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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 산행기

노르웨이 피오르 트레킹 (16) - 베르겐에서

by 솔뫼들 2024. 9.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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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4시 스마트폰의 알람소리에 잠에서 깬다.

오늘은 오따에서 베르겐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얼른 세수를 하고 남은 짐을 캐리어와 배낭에 챙겨 넣는다.

다른 방에서도 짐을 챙겨 나오는지 수런거림이 들린다.

 

 1층으로 내려가니 인솔자가 나와 있는데 인솔자 말이 아직 우리 아침 식사인 샌드위치가 도착하지 않았단다.

분명히 새벽 4시 50분까지라고 힘주어 말했다는데...

조금 기다려 샌드위치가 도착한 다음 각자 배낭에 샌드위치를 넣는다.

 

 

 다들 캐리어를 끌고 배낭을 메고 어두운 길을 걸어 시외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밤도깨비가 따로 없군.

인솔자는 호텔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서 몇 분이나 걸리는지, 버스는 정확하게 제시간에 오는지 확인하러 그제 새벽 시간에 직접 나와 보았다고 한다.

예정된 시간보다 5분쯤 늦기는 했지만 버스가 오더라고 한다.

당연한 일일 수도 있지만 책임감이 강한 친구네.

 

 왜 이렇게 꼭두새벽에 출발해야 하느냐고 하니 베르겐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하루에 두 번밖에 없단다.

새벽 5시와 오후 5시에 출발지에서 나오는.

그러니 오후 버스를 탈 수는 없겠지.

 

 버스 정류장에 도착해 조금 기다리자 버스가 왔다.

짐칸에 캐리어를 싣고 배낭을 갖고 버스에 오른다.

오따에서 베르겐까지는 4시간 걸린다던가.

중간에 버스에 탄 채 페리를 타고 다시 내려서 이동을 한단다.

오늘은 일정에 여유가 있으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이런 경험도 흥미롭기는 하다.

 


버스에 탔으니 잘 일만 남았다.

나흘간의 트레킹으로 누적된 피로와 부족한 잠이 나를 찍어누른다.

바로 잠이 들었다.

 

얼마쯤 갔는지 버스가 페리에 오를 즈음 잠에서 깼다.

무언가 느낌이 달랐겠지.

주변을 보니 일행들도 모두 비슷하다.

아침을 먹을 시간이군.

정신을 차리고 배낭에서 주섬주섬 샌드위치를 꺼낸다.

 

 그러고 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해도 노르웨이 올 때부터 오늘까지 식사로 샌드위치를 먹은 것이 벌써 여섯번이다.

평소에 샌드위치를 먹을 일이 많지 않지만 당분간 샌드위치는 쳐다보기도 싫을 것 같다.

그래도 먹어야 힘을 내니 자다 깨어 목이 메는 걸 참으며 샌드위치를 입에 밀어넣는다.

 

페리에 타는 시간은 짧다.

페리에서 내려 다시 버스가 달리는데 길 옆에 사과 과수원이 보인다.

크지 않은 사과가 붉게 익어가고 있었다.

기후 때문에 다른 과일은 대부분 수입하겠지만 사과는 직접 재배하는구나.

무슨 품종인지는 모르지만 서늘한 날씨 덕분에 당도가 높고 과육이 단단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베르겐으로 가는 길에 보이는 하당에르 피오르가 멋지다고 하는데 날씨가 도와 주지도 않고 잠이 쏟아져 경치를 볼 겨를이 없었다.

내내 자다깨다 자다깨다...

내려오는 눈꺼풀 밀어올리기도 생각보다 쉽지 않네.

 

베르겐은 노르웨이에서 수도인 오슬로에 이어 두번째로 큰 도시이다.

중세 노르웨이의 수도였고, 대항해시대의 주요 도시였단다.

노르웨이를 대표하는 음악가 에드바르 그리그가 살았던 도시이기도 하다.

 

 

 드디어 베르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에서 낑낑거리며 짐을 챙겨 호텔로 가야 하는데 다행히 바로 앞에 보이는 호텔에 묵는단다.

횡단보도가 멀리 있고, 짐이 많다는 핑계로 현지인들 따라 무단횡단을 하며 호텔에 들어섰다.

호텔 규모가 꽤 크고 시설이 좋아 보인다.

 

 오전 9시 조금 넘었으니 호텔에 짐을 맡기고 베르겐 시내 구경을 하기로 한다.

저녁까지 완전히 자유시간이다.

인솔자가 베르겐에서 가볼 만한 곳을 알려준다.

참고 삼아 지도를 한 장 들고 삼삼오오 짝을 지어 호텔을 나선다.

가볼 만한 곳이 대부분 한쪽에 몰려 있어서 동선이 길어 보이지는 않는다.

 

 

  지나가는 길 옆에 KODE뮤지엄이 있다.

뭉크 작품을 많이 소장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지금 컨디션으로 그림이나 문화재는 제대로 감상하지 못 할 것 같아 포기한다.

내처 걸어가니 호수를 낀 정원이 나오네.

노르웨이는 호수가 정말 많다.

호수 뒤편 언덕배기에 짙푸른 산을 배경으로 붉은 지붕을 인 자그마한 집들이 대비가 되어 무척 예쁘다.

 

 이번에는 꽃으로 화사하게 단장한 정자(?)가 나오고, 그리그의 동상이 서 있다.

노르웨이 국민 음악가 그리그가 베르겐에 살았고, 그리그가 살았던 집도 베르겐에 남아 있으니 도시 한가운데 동상을 세워 기리고 있겠지.

그리그 동상 주변에서 그리그의 대표곡인 '페르귄트 모음곡'이 흘러나오면 좋지 않을까 혼자 생각을 해 본다.

 

 

 중심 상가를 지난다.

명품 거리를 지나 어시장으로 가는 길이다.

아무래도 어시장 근처에는 사람들이 많다.

어시장에서 먹을거리를 파는 노점상도 둘러보고, 생선을 파는 가게에도 들어가 본다.

 

 어시장이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처럼 수족관에 살아 있는 물고기가 있는 곳은 없다.

우리나라만 그런 풍경이 있다던가.

외국인들이 우리나라 수산시장에서 수족관 물고기를 보고 놀라는 걸 텔레비전에서 본 적이 있다.

그래도 시장은 어디나 활기가 넘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규모가 꽤 커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네.

 

 아직 점심 먹을 시간은 아니니 플뢰엔산 전망대에 가 보기로 한다.

케이블카를 타고 플뢰엔산 전망대로 향한다.

케이블카에도, 전망대에도 생각보다 각국에서 온 사람들이 많다.

 



 전망대에 오르니 베르겐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베르겐이 그리 크지 않아서인지 우리가 걸어온 길을 따라 선을 그릴 수도 있을 것 같네.

날씨가 화창하면 경치가 더 좋았을텐데 아쉽기는 하다.

다른 곳도 그렇기는 하지만 특히 베르겐은 쾌청한 날이 드물다고 한다.

비가 흩뿌려 우산을 폈다 접었다 번거롭군.

 

 전망대에 올라왔으니 주변을 돌아보자.

곳곳에 다양한 모습의 트롤 모형을 만들어 세워 놓았다.

얼굴과 귀만 큰 트롤도 있고, 마귀 할멈 같은 모습의 트롤도 있고, 피노키오처럼 코가 긴 트롤도 있고...

트롤 찾아 여기저기 걷는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무리지어 가는 걸 보았다.

가만히 보니 검게 느껴질 정도로 가문비나무가 우거진 길을 따라 가는데 플뢰엔산이 그리 높지 않아도 트레킹 코스가 여럿 있었다.

시간적으로 한 코스 정도 걷는 것은 가능할 것 같은데 그러면 다른 건 하나도 못 하겠지.

게다가 아직 몸이 물 먹은 솜처럼 무겁기도 하고.

마음은 굴뚝 같지만 발길을 돌린다.

 

 

  전망대에서 내려갈 때는 걸어가기로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걷는데 이것도 트레킹 아닌가.

내려가면서 보는 베르겐 시내 모습도 깔끔하니 아름답다.

발 밑에 보이는 집 옥상에도 잔디를 심어 놓았네.

스타방에르에서 오갈 때 지붕에 잔디를 심어 놓은 것처럼.

 

 내려가는 길은 생각보다 길다.

잠깐씩 골목으로 들어서서 거리를 줄이기는 했지만 또 다리가 혹사당하고 있군.

 

 

  가다가 보니 케이블카가 올라오는게 보인다.

그러더니만 중간 역에 서는데 무언가 불룩한 가방을 든 아주머니가 내린다.

아하! 케이블카가 올라가면서 중간역에 설 때 내리는 사람이 있더니 산 중턱에 사는 사람들이 교통수단으로 케이블카를 이용하는 것이었구나.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스에서 케이블카에 색깔별로 다른 노선이 있어 대중교통 수단으로 아주 유용한 것을 보았는데 산악지역인 여기에서도 그렇게 이용되고 있었다.

지역 주민에게는 탑승요금을 대폭 할인해줄 수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