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곳을 둘러보기에는 시간이 넉넉하지 않고 저녁을 먹을 시간도 아니니 데크가 이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옥정호수 위에 데크를 만들어 걷는 길을 조성했다더니 그곳인가 보다.
그런데 가다 보니 출입을 금지시켰다.
아직 미완성인 모양이네.
하는 수 없이 발길을 계단이 있는 쪽으로 돌려본다.
길이 있으면 일단 가 보는 거지.
올라가면서 고개를 들어보니 멀리 정자 비슷한 건물이 보인다.
저기까지 한번 가 보는 건 어떨까?
길이 이어져 있는지 확신할 수도 없으면서 나무 계단을 오른다.
꽤 가파른 계단을 헉헉거리며 오르고 나니 산길이 나왔다.
제대로 된 길인 걸.

누가 보낸 엽서인가
떨어져 내 앞에 놓인 나뭇잎,
어느 하늘 먼 나라의 소식
누구라도 읽으라고 봉인도 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손길이 펼쳐놓은 한 뼘 면적 위에
얼마나 깊은 사연이기에
그 변두리를 가늠할 수 없다
가장 소중한 것들은 이렇게
발음할 수 없다는 듯,
가장 깊은 사랑은
다만 침묵으로만 들려줄 수 있다는 듯
글자는 하나도 없어
보낸 이의 숨결처럼 실핏줄만 새겨져 있어
아무렇게나 읽을 수는 없겠다
누구의 경전인가
종이 한 장의 두께 속에서도
떫은 시간들은 발효되고 죄의 살들이 육탈하여
소멸조차 이렇게 향기로운가
소인 대신 신의 지문이 가득 찍힌 이 엽서는
보내온 그이를 찾아가는 지도인지도 모른다
언젠간 나는 이 모습으로 가야 하겠다
복효근의 < 나뭇잎 편지 > 전문
낯선 길이지만 도로와 그리 먼 곳도 아니고 해가 지기 전이니 갈 수 있는 데까지 가 보자.
낙엽이 쌓여 미끄러운 길을 조심조심 걷는다.
한동안 오르막길이었는데 내리막길이 나오네.
친구는 그만 돌아가고 싶은 눈치인데 내가 조금만 더 가 보자고 했다.
그리 한참 걸릴 것 같지는 않다고.
날씨가 포근하기도 하지만 산길을 걷자니 등에 땀이 흐른다.
지금이 11월 중순 맞아?
생각지도 않게 산행을 하게 되어 오늘 운동은 이걸로 충분하군.

주루룩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갔더니 바로 도로와 이어지는 길이 나오네.
그리고 조금 더 가자 작은 주차장이 나온다.
아래쪽에서 보이던 정자는 바로 길 건너에 있는 國士亭이었다.
국사정에서 보면 붕어섬으로 가는 출렁다리와 붕어섬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겠구나.
길을 건너 정자에 올랐다.
멀리 펼쳐진 조망이 시원스럽다.
차츰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하늘과 다리와 호수가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예상 못 했던 옥정호의 선물이다.

옆을 보니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이 있었고 간간이 산꾼이 오가고 있었다.
내일 아침 국사봉 전망대 주차장은 우리가 국사봉 전망대에 오를 때 이용할 곳이다.
대략 주변 지도가 머리 속에 그려진다.
어쩌다 보니 예습을 한 셈이 되었네.
풍경을 감상하다가 왔던 길로 돌아간다.
올 때는 정신이 없어서 몰랐는데 생각보다 긴 거리였다.
우리가 이렇게나 걸었단 말인가.
다 내려가니 옥정호가 황금빛에서 붉은빛으로 물들어간다.
저녁 햇살을 받은 옥정호 모습에 반해 발걸음을 옮기지 못 했다.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에 눈을 떼지 못하고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주차장에는 대부분의 차가 빠져 나가고 없었다.
우리도 차에 올라 숙소로 향한다.
역시나 구불구불 구절양장 같은 길을 오래 가야 했다.
도무지 속도를 낼 수 없는 길이다.
예약한 숙소가 좀 열악한데 예약을 하기 위해 인터넷을 확인하니 대부분 예약이 꽉 찬 걸로 나와 어쩔 수가 없었다.
근처를 보면 오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데 평일에 도대체 누가 다 예약을 한 거지?
친구는 숙소 관리하는 인건비가 비싸 예약을 안 받은 것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럴 수도 있겠지.
짐을 풀어 놓고 숙소 근처 음식점에 들어갔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이 옥정호 주변에는 대부분 민물고기 매운탕집뿐이다.
우거지새우탕을 주문했는데 된장을 넣고 끓인 매운탕에서 깊은 맛이 난다.
손님이라고는 우리뿐인 음식점에서 주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보다 배부르게 저녁을 먹고 나왔다.
멀리 운암대교 조명이 예뻐 사진에 담고자 했는데 쉽지 않다.
소화도 시킬 겸 걸으려 해도 사방에 온통 어둠이 들어찼네.
깊은 산중 같은 느낌에 바로 숙소로 들어왔다.
생각보다 긴 하루였군.
피로가 몰려와 얼른 씻고 잠자리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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