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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공녀 강주룡

솔뫼들 2024. 8. 7.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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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을 읽었다.
제목으로 보건대 강주룡은 여성이다.
한자로 써 놓지 않아서 체공녀의 정확한 뜻을 모르고 책을 손에 들었다.
滯空女였구나.
 
 오래된 잡지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작가는 이야기를 끌어나간다.
우리나라 여성 최초로 을밀대 지붕 위에서 농성을 한 여성.
작가의 눈썰미에 탄복하게 된다.
그리고 궁금해진다.
어떤 연유로 강주룡은 을밀대까지 올라가 시위를 하게 되었을까?
 

 
 살기 어려워진 부모의 손에 이끌려 간도로 간 강주룡.
좀 늦은 나이에 한참 어린 서방을 만나 혼인을 하게 되는데 서방이 동무들과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하였다고 야반도주하여 함께 독립운동에 참여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성을 비하하고 놀리는 등의 이유 때문에 친정으로 돌아왔는데 서방이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에 다시 찾아가서 피를 내어 먹이기까지 했지만 결국 신랑은 목숨을 잃는다.
그 일로 시집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갇히는 일까지 겪게 되자 주룡은 세상 보는 시각이 달라지게 된다.
주체적인 생각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번에는 부모와 사리원으로 왔는데 부모는 늙은 영감에게 강주룡을 팔다시피 재혼을 시키려 하였다.
그래서 집을 나온 강주룡이 무작정 어릴 적에 살던 평양에 가서 고무공장에 취직한 후 부조리한 공장 운영에 대항하고 노동자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다는 내용이다.
 
 실존 인물인 강주룡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노동운동가이다.
그 당시 당돌할 만큼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강주룡을 보면서 내가 옆에서 응원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건적 사고방식을 가진 부모에게서 탈피해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개척해나간 강주룡에게 박수를 보낸다.
늦은 감이 있지만 이런 인물을 살려낸 작가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간도에 갈 여비만 모으면 그만두려던 공장 일을 여태 하고 있는 것도, 평양에 계속 머무르게 된 것도 이런 생각과 멀지 않으리라. 비록 대단한 일은 아닐지 몰라도 주룡은 평생 처음으로 제가 고른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머리를 풀고 옷을 벗을지 옷을 벗고 머리를 풀지를 선택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부모를 따라서 이주하고, 시집을 가래서 가고, 서방이 독립군을 한대서 따라가고, 그런 식으로 살아온 주룡에게는 자기가 무엇이 될 것인지를 저 자신이 정하는 경험이 그토록 귀중한 것이다. 고무공장 직공이 되는 것 말고 다른 선택지가 없었던 것은 일말 서러운 일일지언정.
 
작은 뜻을 모아서 큰 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룡은 믿는다. 총파업 승리를 믿는다.
 
주룡은 누구도 함부로 평가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더 배웠다고 잘난 것이 아니고 덜 배웠다고 못난 것이 아니다. 저 자신부터가 더 이상은 그런 식으로 평가받지 않기를 주룡은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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