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영주 소백산자락길 첫번째 자락을 걷다 - 달밭길 (3)

솔뫼들 2021. 11. 17.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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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초암사 주차장에서 화장실을 이용하고 우리가 갈 길을 확인합니다.

이제부터는 정말로 산길이지요.

물론 지나온 길보다 난이도가 훨씬 높을 겁니다.

그래도 발바닥에 흙이 느껴지고, 나무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자연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산길이 정말 기대됩니다.

다행히 거리는 걸어온 것보다 훨씬 짧군요.

 

 산길로 접어듭니다.

여기 죽계구곡 중 3곡과 4곡이 있군요.

눈앞을 가로막는 바위와 덩굴 우거진 나무들이 눈에 들어오니 드디어 산길이구나 싶습니다.

 

 

 草庵寺에 도착했습니다.

초암사도 의상대사가 창건을 했군요.

신라 문무왕 16년 (676년) 의상이 부석사를 창건하기 위해 절터를 보러 다닐 때 이곳에 임시로 초막을 지어 수도하며 기거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또한 의상이 지금의 부석사 터를 찾아서 불사를 시작했는데 서까래가 없어져 道力으로 살펴보니 이 절터에 서까래가 떨어져 있었답니다.

의상은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라고 여겨 여기에 초암을 짓고 한동안 수행한 후 부석사를 건립했다고도 하네요.

 

 탐방로 안내판을 보니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이 해발 500m입니다.

시나브로 포장도로를 걸어서 이만큼 올라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창창하군요.

'둘레길'인데 거리보다는 높이가 기를 죽이는 것 같네요.

그래도 그리 원하던 산길인데 힘을 내어 보아야지요.

 

 

 이제부터 본격적인 고즈넉한 산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바닥에는 간간이 나뭇잎이 떨어져 있는 부드러운 흙길입니다.

흙산이어서 그런지 樹種도 다양해 보이는군요.

발걸음이 조금은 가벼워졌습니다.

이런 길을 찾아 지금까지 헤맨 것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드네요.

 

 달밭골은 소백산 초암사와 비로사 사이의 골짜기를 말한답니다.

달뙈기만한 밭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어 달밭골이라도 한다는데, 그보다는 국망봉과 초암사의 바깥 골짜기라는 의미가 더 설득력이 있다고 하네요.

달밭골은 옛 화랑도들이 수련을 하던 곳이기도 한데 근처에 모죽지랑의 비석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습니다.

6.25 전쟁 후에는 북한에서 월남한 사람들이 많이 모여 살기도 했다는군요.

지금은 주로 약초를 재배하거나 산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길에는 간혹 사람들이 보입니다.

복장으로 보아서 초암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산책 삼아 계곡을 따라 걷는 사람들로 보입니다.

편하고 좋은 산길을 따라 걷는 것이겠지요.

 

 간간이 여우 조심하라는 안내문이 보이네요.

친구가 소백산에는 여우가 사나 고개를 갸웃거립니다.

자연적인 먹이사슬로 보면 한반도에서 여우가 사라진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리산에 반달곰을 방사한 것처럼 소백산에 토종여우를 방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여우가 사람한테 해를 끼칠까요?

여우는 영리해 사람 주변에 잘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데 잘 모르겠습니다.

오늘 여우를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군요.

 

 일본 국립공원인 북해도 다이세츠산 트레킹시 꼬리가 긴 작은 여우를 산길에서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익숙한지 사람들을 보고도 여우가 도망가지 않더라고요.

사람을 무서워하는 것 같지도 않고요.

도리어 여우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뻘쭘해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왼편으로 계속 계곡을 끼고 걷는 길이 이어집니다.

가끔 계단길도 나오는군요.

살짝 오르막길이 이어지지만 길이 좋다 보니 힘든 것을 잊게 됩니다.

그야말로 '비단길'입니다.

 

 물소리를 벗삼아 쉬지 않고 걷습니다.

귀가 호사를 누리는 길입니다.

아까 소백산자락길을 누가 추천했나 불평을 했는데 이 길에 들어서니 비로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나무가 빽빽해 해를 보기는 쉽지 않군요.

계곡이 좋아 친구는 소백산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합니다.

다음 번에는 본격적인 소백산 등산을 주선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걸요.

 

 우렁찬 물소리와 빽빽하게 우거진 나무만 보면서 걷는 길이 이어집니다.

눈도 즐겁고 귀도 즐거운 구간이군요.

소 발자국이 찍힌 바위가 있는 골짜기라는 쇠자우골도 있네요.

정말 바위에 찍힌 소 발자국 같은 것이 보입니다.

재미있습니다.

 

 경사가 점점 가팔라집니다.

헉헉 숨소리도 거칠어지고 다리에도 힘이 들어갑니다.

이미 해발 600m를 넘었는데 도대체 어디까지 올라가야 할까요?

소백산자락길은 둘레길이라고 생각해서 가볍게 생각하고 트레킹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힘이 드네요.

 

 친구는 연신 투덜거리며 앞서서 걸어갑니다.

속도가 완연히 느려졌습니다.

저 보고는 잘 걷는다며 친구가 생일선물로 해준 공진단 덕인가 보다 합니다.

정말 그 효과 덕분인지 저는 생각만큼 힘들지 않고 잘 걷고 있습니다.

 

이 길을 만든 이가 누구인지 나는 안다

이렇게 길을 따라 나를 걷게 하는 그이들이

지금 조릿대 발 눕히며 소리치는 바람이거나

이름 모를 풀꽃들 문득 나를 쳐다보는 수줍음으로 와서

내 가슴 벅차게 하는 까닭을 나는 안다

그러기에 짐승처럼 그이들 옛 내음이라도 맡고 싶어

나는 집을 자꾸 떠나고

그때마다 서울을 버리는 일에 신명나지 않았더냐

무엇에 쫓기듯 살아가는 이들도

힘을 다하여 비칠거리는 발걸음들도

무엇 하나씩 저마다 다져 놓고 사라진다는 것을

뒤늦게나마 나는 배웠다.

그것이 부질없는 되풀이라 하더라도

그 부질없음 쌓이고 쌓여져 마침내 길을 만들고

길 따라 그이들을 따라 오르는 일

이리 힘들고 어려워도

왜 내가 지금 주저앉아서는 안 되는지를 나는 안다.

 

         이성부의 < 산길에서 > 전문

 

 

 잠깐 길 옆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쉬면서 간식을 먹고 물도 마십니다.

비로사 방향에서 오는 사람들이 꽤 있네요.

대부분 선비촌에서 시작하기보다 삼가주차장 방향에서 트레킹을 시작하나 봅니다.

포장도로 걷기가 좋지 않아 그런 선택을 하는 것 아닐까 싶군요.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이 높은 곳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이 있네요.

매일 여기를 오르내리기는 쉽지 않을텐데 말입니다.

아! 농막을 지어 놓았습니다.

궁금한데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있습니다.

저처럼 호기심 많은 사람이 기웃거리는가 보지요.

 

 밭(?)이 엉망으로 우거져 있습니다.

잘 모르기는 하지만 약초를 재배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이름표를 단 나무를 보아도 그렇고요.

붉은 열매를 매단 산사나무도 보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