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보고, 듣고, 느끼고...

영화 '티켓'을 감상하고

by 솔뫼들 2006. 6. 26.
728x90

 

 신문을 보다가 소개하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라고 했다. 적어도 감독의 면면을 보아서는 실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는 영화 '올리브 나무 사이로'와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작품으로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감독이다.

켄 로치는 전에 친구와 예술영화 전용관인 시네큐브에서 본 '빵과 장미'의 감독이다.

 에르마노 올미 감독의 작품은 내가 본 것이 없다. 그의 작품은 우리 나라에 일반 관객이 보도록 개봉된 적이 없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세 감독이 '티켓'이라는 하나의 제목 하에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변주곡으로 들려준다고 할 수 있다.

 

 영화는 로마로 가는 열차 안에서의 일로 이루어진다.

우선 1등석. 손자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기 위해 로마로 가는 약리학자는 다급한 상황에 자신에게 기차표를 구해 주고 직접 역까지 나와준 젊고 아름다운 여인에게 마음을 빼앗겨 기차 안에서 내내 고맙다는,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이메일을 쓰고 지우고를 반복한다. 자신이 어렸을 때 이웃에서 피아노를 치던 어느 소녀와 그 여인을 오버랩시키며 다시 그 열차를 돌려 그 여인에게 돌아가고 싶을 만큼 절박한 심정에 사로잡히는데...

 나이가 들어도 사람의 마음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머리가 벗겨지고, 주름살이 얼굴을 채우고 있어도 마음만은 청춘인 것을 보며 사실 누구나 겪게 되지만 사회적인 지위와 권위, 다른 사람의 이목 때문에 겉으로 표현되지 못 하는 것들은 아쉬움을 넘어 안타까움마저 느끼게 한다. 자신의 앞에 아무리 딱딱하고 굳은 표정의 군인이 앉아 있어도 그것은 요지부동 노신사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이것이 바로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하면 억지일까?

 우리도 살다 보면 혼자 생각에 빠져 수십 번 집을 짓고 허물고, 어떤 사람과 특별한 관계를 만들기도 하는 등 그런 일을 수시로 겪는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 해도 그런 일이 도리어 사람의 성정을 자연스럽고 윤기나게 해 주는 것은 아닐까? 그런 것마저 없다면 사는 일이 더 팍팍하고 삭막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일마저 죄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상상과 생각은 자유이니까 말이다.

 

 이번에는 2등석. 母子 관계로 보이는 사람 둘이 특등석에 자리를 잡는다. 로마에 남편의 추도식을 하러 가는  여인은 2등석 표를 갖고 막무가내로 자기 자리라고 우기고, 알고 보니 아들이 아닌 자원봉사자를 괴롭히는 것을 일삼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가 막히고 내심 내가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참다 못한 자원봉사자가 사라지고 힘겹게 자기의 짐을 갖고 로마에 내린 여인의 얼굴에서는 회한과 어쩔 수 없는 삶의 비애가 배어나온다. 그녀의 짐만큼이나 무거운 것이 어쩌면 삶의 무게라고 알려 주려는 것일까?

 주위를 둘러보아도 아집에 사로잡혀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할 줄 모르는 사람 옆에는 사람이 없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 살 줄을 모르는 것은 불행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때로는 내가 손해를 보아도, 때로는 내가 바보같이 느껴져도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 일이다. 세상에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으니까. 그리고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이니까.

 

 마지막에는 3등석. 로마에서 열리는 축구 경기를 보러 가는 10대 소년 셋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알바니아 소년이 불쌍해 자신의 샌드위치를 주는 등 호의를 베푼다. 그러나 소년 한 명의 티켓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고 알바니아 소년을 의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소년 누나의 사정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알바니아 소년의 가족은 로마로 일자리를 구하러 간 아버지를 찾아 불법 난민이 된 사람들이다. 처음에 가장 격렬하게 그 소년을 비난하며 의심하던 소년은 나중에 도리어 자기 티켓을 주고 자기는 특유의 재치로 위기를 넘긴다.

 아! 이런 따스함이라니...  나는 그 장면에서 나도 모르게 마음에 따뜻한 것이 고여듦을 느꼈다. 그저 한없이 철없고 장난만 좋아할 것 같은 소년들에게서 발견한 인간적인 매력은 삶을 살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에 넉넉했다. 늘 세대 차이 운운하며 기성 세대는 걱정을 하지만 그렇기에 세상은 제대로 굴러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이 영화는 어떤 큰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고, 어떤 대단한 교훈을 주는 것도 아니다. 열차 안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 속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직나직 들려주며 우리에게 말을 건다. 너는 그 열차 속의 누구인가고. 점잖아 보이지만 속으로 열정을 간직하고 낭만을 꿈꾸는 노신사일 수도 있고,

때로는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고 떼를 쓰나 자신의 모습을 인정하게 되는 뚱뚱보 부인일 수도 있고,

때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년 같지만 가슴 속에 타인에 대한 인정과 배려를 갖고 있는 순수한 소년일 수도 있고.

 

 동숭 아트 센타로 영화를 보러 가면서 도대체 어떻게 볼만한 영화를 강남에서는 한 군데에서도 하지 않는지 화가 치밀었다. 늘 그런 식이다. 강남은 다른 일로 매스컴에 수시로 오르내리는데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일은 드물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문화는 강북에만 흐르는가?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소비 향락적인 문화가 판치는 문화의  변방에서 벗어나 강남이 제발 우리를 바람직한 면에서 불러들일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멀리 가서 보았어도 영화와 영화관의 분위기가 좋아서 영화관을 나오며 기분이 가벼워졌다. 게다가 작은 일이기는 하지만 영화 관객마다 삶은 계란 한 개와 요쿠르트를 비닐 봉지에 넣어 주는데 이것도 아주 괜찮은 마케팅의 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관 앞에 앉을 곳을 찾은 후 모처럼 난 햇살을 벗삼아 삶은 계란을  먹을 때 토요일 오후는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