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내려왔다.
플뢰엔산 전망대에 다녀오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다.
어시장을 둘러보다가 해산물과 국수를 함께 볶은 음식이 눈에 들어왔다.
동남아 친구들이 음식을 만드는데 어느 나라 음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맛있겠는걸.
친구는 해산물과 밥을 볶은 음식을 선택했다.
노점상 앞에서 음식을 선택하고 음식값을 지불한 다음 표를 받고 자리에 앉으면 음식을 가져다주는 시스템이다.
자리를 찾아 들어가려는데 김교수님 부부가 나오시네.
그분들은 여기에서 피쉬앤칩스로 점심을 드셨단다.
여행객이 오갈 만한 곳이 한정되어 있어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일행이 오가다 만날 정도로 베르겐이 좁기는 하군.
해산물이 많이 들어가 '해산물 국수볶음'은 예상대로 맛이 있었다.
노르웨이에 와서 한번도 못 먹었으니 밥이나 국수는 정말 오랜만인데 이구동성으로 볶음밥보다는 볶음국수에 한 표!
몸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동남아 친구들을 마음 속으로 응원해주며 노점을 나선다.
이제 배도 채웠으니 다시 걸어볼까?
브뤼겐 역사지구로 발길을 옮긴다.
'브뤼겐'은 항구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브뤼겐은 흑사병이 유럽을 강타한 후 영국 선원들이 들어오면서 무역항으로 발전을 하게 되는데 1702년 대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단다.
그후 예전 목조건물을 그대로 재현하려는 노력을 통해 1979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이 되었다고.
최근에는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아렌델 왕국의 모델로 유명세를 타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단다.
한자(Hansa)동맹은 13세기 초에서 17세기까지 독일 북부 도시들을 중심으로 여러 도시들이 연합하여 이루어진 무역 공동체이다.
한자동맹의 영향으로 무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도시 베르겐.
그 흔적이 지금도 브뤼겐 역사지구에 남아 있다.
장난감 같은 집들이 알록달록 모여 있는 곳이 브뤼겐 역사지구이다.
보기만 해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곳이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는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이렇게 나무로 지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화재가 났을 때 거의 무방비로 당했겠지.
건물들마다 개성이 있어 보인다.
가죽이나 모피처럼 한 가지 상품만 파는 곳도 있고, 악기를 연주하는 곳도 있고, 공방도 있다.
그 중에서도 여행객들을 위한 기념품을 파는 상점이 가장 많기는 하다.
친구는 상점에 들어가 트롤 인형을 몇 개 산다.
주위 사람들에게 주면 말 그대로 기념이 되는 물건이겠네.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골목을 한동안 돌아다녔다.
잠시 중세로 시간 여행을 한 기분이다.
별로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고단하다.
시간을 보니 호텔에 체크인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친구와 의논해 아예 저녁거리를 사서 호텔로 들어가자고 했다.
다시 어시장으로 향한다.
새로운 음식에 호기심이 많은 친구는 순록 소시지를 사고 싶다고 하는데 시식을 하는 곳에서 시커먼 순록 소시지를 조금 맛보곤 고개를 저었다.
너무 짜서 무슨 맛인지도 모르겠단다.
순록 소시지는 포기다.
어시장에
바다 바람이 분다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의 바다 바람이
상인들의 혀 끝에서 회오리 친다
뜬눈으로 죽은
고등어, 상어, 갈치, 농어들이
파도 같은 허연 배때기로 누워 있다
나무 상자 위에
가오리들이
엎드려 헤엄쳐 가고
물기 마른 세상,
조기들이 허리띠 졸라매고
공중으로 헤엄쳐간다
발 옹그리고
허리 구부리고 깊이 잠이든
새우, 대하, 멸치들
허리 펴고 살 수 있는
넓은 세상
바다를 꿈꾸고 있다
박덕중의 < 어시장에서 > 전문
잠시 고민을 하다가 일단 가장 보편적인 피쉬앤칩스를 사기로 한다.
줄을 서서 피쉬앤칩스를 사려고 하니 아까 점심을 먹은 곳과 같은 집이다.
유난히 사람이 많다 싶었더니 다른 곳보다 가격이 훨씬 싸네.
줄을 서서 기다려서 피쉬앤칩스를 산 다음 이번에는 케잌 종류를 파는 곳으로 이동한다.
여기는 건물 안에 있는 시장이다.
다양한 케잌을 살펴보다가 아무래도 사과가 맛있으니 사과 케잌도 맛있을 거라면서 사과 케잌을 샀다.
두 손이 점점 바빠지는군.
그런 다음 어묵으로 유명하다는 음식점을 찾아간다.
아니나 다를까 여기 역시 길게 줄이 늘어섰다.
우리나라처럼 키오스크로 대기하는 손님들을 관리하는 곳은 하나도 없네.
친구가 줄을 서 있는데 어떤 어묵이 맛있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그래서 한국인 손님이 막 나온 음식을 먹으려고 하기에 실례를 무릅쓰고 다가가 물었다.
가만히 보니 어묵과 피쉬스프에 샌드위치나 햄버거 등을 곁들여 먹는다.
우리는 세 가지 어묵을 사서 포장했다.
이제 호텔로 들어가면 된다.
호텔로 가는 길에 남편분 옷을 사겠다고 다시 나가는 양평 부부를 만났다.
칠순기념 여행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것만 사니 마음에 걸린다고 하면서.
기운이 참 좋으시다.
로비에 들어서니 바로 인솔자가 보인다.
카드키를 받고 짐을 찾아 올라가니 몸이 축 늘어진다.
그래도 다시 나가기로 한다.
포장해온 음식과 함께 마실 맥주를 사기 위해.
오늘이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밤 아닌가.
근처 편의점을 찾았지만 노르웨이에는 우리나라처럼 편의점이 촘촘하게 있지 않다.
차라리 마트를 찾는 게 낫겠다 싶어 지도를 확인하니 멀지 않은 곳에 마트가 있었다.
호텔에서 다시 내려가 마트 방향으로 걷다가 아시안마트를 발견했다.
반갑기도 해서 들어가니 우리나라 식품이 종류별로 보인다.
그런데 우리가 원하는 건 안 보여서 자주 보던 REMA1000으로 발길을 옮겼다.
바쁘다 바빠!
맥주를 사고 아이스크림을 사서 하나씩 먹다가 납작복숭아 생각이 나서 점원에게 물으니 없다고 하네.
납작복숭아랑 인연이 없나 보다고 아쉬워 하며 발길을 돌린다.
그런데 호텔에 도착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친구가 당황해하며 카드키가 없다고 한다.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하기에 우리가 다닌 곳이 뻔하니 다시 마트로 가 보자고 했다.
가는 길도 유심히 살펴보고, 아시안 마트에도 들어가 보고, 다시 REMA1000에도 가고.
그러면서 바닥을 훑어보다가 REMA1000에서 하얀 카드키를 찾았다.
얼마나 반갑던지...
사실 실수를 하면 기분이 좋지 않다.
실수로 인한 손해보다는 자신이 자꾸 실수를 한다는 생각에 울적해지기 쉽다.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호텔로 향한다.
가는 길에 만난 트램을 사진에 담는다.
내일 우리는 이 트램을 타고 베르겐 공항으로 이동해 귀국길에 오르겠지.
드디어 푹 쉬어도 된다.
알고 보았더니 다른 사람들도 모두 일찍 호텔에 들어와 쉬고 있었다고 한다.
모두들 같은 일정으로 걷고 비를 맞은데다 새벽부터 4시간이나 차에 시달렸으니 컨디션이 비슷하겠지.
다른 일정이 없으니 일찌감치 씻고 나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오따 호텔처럼 비좁은 공간이 아니라 시설 좋고 너른 방에서 씻고 나니 날아갈 것 같다.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는 노르웨이 텔레비전을 틀어놓고서 우리가 사온 음식을 늘어놓는다.
피쉬앤칩스에 어묵, 그리고 사과 케잌과 맥주.
그러고 보니 배낭에 안 먹은 사과도 있었네.
이만하면 훌륭한 저녁 식사지.
어묵은 식었어도 부드러워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아무래도 생선이 신선하니 어묵도 맛이 있겠지.
음식 양도 그만하면 되는데 맥주 안주 삼아 견과류까지 꺼내어 놓고 노르웨이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긴다.
비의 도시답게 베르겐의 밤은 젖어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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