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6시쯤 잠이 깼지만 7시 알람소리에 맞추어 일어난다.
먼저 창문을 열고 날씨부터 확인한다.
제주도에 오면 매일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일이지.
제주도 날씨는 워낙 변화무쌍하니 계획을 변경해야 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한다.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았는데 비는 안 오고 안개는 10m 앞도 안 보일 정도로 두껍게 끼었다.
바로 앞도 하늘인지 바다인지 구별이 안 되는군.
비가 안 오니 계획대로 한라산둘레길을 걷기로 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어젯밤과 같게 저녁에 비가 내린다고 되어 있다.
일단 믿어 보자.
여행 내내 날씨가 도와주면 본래 계획대로 걸을 수 있으련만 그렇지 않다면 절기상 4구간 동백길이 좋지 않을까 싶어 우선 11.3km 동백길을 걷기로 했다.
컨디션과 날씨가 좋다면 5구간인 수악길을 이어 걸어도 되겠지.
간단히 아침을 챙겨 먹고 8시쯤 호텔을 나선다.
우선 김밥을 사러 간다.
부근에 해녀김밥이 유명하다는데 이 시간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
송송김밥으로 가서 송송김밥 두 줄과 참치김밥을 주문한다.
오늘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니 김밥을 소중하게 배낭에 넣는다.
이제 한라산둘레길 중 동백길 입구로 차를 달린다.
차를 달리는 중에도 날씨는 시시각각 변하네.
어디는 금세 하늘이 갤 듯하고, 어디는 정말 곰탕이라는 말이 맞다 싶게 무섭도록 안개가 짙고...
오전 9시 20분, 1시간여 달려 무오 법정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무오 법정사 항일운동은 기미(1919년) 3.1운동보다 5개월 먼저 일어난 제주도내의 최초, 최대의 항일운동이자 1910년대 종교계가 일으킨 전국 최대 규모의 무장항일투쟁운동이다.
1918년 10월 7일 서귀포시 도순동 산1번지에 있는 법정사에서 평소 일본 제국의 통치를 반대하던 불교계의 김연일, 방동화 등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법정사 신도와 선도교도, 민간인 등 700여명이 집단으로 무장하여 2일 동안 조직적으로 일본에 항거한 항일운동으로서, 1919년대의 3.1운동을 비롯하여 민족항일의식을 전국적으로 확산시켜나가는 선구적인 역할을 하였다.( 위키백과 중에서)
이런 이유로 무오 법정사는 2003년 11월 12일 제주특별자치도의 기념물 제61호로 지정이 되었다고 한다.
이번에 한라산둘레길 트레킹을 준비하면서 처음 알게 된 사실이다.
어제가 삼일절, 그러니까 이곳에서 기념행사가 있었겠구나.
그래서인지 곳곳에 태극기로 만든 바람개비가 힘차게 돌고 있었다.
한라산둘레길 이정표를 확인하고 안개가 둘러싼 숲길로 들어선다.
10분쯤 걷자 돌오름길과 동백길이 나뉘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부터 본격적인 동백길이겠지.
항일운동기념탑을 둘러보고 있는데 친구가 '어이쿠!' 하더니 데크길에서 미끄러졌다.
데크길은 어제 내린 비와 안개로 물기가 있으니 당연히 미끄럽다.
그러고 보니 '데크 보행시 미끄럼 주의'라는 안내판이 나무에 매달려 있다.
미끄러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일 것이다.
바지는 지저분해졌지만 친구가 다치지는 않았다.
나도 조심해야겠군.
한라산둘레길에는 물기도 있는데다 햇볕이 잘 안 드는 길이다 보니 이끼도 많이 끼었다.
바윗길을 걸을 때도 엄청나게 신경이 쓰인다.
계곡을 건넌다.
어제 내린 비로 물살이 꽤 거세다.
계곡 물이 불면 위험하다는 안내문도 보인다.
당연히 건너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으리라.
가다가 잎이 축축 늘어진 나무를 본다.
굴거리나무 아닐까 싶다.
오래 전 한라산 산행기에 내가 잘못 알고 쓴 나무 이름을 산악계 대선배가 정정해준 일이 있었다.
그때 굴거리나무라는 나무가 있다는 걸 알았다.
나무나 풀 중에는 비슷한 것들이 많아 헷갈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동백은 도대체 어디에 핀 거지?
다 진 건가?
이름은 동백길인데 동백꽃 한 송이도 볼 수가 없네.
한라산둘레길에 대해 예습을 하면서 이곳 동백길이 우리나라 동백 군락지 중 최대라고 본 것 같은데...
친구는 어느 것이 동백나무냐고 묻는다.
길 중간중간 보이는 동백나무를 가리키며 알려주고 주변을 자세히 살펴보지만 역시나 동백꽃은 한 송이도 보이지 않는다.
실망인 걸.
산길에는 곳곳에 잔설도 있다.
비만 내려도 미끄러운데 잔설도 있고, 때로는 얼음도 있고, 이끼도 있는데다 낙엽도 쌓여 있으니 정말 예측할 수 없는 산길이다.
해토머리에 산행을 하는 것이 위험한 이유이겠지.
그러니 바닥을 보고 발을 골라 딛느라 정신이 없네그려.
쉴 데가 마땅치 않다.
쉬임없이 걸었으니 간식이라도 먹고 싶은데 그럴 만한 곳이 없네.
하는 수 없이 이끼가 낀 바위에 기대어 잠시 쉬기로 했다.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내어 커피를 타고, 어제 산 한라봉 과자를 입에 넣는다.
모르기는 해도 넘어질까 조심하느라 에너지 소모가 더 크지 않을까 싶다.
약간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기는 해도 그다지 난이도가 높은 길은 아닌데 정신없이 걷다 보니 몸에 열도 난다.
친구도 나도 겉옷을 벗었다.
수묵화 속을 헤매고 있는 것 같은 날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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