷기 편한 길은 아니지만 포장도로가 아니라는 사실에 만족합니다.
지금까지 걸으면서 쉴 만한 곳이 없어 물 한 모금 마시지 않았는데 잠깐 쉬고 싶습니다.
쉴 만한 간이의자나 바위가 없어 고민을 하다가 오가는 사람이 없으니 그냥 계단참에 앉기로 했습니다.
그랬는데 하필 그때 한 사람이 올라오는군요.
국망봉으로 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일단 산꾼과 인사를 하고 그 자리에서 커피와 물을 마시고 간식도 먹으며 한숨 돌립니다.
그러다가 갑자기 이 길이 소백산자락길로 연결이 되지 않으면 어쩌나 싶어집니다.
올챙이가 나오는 소백산자락길 안내표지는 진작에 사라졌거든요.
가끔 거리를 알리는 이정표가 나올 뿐입니다.
스마트폰에서 소백산자락길을 확인하고 다시 포장도로로 나섭니다.
휴! 한숨이 나오는군요.
하는 수 없이 다른 풍경에 눈을 줍니다.
해발고도가 꽤 될텐데도 사과 과수원이 있군요.
탐스런 사과가 도로로 이만큼 나와 달려 있습니다.
수없이 나무에 달린 사과를 보았는데 큼직한 사과가 손을 내밀면 닿을 만한 곳에 있으니 친구는 사과를 따고 싶어진다는군요.
견물생심이라고 하던가요.
물론 마음뿐이기는 하지만요.
걷는데 자꾸 눈길은 계곡 건너 길로 향합니다.
그쪽에도 데크로 길을 만들고 있네요.
그 공사가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소백산자락길이 그 쪽으로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가다 보니 산길에서 이어지는 다리가 보입니다.
공사중이라 좀 불편하기는 했겠지만 산길로 가도 되었겠다 싶습니다.
혹시 '알바'를 할까 싶어 확실한 길로 왔는데 발이 고생을 했군요.
올챙이 표시라든가 다른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소백산자락길 영주 구간도 그리 친절하지는 않군요.
잠깐 다리숨을 하는데 류시화 시인의 시 < 길 위에서의 생각 >이 보입니다.
늘 산길을 헤매고 다니는 사람인지라 제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이지요.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초암사가 가까웠나 봅니다.
구곡길도 끝나가는군요.
오르막 포장도로가 지루하게 이어지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쪽에서 소백산자락길을 걷는 사람이 하나도 안 보입니다.
포장도로를 걷는 것이 산길보다 훨씬 피곤하고 재미없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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