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해파랑길을 걷다(2코스- 부산광역시)

솔뫼들 2015. 5. 27.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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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다가 왼쪽으로 작은 산이 보인다.

당연히 올라야 하리라.

바로 앞에 도착하니 죽도공원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옛날에 대나무가 많아서 죽도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대나무는 안 보이고

지역 주민들의 친근한 근린시설 역할을 하지 않나 싶다.

 

 

 산책로를 따라 걷다가 정자에 올라 바다를 내려다본다.

해파랑길을 걷는 동안 수없이 본 바다이지만 부산의 바다는 또 다르다.

어제 내린 비의 영향도 있겠지만 물빛이 달라진 걸 느끼게 된다.

대도시를 끼고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바다와는 확실히 다르네.

 

 죽도공원을 한 바퀴 돌고 송정해변으로 내려왔다.

해변은 아직 한산하다.

바람이 거센 날에 윈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보기에 무척이나 아슬아슬하다.

하지만 도리어 그런 걸 즐길 수도 있겠지.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위험해 보이는 바위에서 릿지를 즐기는 나처럼.

 

 

 송정해변을 지나자 이번에 안내리본은 산길로 접어들라고 손짓한다.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구만.

슬슬 지쳐가니 길은 이렇게 예고도 없이 나를 배신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길이 험하지는 않지만 지난 밤 퍼부은 비로 길은 계곡처럼 물이 줄줄 흘러내린다.

한여름 같으면 잠시 쉬며 발이라도 씻고 피로를 풀 수 있을텐데

벤치 한쪽에 잠깐 엉덩이를 걸치는데 만족하고 내처 걸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중간에 걷고 있는 산길의 고도 표시와 거리 표시가 비교적 자세히 되어 있다는 것.

한번만 더 오르막이 있다는 걸 감지덕지하며 열심히 앞서서 걸었다.

 

 

 그런데 무심코 걷다가 물기가 있는 산길에서 꼬물거리는 거머리를 발견했다.

우리나라 산길에서 거머리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논에서만 사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종류가 다른 거머리인가 보다 싶으면서 흡혈을 하는 동물이니 그만 소름이 끼친다.

 

 그러면서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할 때 길에서 만났던 거머리가 생각났다.

헝겊으로 된 등산화는 쉽게 뚫고 피를 빤다고 했었지.

사방에서 덤벼드는 거머리를 피해 펄쩍펄쩍 뛰다시피 걸었던 기억이 새삼스레 떠올랐다.

그래도 간혹 등산화에 거머리가 달라붙곤 했었지.

 

 길 옆으로 비를 흠뻑 맞은 식물들이 싱싱함을 뽐낸다.

이제 바야흐로 여름으로 접어들지 않는가.

연초록에서 다 같은 초록으로 닮아가는 즈음 길가에 빨갛게 익은 뱀딸기가 눈길을 끈다.

이름 때문에 가리는 것 많은 나는 뱀딸기를 안 먹었는데 동네 아이들이 하교길에 따먹곤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책을 찾아보니 식용으로도, 약용으로도 쓰인다고.

그러면 야생 딸기는 다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것 아닌가?

 

 

 여기저기 길섶을 두리번거리며 걷다 보니 마을로 내려섰다.

이런저런 상가가 형성된 곳인데 시간이 시간이니만큼 근처에서 점심을 먹어야 하리라.

걷다가 고문님을 기다려 의견을 물으니 그러지 않아도 점심 먹을 만한 데를 찾으려고 했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조금 더 걸으며 거리를 살핀다.

 

 독특한 건물이 눈에 띄어 살펴보니 해월정사라고 사찰 건물인데 단청이 안 되어 있다.

때로는 요란스러운 단청이 도시 안에서 거슬릴 때도 있는데 자연스럽게 주변과 어울리는 것 같아 보기 좋다.

그래서 도리어 사람 눈길을 끄는지도 모르겠다.

 

 

 해월정사 바로 앞에 몇 가지 음식을 하는 곳으로 들어갔다.

한창 점심시간이기는 하지만 넓은 실내에 자리가 거의 없다.

주변에서 인기가 좋은 음식점인가 보다 싶어서 내심 기대가 된다.

고등어조림을 시키고 한숨을 돌린다.

고등어조림은 짜지도 않고 푹 익은 무와 함께 입에서 착 달라붙을 만큼 탁월한 선택이었다.

더불어 나온 다른 반찬들도 입맛에 맞아서 더 부탁해 먹었다.

 

  친절한 음식점에서 기분좋게 점심을 먹고 원두커피까지 챙겨마시며 여유있게 쉰 후

다음에 걸을 코스를 두발로 앱에서 확인해 본다.

오늘도 산길이 많아 생각보다 많이 못 걷겠는걸.

마음을 비우고 걸어야겠구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