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보니 오른편으로 200m 올라가면 농암정이라는 정자가 나온단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초평호는 어떨까?
우리는 씩씩하게 풀이 뒤엉켜 희미해진 길을 따라 오른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지 않은 모양이다.
겨우 200m인데도 오르막길이니 땀이 줄줄 흐르는군.

정자에 올라가 호수를 내려다본다.
정말 고요하고 잔잔하다.
호수 뒤편 구름에 싸인 산자락이 몽환적인 풍경을 만들어내고, 산과 물에 둘러싸여 사는 사람들도 순하겠구나 싶어진다.
상쾌한 바람이 반겨주는 정자에 앉아 잠시 쉰다.
시원한 물을 마시고 가져온 과일도 먹는다.
금세 땀이 식으면서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정자에서 내려다보니 두타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보인다.
산길이 보이면 가 보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오늘은 그만 마음을 접어야지.
출렁다리를 건너고 초롱길을 내처 걸어야 하니 갈 길이 아직 멀다.
다시 초롱길로 내려서 보니 농다리로 연결되는 곳에 줄을 드리워놓고 통제를 하는데 섭섭하니 한번 가서 농다리를 보기만 하자고 발길을 옮겨 본다.
길을 따라 가니 중부고속도로 아래쪽으로 미호천에 황토빛 물이 소리내며 흐르고 농다리는 물길 속에서 보일락말락 한다.
사실 얼마 전 다녀온 아침가리계곡 계곡 산행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쉽게 건널 수있겠지만 공식적으로 통제를 하는 곳에 가지는 말아야겠지.
전망대에서 농다리를 내려다보면서 아쉬움을 달랜다.
다음에 진천을 방문할 이유가 있다고 하면서 발길을 돌린다.

살짝 고갯길을 따라가자니 진천에 관한 여러 가지 안내판이 줄지어 있다.
용고개에 얽힌 전설이며 농다리에 관한 설명, 그리고 '생거진천'이라는 말이 생긴 유래 등등.
진천은 예로부터 물이 맑고 평야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풍수해가 없어 농사가 잘 되는 고장인 연유로 인심이 후덕하여 生居鎭川이요, 용인은 산자수명하여 산세가 순후하여 사대부간의 유명한 산소가 많다 하여 死居龍仁이라 불렸다.
또한 이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니 진천과 용인에 사는 동명이인 '추천석'에 관한 것이다.
진천에 사는 추천석은 마음씨가 착하고 농사만 짓는 사람인데 저승사자의 실수로 용인의 추천석 대신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왔다가 다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장사를 지낸 이후이기 때문에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들이고 그 시체에 진천의 추천석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다시 환생하여 용인에 살았다고 하여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라고 하였다고 전해진다.
재미있는 전설을 읽으며 용고개를 넘어간다.
용에 관한 전설 덕분에 곳곳에 용과 관련된 이름과 설치물들이 많다.
여의주 모형도 만들어 놓았네.
이 여의주를 만지면 소원이 성취된다는 문구도 보인다.
받침대에 올라가 손을 뻗어 여의주를 만지면서 씨익 웃는다.

지도를 보니 오른편으로 가면 미르전망대가 나온다.
친구는 미르전망대까지 올라갔다 오자고 하고, 나는 편한 길로 가자고 주장한다.
이번에는 내 뜻대로 데크길로 쉽게 걷는다.
차량이 오갈 수 있는 길 옆으로 난 데크길을 따라 걷는다.
금세 출렁다리인 미르309가 시작되는 미르 카페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시원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했는데 카페는 문이 닫혀 있다.
갑자기 목이 더 마르고 커피가 급격히 당긴다.
자판기에도 커피는 없네.
한쪽에서는 주차장 공사가 한창이다.
걷기 어려운 사람들은 나중에 이곳에 주차를 하면 편하게 미르309 출렁다리를 즐길 수 있으리라.
사진을 찍기 좋은 포토존도 마련되어 있고, 용 조각작품도 보인다.
진천은 곳곳에 다 龍이로구나.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도 있다는데 여기는 친구가 사양해 통과.
바로 출렁다리로 접어든다.
미르309는 국내 최장 길이의 무주탑 출렁다리로 미르는 용의 순우리말이고, 숫자 309는 다리의 총 길이를 뜻한다.
파란색 미르309가 호수 물 빛깔과 어우러져 산뜻하다.
거리 탓인지 다리 끝이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얼마나 튼튼하게 지었는지 출렁다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출렁임이 느껴지지 않는다.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이 많으면 출렁이려나?
출렁임을 느끼기 위해 뛸 수는 없고 살짝 흔들어 보다가 이내 다리를 건넌다.

미르309 다음에는 편안한 흙길이 기다린다.
발이 가장 좋아할 길이네.
숲길이니 그늘이어서 좋고 나무 냄새도 싱그럽다.
바람도 살살 불어주니 더할 나위 없는 날이군.
나뭇잎을 스치며
이상한 피리 소리를 내는
친구 바람이여.
잔잔한 바다를 일으켜
파도 속에 숨어 버리는
바람이여.
나의 땀을 식혀 주고
나의 졸음 깨우려고
때로는 바쁘게 달려오는
친구 바람이여.
얼굴이 없어도
항상 살아 있고
내가 잊고 있어도
내 곁에 먼저 와 있는 너를
나는 오늘 다시 알았단다.
잊을 수 없는 친구처럼
나를 흔드는 그리움이
바로 너였음을
다시 알았단다.
이해인의 < 친구 바람에게 > 전문

우리가 올랐던 농암정이 건너편에 아스라이 보인다.
짧지 않은 길인데 다채로운 표정을 한 길이 펼쳐진다.
참 마음에 드는 코스인 걸.
숲길을 벗어나니 짧지만 바로 물 위를 걷는 느낌이 드는 길이 기다린다.
부교인데 다리와 물이 거의 같은 높이에 있으니 찰랑이는 물결이 느껴진다.
푸훗! 여기가 출렁다리군.
빙 한 바퀴 돌아 다시 하늘다리 입구에 도착했다.

주차장으로 가기 위해 아까 왔던 길로 들어선다.
여기에서도 30분 정도는 더 걸어야 한다.
똑같은 길을 걷자니 지루하고 꾀가 나지만 방법이 없지.
부지런히 걸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다목적광장 주차장에서 초롱길 한 바퀴 걸어 돌아오는데 3시간 가까이 걸렸다.
다음에 여기 온다면 황톳길도 가 보고 싶고, 한반도지형도 궁금하고, 메타세쿼이어 길도 걸어보고 싶다.
붕어마을에서 붕어매운탕이나 어죽을 먹어도 좋으리라.
초평호 주변만 구석구석 돌아보아도 하루를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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