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형!
숙소에서 잠깐 쉬고 다시 일어납니다.
관사골에 가 보기로 했지요.
'관사골'이라고 해서 고유명사로 동네 이름인가 보다 했습니다.
알고 보니 영주역 관사가 있는 동네였습니다.
물론 옛날 이야기이지만요.
제가 바보 같았네요.
관사골이 있는 근대문화거리는 영주제일교회에서부터 이어집니다.
영주제일교회는 1907년 정석주 집에서 기도 모임으로 시작이 된 후 1909년 구성공원 아래 교회가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에는 신사참배반대운동으로 영주제일교회의 목사와 장로 등이 옥고를 치렀고, 교회가 6.25전쟁 중에 소실되었는데 1954년 신도들의 노력에 의해 새로 지어졌다고 하네요.
고딕양식으로 지어진 영주제일교회는 영주시의 근현대를 관통하는 문화유산으로 지역 주민들과 함께 했다고 합니다.
그런 사실을 알고 보아서인지 우뚝 솟은 교회당 건물이 예사롭지 않아 보입니다.
영주제일교회를 지나 걷다 보니 풍국정미소가 나옵니다.
영주제일교회와 함께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된 곳입니다.
간판과 건물을 보니 연륜이 묻어납니다.
여기 역시 근대산업시기부터 운영이 되었던 정미소라지요.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그 당시 쓰던 도구들이 현존하고 있어 곡물 유통과 가공을 확인할 수 있는 산업사적 가치가 있는 곳이랍니다.
길을 따라 걷고 있는데 앞에서 오던 여행객이 우리를 보고 일러줍니다.
영광이발관에 가면 자세히 해설을 해 주는 분이 계시다고요.
몇 걸음 안 가 바로 영광이발관이 나오네요.
살짝 문을 열고 들어갔습니다.
손님은 없지만 영업을 하는 곳에 구경 삼아 들어가려니 좀 미안합니다.
그런데 주인장은 흔쾌히 우리를 맞아주고 80년 된 이발관의 역사를 이야기합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한 자리에서 80년 한 가지 일을 한 老鋪이지요.
본인이 세번째 이어서 하고 있다 하시는데 무려 54년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시네요.
70대이신데 아직도 현업에 종사하고 계신 것이고요.
자부심을 갖고 옛날 이야기를 신명나게 해 주십니다.
자랑스럽게 중앙일보에 난 기사와 사진도 보여주시면서 말이지요.
이발관 안을 둘러보니 이발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대부분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오래된 건물과 분위기가 어릴 적에 동생을 데리고 갔던 이발소 생각이 나게 만듭니다.
명절이 가까워지면 어린 남동생을 데리고 이발소에 가라는 어머니의 말씀이 참으로 싫었지요.
주로 남자들만 모여 있는 곳에 들어가는게 죽기보다 싫었는데 엄한 어머니 말씀을 거역하지 못하고 불퉁한 얼굴로 억지로 동생을 데리고 갔던 기억이 납니다.
영광이발관에서 나와 기름집으로 보이는 서부제유소를 지나니 벽화거리가 보입니다.
그런데 높은 언덕에 정자가 보이네요.
정자가 있는 곳까지 가 보기로 합니다.
경사가 있어서인지 정자까지 오르는 길도 힘이 듭니다.
芙蓉臺라는 정자가 있군요.
왜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하고 안내문을 보니 조선 명종 때 풍기 군수로 있던 퇴계 이황이 이곳을 지나다가 경치가 아름다워 부용대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하네요.
옛 선비들이 부용을 선비들의 표상이라 하여 정원에 심고 완상을 했는데 부용이 무궁화를 닮아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들이 부용을 보며 마을을 달랬다고 합니다.
부용대에 서니 영주 시내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슬슬 거닐며 주변을 돌아봅니다.
좋은 곳에 자리잡은 카페가 보이는군요.
지역 사랑방 역할을 하는 것 같은데
전망도 좋고, 분위기도 좋고, 커피맛도 좋은지 영주 추천 카페를 찾으면 꼭 등장하는 곳입니다.
저녁 시간이 가까웠으니 밖에서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립니다.
이제 내려가는 길입니다.
벽화가 이어진 길을 따라 걷습니다.
그러다가 벽화 하나에 시선이 고정됩니다.
얼마나 정밀하게 그렸는지 오래된 영주 驛舍가 거기 있는지 착각할 뻔 했네요.
영주 역사를 그린 옆에 열차를 움직이는 발전기(?)를 전시해 놓았군요.
바늘과 실처럼 열차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겠지요.
이런 광경을 보면 머리속이 옛날로 달음박질쳐 갑니다.
다시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영주문화특화지역조성사업'이라는 긴 이름을 붙인 사업으로 이 지역이 정비된 것 같은데 그와 같은 사실을 알리는 설치물이 간혹 보입니다.
거기에 '시간은 이성이 할 수 없는 것을 고친다.'라는 말이 씌어 있네요.
이 거리와 잘 어울리는 문구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끔 가다 만나는 이런 문구도, 예쁘게 벽을 단장한 벽화도 매력적으로 사람을 끄는 거리입니다.
더 내려가다 보니 허름한 건물이 보이네요.
담장 너머로 기웃거려 봅니다.
집을 한 바퀴 돌아보니 낡아서 녹이 슨 문이 삐걱거리며 열립니다.
여기가 바로 '관사골'이라는 이름이 붙게 한 영주역 관사였던 곳이었군요.
영주역 관사는 일제강점기 영주역을 건설할 당시 기술자들이 묵던 기숙사라고 합니다.
영주역 관사는 연립주택처럼 되어 있는데 5호와 7호가 남아 그 당시 도시생활사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하지요.
관사는 금방이라도 무너져내릴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도 공간 구성과 외관을 둘러볼 수 있습니다.
영주역 관사 역시 등록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군요.
'여행기, 산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주 소백산자락길 첫번째 자락을 걷다 - 선비길 (1) (0) | 2021.11.15 |
---|---|
영주 여행 첫날을 보내며 (0) | 2021.11.12 |
영주, 시장 골목에서 어슬렁어슬렁 (0) | 2021.11.10 |
영주 부석사에서 (2) (0) | 2021.11.09 |
영주 부석사에서 (1) (0) | 2021.1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