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노르웨이 피오르 트레킹 (14) - 트롤 퉁가

솔뫼들 2024. 9. 24. 08:03
728x90

 트롤 퉁가는  노르웨이 남서부 하당에르 피오르에 위치한 기암절벽으로 '트롤의 혓바닥'이라는 의미이다.

해발 1100m에 위치해 있으며 링게탈 호수를 내려다볼 수 있어 세계 최고의 전망대로 불린단다.

트롤 퉁가에도 사연이 있다.

한때 돈 많은 영국인들이 풍광 좋은 트롤 퉁가에 몰려와 얼마나 어지럽혔는지 이곳이 쓰레기 천지가 되었다고 한다.

결국 노르웨이에서 대대적으로 주변을 청소하고 정비해 지금처럼 사람들이 즐겨 찾는 명소가 되었다고 하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처럼 걸어서 트롤퉁가의 멋진 풍경을 영접(?)한다.

걷는 것이 고통스러워도 트롤 퉁가 바위 끝에서 인생 사진을 남기면서 뿌듯해 하고.

그런데 날이 좋으면 헬기 투어도 진행을 한다고 하네.

헬기에서 이 풍경을 보면 어떤 느낌일까?

감격적이다 못해 황홀한 느낌이 들지 않을까?

자연의 신비, 경이로움에 경외심까지 들 것 같다.

 

 뚜벅뚜벅 정말 오래 걸었다.

멀리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 보인다.

이런 날씨에 여기도 줄을 서네.

물론 날씨 덕에 줄이 길지는 않다.

 

 안개에 사로잡힌 트롤 퉁가가 보인다.

조금 야속하기는 하다.

아니 이 정도로 보이는 것에도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겠지.

안개가 더욱 짙어지면 아무 것도 보이지 않을테니까.

 

 

 가장 먼저 도착했으니 사진도 가장 먼저 찍는다.

길지 않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 트롤 퉁가의 끝에 서는데 날씨 때문에 특별한 사진을 기대할 수는 없으리라.

안개가 끼어 있고 비보라 때문에 사방이 뿌여니 사진에 누가 있는지 식별하기도 쉽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그저 다녀갔다는 증명사진이 되겠지.

 

 일행들이 모두 증명사진 찍기를 기다려 하산을 시작한다.

걸음이 더 빨라졌다.

올라온 길이니 조금은 익숙하고 아무래도 올라갈 때보다는 내려갈 때 힘이 덜 드니 속도가 빨라진다.

 

살짝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물길이 되어버린 산길도 있다.

비 때문에 돌길이 젖었으니 그저 미끄러지지 않으면서 걷는 데에만 집중한다.

아무 생각이 없으니 걷는 순간 이 또한 명상 아닐까 싶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다른 생각을 하겠는가.

 

 

 이런 와중에도 계속 사진을 찍는 '손'이 정말 대단해 보인다.

그 사진을 공유해줄테니 얼마나 고마운가.

순간 그럴 수 있는 젊음이 부러워진다.

 

 힘이 들어도 추워서 쉴 수가 없다.

계속 걷는 수밖에는 방법이 없네.

걷다가 잠시 서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가이드가 와서는 내게 보폭이 넓다고 한다.

빨리 걸으니 유심히 살펴본 게지.

 

 말없이 걷다가 피오르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섰다.

아무리 빨리 내려가고 싶고 추워도 사진 한 장 남기자고 누군가 제안을 했다.

이번에도 '손'이 나서서 일행 모두의 사진을 찍어 준다.

안 그러면 트롤 퉁가 트레킹을 기념할 만한 사진도 몇 장 없을 뻔 했는데...

새삼스럽게 감사하는 마음이 든다.

 

 

 다시 걷는다.

10km가 멀기는 하구나.

올라올 때 이런 길을 왔었나 낯설게 느껴지는 곳도 있고.

같은 길이라고 하더라도 올라갈 때와 내려갈 때 보이는 경치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지.

더구나 초행길이니 더 그럴 것이다.

 

 작은 볼일을 참고 하산을 하려고 했는데 시간적으로도 그렇고 땀이 하나도 안 나니 종일 참는 건 아무래도 무리이다.

친구에게 내려가는 길에 엄폐물이 될 바위를 찾을 것이라고 하고 걸음을 더 빨리 옮긴다.

찾으려고 하니 그 많던 큰 바위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그러다가 바위 하나를 찾아 볼일을 보려는데 사방이 완전히 오물투성이이다.

오물을 피해서 발을 딛기도 쉽지 않네.

산길 큰 바위 뒤쪽은 거의 다 노천 공중화장실이 되어 버렸다는 말이군.

정말 심각한 문제이다.

 

  다시 산길로 들어섰다.

친구가 부지런히 쫓아와서는 천천히 걸으라고 한다.

본래 걷는 속도가 빠른데다 날씨가 내 걸음을 재촉하는 바람에 일행들과 멀어지기는 했다.

걸으면서 가이드와 일행들 오는 걸 확인하곤 했는데 친구가 같은 말을 반복해 지청구를 하니 살짝 짜증이 난다.

멈춰 서서 기다리다가 속도를 최대한 낮추어 걷는다.



지루한 산길이다.

올라갈 때는 날씨가 안 좋아도 새로운 풍경에 대한 기대가 좀 있었지만 내려가면서는 어떻게든 빨리 내려가서 이렇게 축축한 몸을 말리고 싶은 생각밖에 없다.

정말 최악의 컨디션이다.

자칫 저체온증에 걸릴 수도 있겠다.

저체온증이 겨울에만 걸리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랜 산행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알지.

 

 젊은 서양 커플이 나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데 가만히 보니 남자 친구가 훌쩍 앞에 간다.

여자 친구는 레깅스 차림으로 걷다가 넘어진 것처럼 보이고.

여자 친구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다.

두 사람이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말 한 마디 없이 걷는데 내려가서 혹여 다투기라도 하지 않을까 내가 쓸데없는 염려를 하고 있네.

 

 그 사람들을 추월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행을 기다려 함께 걷는다.

후유! 이제 거의 다 내려온 것 같다.

올라갈 때 작은 다리를 건넜었지.

 

 오후 4시 30분경, 드디어 3주차장에 도착했다.

34000보 걸으며 8시간 30분 가까이 걸린 것 같다.

10시간쯤 걸리리라 예상을 했는데 제대로 쉴 수도 없었고, 모두들 추위에 떨다 보니 다리쉼 없이 빨리 걷게 된 셈이다.

우중에 20km를 어떻게 걷나 머리가 복잡했는데 얼떨결에 모두 아무 탈 없이 트레킹을 잘 마쳤다.

경치를 놓치기는 했지만 목표한 걸 이루었고 아무 문제가 없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겠지.

가벼운 마음으로 단체사진을 찍는다.

이번에는 표정이 다 밝다.

 

 

  셔틀버스를 기다려 출발점인 2주차장으로 간다.

콜택시가 올 때까지 옷과 배낭도 말리고 좀 쉴 겸 안내소(?)에 들어간다.

이제 여유가 좀 생긴다.

이런 날은 따뜻한 음료라도 사서 마시면 좋을 것 같은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런 곳은 보이지 않네.

아쉽다.

단지 가이드들이 머물고, 트레킹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기도 하고, 트레킹 장비를 빌려주고 판매도 하는 공간일뿐이었다.

배낭에 있는 보온병에서 미지근해진 물을 마시며 한숨 돌린다.

기념품과 장비를 구경하며 어슬렁거리다가 택시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