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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듣고, 느끼고...

창작 뮤지컬 ' 화성에서 꿈꾸다'

by 솔뫼들 2006. 7.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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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뜻 들으면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인 火星인 줄 착각하기 쉽겠다. 그러나 여기에 나오는 화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수원의 화성을 말한다.

 

 조선 시대 임금인 정조는 조부 영조로부터 왕 위를 물려받는다. 그런 그에게는 비명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 사도세자가 있다. 당파 싸움의 와중에 세상을 뜬 아버지를 기억하고 거기에서 벗어나려 애쓰며 백성들이 살 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정조는 수도를 옮길 계획을 세운다. 가장 우선 하는 일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 화성으로 옮기는 일. 대신들의 반대를 물리치며 수원에 성을 쌓기로 한다.

 

 세손시절 우연히 길에서 만난 빙허각 이씨를 다시 만나면서 정조는 실학이라는 것에 눈뜨고 평범한 신분이지만 세상을 이끌어나갈 인재들을 등용한다. 정약용, 이덕무, 서유구 등등. 그들을 만나면서 화성 축조는 힘을 얻는데 거기에도 난관은 뒤따른다. 그러나 빙허각의 도움으로 자신의 개혁을 추진하는 정조도 임금의 신분이면서도 이루지 못 할 사랑에 가슴 아파하는 한 남자이다. 비록 허구적인 요소가 가미되기는 했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눈빛만으로도 느낄 만큼 절절하다. 한 사람의 아내인 여인과 한 나라의 지엄한 임금인 남자로서 겪어야 하는 갈등, 거기다 빙허각의 남편인 서유본이 겪는 가슴앓이는 어떠할까?

 

  화성이 완성되고 화성에서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열며 극은 클라이맥스로 치닫는다. 그러나 끝내 당파 싸움은 종식되지 않고 그는 죽음을 맞이한다.

 

 현명한 군주이자 개혁 군주였던 정조의 삶을 비추어가는 작품을 감상하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정조가 얼마나 힘겹게 자신의 역할 때문에 고심했었는지 자리의 무게를 새삼스럽게 느끼게 된다. 임금이기 앞서 한 인간, 한 남자라는 사실이 더 가깝게 다가온다.

 빙허각 이씨는 시대를 앞서간 사람이었다. 실존인물이었다고 하는데 작품에 그려진 대로 '규합총서'라는 실용서를 쓴 여성 최초 실학자였던 모양이다. 이씨부인이라는 이름으로 일생을 살기 싫어 자기 이름을 자기가 지었다는 똑똑한 여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 일이 부지기수로 일어나지만 '미스 김'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어쩌면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 바로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인지도 모른다. 정조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할 정도로 당차고 소신있는 사람이지만 바로 정조였기에 그 사람의 능력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다양한 볼거리, 배우들의 풍부한 성량에 힘입은 시원스러운 노래와 연기, 게다가 국악과 서양음악을 아우른 배경음악 등등 나름대로 노력을 많이 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보고 난 후 조금 단조롭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어려움을 이겨내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혁을 밀어부치는 정조의 모습을 기대해서일까? 

 세상이 국민을 위한 세상인지 위정자를 위한 세상인지 헷갈리는 것이 현실이다. 정조처럼 治世觀이 확실하고 영민한 지도자가 몇 명 더 나온다면 그래도 보통 사람들이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 정조가 화성에서 꿈꾸었다면 나는 지금 이 작품을 보고 꾸꾼다. 백성들의 염원을 살피는 어진 지도자를 우리가 선택할 수 있기를.

 

 그 대사가 기억에 남는다.

 "임금은 백성이 선택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용기를 지닌 신하, 그리고 그 말을 존중해 줄 수 있는 정치 지도자가 그리운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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