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공원을 지났다.
쭉쭉 뻗은 고층건물들이 즐비한 거리가 이어진다.
전에 왔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정말 놀랍다.
시선을 끄는 건물을 올려다보려 촌스럽게 고개를 드니 고개만 아프다.
촌놈이 따로 없다니까.
도로를 따라 걷는데 고문님께서 어디에 들어가 잠깐 쉬어가자 하신다.
주변을 보면서 쉴 만한 공간을 찾다가 길을 건너 커피전문점에 들어갔다.
요즘은 커피전문점에서도 대부분 여러 가지 디저트를 제공한다.
인절미 빙수를 시켰더니 놋그릇에 담아 놋수저와 함께 나온다.
그릇만으로도 훨씬 품위 있어 보이는 빙수 앞에서 먹기도 전에 흐뭇해진다.
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는데 음식은 그릇이 날개겠지.
빙수를 먹고 바다를 내다보며 한참 쉬었다.
오늘 오륙도 해맞이공원까지 무리하게 가지 않기로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래도 가야 할 길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다시 길로 나선다.
5월의 오후 햇살이 제법 따갑다.
길을 건너 바닷가를 따라 걷다 보니 '해운대 영화의 거리'라는 안내문이 보인다.
아하!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릴 때 이 주변에서 행사가 진행되는구나.
텔레비전으로만 보던 영화의 거리를 걸으며 예전에 본 영화들을 떠올린다.
해운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해운대'도 있고, '친구'라는 영화도 있었고...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서 촬영되는 영화가 꽤 많고 국제적으로도 영화 산업이 인정받고 있지 않나 싶다.
컬러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시작했을 때 금세 영화산업이 망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고,
스크린 쿼터제가 풀리면 우리나라 영화가 설 자리가 없을거라는 둥 말이 많았는데 기우였다.
도리어 지금 멀티플렉스에서 많은 영화가 상영되고 있으니 예상을 뒤집은 셈이다.
어떤 자극제가 되어 영화산업을 발전시킨 것 아닐까 싶다.
물론 부익부 빈익빈에 대형배급사들의 농간으로 스크린이 독점되는 문제는 있지만
전보다 다양한 영화들이 만들어지고 상영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인디영화나 예술영화관이 따로 만들어져 사람들의 발길을 끄는 것도 반가운 일이고.
앞으로 다양성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이 더욱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지하철역과 이어지는 거리를 지난다.
화랑들이 많이 들어선 거리인지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도 걸려 있다.
서울의 인사동 비슷한 곳인가 보다.
민락교를 건넜다.
해변을 따라 만들어진 데크를 걷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주변에서 즐기는 등 소풍을 나온 것 같은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바다가 있다는 것이 이렇게 사람들에게 특별한 공간을 제공하는구나.
이제는 횟집들이 줄줄이 늘어선 거리가 나온다.
전에도 광안대교 야경을 보러 이곳에 왔었는데 그때보다 훨씬 깨끗하고 호화스럽다.
정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라고나 할까.
밤에는 더욱 화려해 보이겠지.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걷다 보니 속도가 조금씩 느려진다.
게다가 발도 아프다고 아우성이고, 오늘은 무슨 일인지 발목도 불편하다.
발가락에는 물집방지 패드를 붙였지만 물집이 생긴 것 같고, 족저근막염이 심해져 한 발 디딜 때마다 통증이 느껴진다.
일부러 발을 조심스럽게 내딛는다고 하지만 배낭 무게와 체중이 있으니 어쩔 수 없기도 하고.
광안리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커피전문점, 호프집, 호텔과 음식점 등등 온갖 즐길 수 있는 것이 다 모여 있는 것 같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발걸음에서 활기가 넘친다.
여기는 해운대 해수욕장과 달리 외국인은 별로 찾아볼 수 없어서 그런지 한결 편안하다.
혹시나 이 주변에서 묵게 되지 않을까 싶어서 주변 숙소를 눈여겨 보면서 걷는다.
해수욕장을 지나 오래 된 아파트 옆으로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는다.
폐타이어로 만든 길이 넓어 많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러 나와 있다.
바로 옆의 대규모 아파트는 금세라도 재건축에 들어갈 것 같으니
다음에 이곳을 찾는다면 또 하나의 이정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싶다.
꽤 길게 이어져 있는 길을 따라 걷는 사람들 사이에서 걸었다.
어깨에 멘 배낭과 스틱 때문에 다른 사람들 눈에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이미 그런 시선은 수없이 겪었으니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을 정도는 되지.
오후 5시 30분, 아파트 단지를 빙 돌아 조성된 거리 끝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어차피 내일 걸을 거라면 더 이상 무리는 하지 말자고.
도로 옆 작은 공원에서 잠시 쉬면서 마무리를 하고 어디에서 쉴 것인가 잠시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다는 호텔에 전화를 걸어보고 이동하다가
어차피 이동을 한다면 다시 광안리 해수욕장으로 가는 것이 어떻겠나 싶어 택시를 탔다.
그리 먼 거리가 아니지만 발이 더 이상 걷는 것을 견디지 못 할 지경이 되어서.
광안리 해수욕장 주변 호텔에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나가기로 했다.
고문님께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해서 찾으신 곳이 낙지집.
그런데 다시 걷는 것이 문제다.
배낭을 벗어 놓았는데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발이 심각하게 불편해 절룩거리며 걷자니 속도가 나지 않는다.
힘들여 골목 안에 있는 낙지집을 찾아서 저녁을 먹고 와인 한 병을 사서 걷는다.
그래도 내일이면 해파랑길 종주가 끝나는데 축하를 해야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광안리 야경을 즐기며 해변을 걷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은데 몸이 말을 듣지 않아 결국 불 밝힌 광안대교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는 것에 만족하고 이내 발길을 돌린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긴장이 풀렸는지 안 아픈 곳이 없다.
와인도 마시기 싫고 그저 눕고 싶은 생각뿐이다.
다리가 마비된 느낌이 드는데 머리도 마비되었는지 아니면 입이 마비되었는지
내 생각과는 다른 엉뚱한 단어가 막 튀어나온다.
오늘은 28km 정도 걸었을 뿐인데 증상이 심각하네.
내일 일정이 일찍 끝나면 태종대 인근을 돌아보고 상경을 할까
아니면 해파랑길 종주를 축하해 주겠다는 친구 제안을 받아들여 강구로 갈까 했었는데
모든 스케줄은 일단 취소다.
그저 쉬고 싶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이 없다.
오륙도 해맞이 공원까지 거리가 6km 남짓 남아서 내일은 늦게 출발하기로 했으니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편하다.
그냥 눕는다.
숙면을 취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꽃잎이 지는 열흘 동안을 묶었다
꼭대기에 앉았다 가는 새의 우는 시간을 묶었다
쪽창으로 들어와 따사로운 빛의 남쪽을 묶었다
골짜기의 귀에 두어 마디 소곤거리는 봄비를 묶었다
난과 그 옆에 난 새 촉의 시간을 함께 묶었다
나의 어지러운 꿈결은 누가 묶나
미나리처럼 흐르는 물에 흔들어 씻어 묶을 한 단
문태준의 < 묶음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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