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씨앗의 시간'을 감상했다.
굽어진 허리와 절뚝이는 다리로 토종 씨앗을 잘 간수해 심는 두 연세드신 농부의 모습이 담겼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몇 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을 했다.
농사 지은 것 중에서 가장 좋은 것을 골라 종이에 잘 싸서 갈무리하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씨앗을 얻으러 오는 이웃을 보면서 농부는 가장 중요한 것이 다음 해 뿌릴 씨를 남기는 것이라고 하면서 나눠 주시곤 했지.
천생 농부였다.
도시로 이사 오신 후 한번은 완두를 좋아하시는 어머니 생각에 완두콩을 사 갔다가 어머니께 지청구를 들었다.
개량종은 크기만 하지 맛은 없다면서 고개를 저으셨다.
농수산물시장에 가서 물어물어 토종 완두를 사다가 어머니와 마주 앉아 껍질을 까던 생각이 난다.
영화에는 토종 씨앗을 잘 간수해 후세에 전달하려는 시민단체와 경기도, 전라도의 두 농부 어르신이 등장한다.
힘이 드니 더 이상 농사를 하지 말라는 자손의 만류에도 두분은 노구를 이끌고 밭으로 나간다.
그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농작물은 농부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는 말이 생각났다.
지금이야 농사 대부분이 기계화되었지만 몸으로 하는 농사는 매우 힘들다.
이따금 고향집에 내려가 어머니를 돕는다고 농사를 옆에서 거들면 연세드신 어머니보다 내가 훨씬 일을 못 하고 힘겨워 절절맨다.
물론 익숙해서 그런 면도 있지만 농사가 그렇게 힘든 것이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많은 것들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겠지.
IMF 경제위기 당시 우리나라 종자 회사는 대부분 다국적회사로 넘어갔다.
그 후 매년 씨앗을 사서 심어야 하는 비극적인 (?) 일이 발생했다.
그런 걸 생각하며 영화를 보니 앞으로 얼마나 사실지도 모르면서 내년을 위해 가장 실한 씨앗을 소중하게 갈무리하는 두 분의 모습이 더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런 일을 하는 시민단체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이런 영화를 많은 사람이 보아야 하는데 영화관에는 드문드문 앉은 몇 사람뿐이었다.
아쉬운 건 나뿐이었을까.
영화가 끝나고 영화에 나오신 평택 어르신께서 유명을 달리 하셨다는 내용이 나왔다.
그 분의 명복을 빈다.
힘겹게 고물 자전거를 타고 일터로 나가시던 모습이 겹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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