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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백산자락길 첫번째 자락을 걷다 - 달밭길 (4)

솔뫼들 2021. 11. 18.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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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마지막 힘을 다해 고개를 오릅니다.

오후 12시 10분, 성재에 도착했습니다.

쉬는 동안 자료를 찾아보니 성재 해발고도가 800m쯤 됩니다.

웬만한 산 하나 넘은 셈이군요.

어릴 적 뒷집 사는 동생 이름이 '성재'였다고 실없는 농담을 하며 잠시 피로를 풀어봅니다.

진짜냐고요?

그럼요.

 

 

 물 한 모금 마시고 다시 몸을 일으킵니다.

이제 내리막길이 이어집니다.

아무래도 계속 이런 길이 이어지지 않을까 싶네요.

 

 얼마나 갔을까요?

두런두런 사람들 소리가 들립니다.

그러더니만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는 잣나무숲.

하늘을 찌를 듯이 쭉쭉 뻗은 잣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있습니다.

황홀할 정도입니다.

 

 

 잣나무숲 아래 쉴 수 있도록 넉넉하게 데크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군요.

산림욕에는 더할 나위가 없겠네요.

여기까지 도시락을 싸가지고 소풍 온 가족도 보입니다.

혼자서 여유있게 침대형 의자에 누워 숲의 향기를 즐기는 사람도 보이고요.

모두들 소백산을 가슴 가득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을 방해하지 않으며 한쪽에서 슬그머니 풍경에 젖어듭니다.

배낭도 내리고, 모자도 벗고, 그 동안 고생한 다리도 쭉 뻗어 잠시 휴가를 줍니다.

깊게 숨을 들이쉬면서 말이지요.

이렇게 맑은 공기를 마시기도 쉽지는 않지요.

정말 어디에 담아가고 싶은 청량한 공기입니다.

 

 

 예상한 것이지만 점심이 늦어집니다.

배낭에서 양갱과 사과빵, 찹쌀떡에 사과까지 준비한 간식을 모두 꺼냅니다.

이제 편한 길만 남았으니 많이 먹어도 그다지 부담스럽지 않겠지요.

긴장을 풀고 최대한 지금 이 순간을 즐겨야지요.

 

 잣나무숲 명상쉼터 이곳을 떠나는 것이 아쉽지만 다시 길로 들어섭니다.

이제 콧노래를 불러도 될 것 같은 길입니다.

길 옆으로 억새가 우거졌네요.

억새 사진도 한번 찍어 줍니다.

산들바람 불어주는 가을 산길에서는 누가 뭐래도 억새가 주인공이지요.

 

 

 명품마을이라는 달밭골에 도착했습니다.

몇 가구 되지는 않는데 마을이 산 중턱에 있으니 민박이나 주점 등 산꾼을 상대로 하여 생계를 유지하는가 봅니다.

주점을 기웃거리다 그냥 내처 걷습니다.

간식을 많이 먹어 배가 고프지도 않은데다 주점이다 보니 전이나 도토리묵 등 막걸리 한 잔 걸치기에 좋은 메뉴들로 구성되어 있는 듯 합니다.

 

 

 내려가는 길이 또 포장도로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계곡 옆으로 데크를 깔아 놓았군요.

거기에 생태매트가 덮인 곳도 있고요.

시멘트 포장길보다는 한결 낫지요.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는 비로사를 지나갑니다.

비로사에서 고려 태조가 불교에 귀의를 했다는군요.

그나저나 당나라에 유학을 다녀온 의상대사는 참으로 바쁘셨겠군요.

부석사에, 초암사, 비로사까지 창건하셨으니 몸이 열 개여도 모자라지 않았을까요?

 

 몸이 좀 지치니 비로사는 제대로 구경하지 않고 지나갑니다.

이어지는 길 역시 계곡을 이리 건너고 저리 건너는 길입니다.

올라오느라 힘을 뺀 포장도로와는 완전히 다른 길이군요.

길은 온전히 우리 두 사람 차지이고 말이지요.

 

 

  계곡 건너편에 역시나 사과 과수원이 보입니다.

무슨 품종의 사과인지 푸른 종이로 싸 놓았네요.

푸른 종이로 싸면 빛깔이 곱고 더 달콤한 사과가 되나 봅니다.

과수원 바닥에 은박지를 깔아놓은 것은 보았어도 파란색 종이로 싼 건 처음 봅니다.

 

 어릴 적 살던 고향 과수원에서는 주로 신문지로 복숭아나 배를 싸곤 했습니다.

때로는 오래된 교과서 종이를 쓰기도 했고요.

그것도 세월 따라 진화를 했나 봅니다.

물론 과학적인 영농방법을 따른 것이겠지요.

 

 

  드디어 삼가야영장을 지나갑니다.

다양한 시설이 구비된 명품 야영장을 몇 년 전 겨울 하산시에 본 기억이 납니다.

정말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고 감탄한 기억이 나네요.

물론 개인적으로 야영을 즐기지는 않지만요.

 

 오후 1시 20분 삼가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휴식시간 포함해 12.6km 걷는데 4시간 10분 걸렸습니다.

트레킹을 마치고 나니 언제 힘들었냐 싶게 뿌듯하고 기분이 좋습니다.

날씨도 도와주었고, 산길도 좋았고, 한동안 비실거렸던 제가 친구 고생시키지 않고 비교적 잘 걸었고...

붉은 잎을 단 단풍나무가 환하게 웃어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