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느끼고...

연극 '거기'를 보고

솔뫼들 2006. 6. 21.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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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안극인 연극 '거기'를 보러 갔다.

동숭동은 늘 그렇듯이 젊은이들로 봄볐고 그 틈에 끼어 나도 잠시 젊은이로 돌아갔다.

 

 제목 '거기'.

강원도 강릉 언저리 부채끝 마을의 호프집을 배경으로 동네 사람 서너 명이 벌이는 이야기로 연극은 시작된다.

정비소를 하는 장우는 가장 나이가 많은데 잘 삐지고 계산이 느리다.

진수는 우직한데 머리가 좋고 블랙 잭에는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

춘발은 20대에 고향을 떠나 성공(?)을 해서 돌아온 인물로 가장 현실적이고 바람기 많은 인물이다. 유일한 유뷰남.

병도는 호프집을 하면서 살아가는 순박한 동네 총각이다.

김정은 그런 시골 마을에 이사온 젊은 여류화가로 그려졌다.

 

 늘 그날이 그날인 하루하루를 보내는 동네 노총각 장우와 진수, 병도가 병도네  호프집에서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는데 춘발이 김정이라는 여인을 대동하고 나타난다. 시골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여인은 총각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그녀에게 서로 잘 보이기 위해 벌이는 행동은 우리의 웃음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늘 그렇듯이  문학작품에 나타나는 한 여인에게는 사연이 있게 마련이다. 재미로 귀신 이야기를 돌아가며 하다가 여인이 풀어 놓는 이야기를 듣게 되는데 그 이야기는 본인이 직접 겪은 이야기. 어려서 죽은 딸이 전화를 걸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속내를 하나씩 더듬어가는 사람들의 애환이 바닷가 안개처럼 서리서리 내게로 스며들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씩 가슴에 품은 이야기가 있고, 또 그 속을 감싸안고 살아가는 것은 아닐까? 무슨 거창하고 심오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동네 어느 호프집에서 일어날 법한 이야기를 들으며 가슴이 징 했다.

 

 번안극이라서 우리 현실과 맞지 않고 생경한 느낌을 주지 않을까 하는 것은 기우였다. 번안극이라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새로운 느낌과 맛으로

우리의 분위기와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을 통해 알았다. 평범하고 비슷비슷한 사람 사는 이야기는 동서양을 떠나 누구에게든지 감동을 준다. 이 작품도 마찬가지였다. 특별히 튀는 대사와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없으면서 바로 우리들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이 이 작품의 가장 큰 장점이다.

 

 역할에 맞는 배우들의 연기와 구수한 사투리는 감칠맛이 있어서 연극을 더욱 살아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시간이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연극에 몰입해서 극중 인물과 하나가 되었고, 울다가 웃다가 하는 삶의 한 모퉁이를 돌아 제 자리에 찾아와서는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고 극장을 나왔다. 오랜만에 본 소극장 연극이 역시 살아 있구나 싶은 생각을 갖기에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