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 30분 배를 타고 욕지도를 떠난다.
나를 따라 내려온 산길이 눈에서 멀어진다.
정신을 차리고 뱃전에 나가 사방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댄다.
배가 연화도에 머물 때 한 무리의 젊은이들이 탔다.
그러더니만 한쪽에 자리를 잡고 바로 눕는다.
군데군데 자리를 잡고 누운 사람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온몸을 애벌레처럼 웅크리고 자는 사람,
가볍게 코를 고는 사람,
자연스럽게 남자 친구의 무릎을 베고 누운 사람,
우리처럼 배낭에 기대어 있는 사람 등등.
갑자기 입식 생활에 익숙한 서양인들의 눈에 자기 집 안방에 누운 것 같은 이런 모습이 어떻게 비춰질까 자못 궁금해진다.
왕복 3시간 배를 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주로 섬들이 이어진 풍경을 구경하거나 졸면서 간다고 해도 약간 지루한 시간이다.
배가 속도를 늦추는 느낌에 슬슬 배에서 내릴 준비를 한다.
다시 어제 머물렀던 통영 여객선 터미널에 도착했다.
오늘 저녁은 무얼 먹을까?
전깃불이 하나, 둘 들어오는 거리를 걸으며 생각한다.
이것도 상당한 고민이다.
며칠 내리 해산물을 먹었으니 오늘은 네 발 달린 걸 먹고 싶다.
친구랑 의견이 맞아 고깃집을 찾기로 했다.
그런데 이게 또 쉬운 일이 아니네.
주변에는 온통 충무김밥, 꿀빵, 그것도 아니면 시락국집, 거기에 빼떼기죽과 횟집 일색이다.
서호시장을 한 바퀴 돌고 숙박업소 주변을 뒤져도 쉽사리 괜찮아 보이는 고깃집이 보이지 않는다.
30분 넘게 고깃집을 찾아 헤매고 다니다가 결국 어떤 음식점 앞에 서 있는 지역 주민에게 물으니 한 곳을 일러준다.
정말 어렵사리 찾아간 집에는 손님이 우리 말고는 없다.
조금은 수다스러워 보이는 여주인은 혼자서 우리를 맞았는데 생각보다 친절하게 이것저것 챙겨준다.
낮에는 거제도에서 농사를 짓고 저녁에는 이곳 통영에서 장사를 한단다.
그래서 직접 농사지은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고기도 적당히 숙성이 되어 깊은 맛이 느껴졌고,
집에서 딴 감으로 직접 만들었다는 장아찌는 입에 착 붙었다.
집에서 담근 고추장으로 무쳤다는 시금치나물은 자꾸 젓가락이 가게 만들었고,
젓갈이 많이 들어간 탓에 빛깔이 칙칙해 손이 가지 않던 김치는 일단 한번 먹으니 은근히 끌리는 맛이 일품이었다.
접시가 비면 계속 가져다주는 귀한 명이는 또 어떤가.
음식이 맛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주인이 다듬은 시금치까지 한 봉지 챙겨주니 통영에서 시금치나물을 서울까지 가져가게 생겼네.
종일 배에 시달리고 걸으며 지친 몸을 그렇게 달래고 어제 묵었던 숙소에 다시 들어갔다.
내일은 정말 여유있게 늦잠을 즐겨야지.
배에서 졸았는데도 잠이 쏟아진다.
통영의 밤은 그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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