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파티마로 가야 한다.
파티마로 가는 동안 버스에서 보다 만 영화 '파티마의 기적'을 계속 관람한다.
성모가 발현되었다면 가장 순수한 어린이를 찾아 모습을 드러내었겠지.
카톨릭 신도가 아닌 입장에서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종교에 신비스러운 일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정도의 경지까지 가면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다고 만류하는 소리도 들은 적이 있다.
파티마에 도착했다.
일단 호텔 로비에 캐리어를 보관해두고 파티마 대성당으로 향한다.
여기 역시 외관만 보고 분위기만 느끼고 오는 일정이다.
호텔에서 파티마 대성당까지 걸어가는 길 중간에 성모 발현을 목격했다는 세 명의 아이들 사진이 벽에 붙어 있는 걸 보았다.
파티마라는 도시는 이것으로 유지되고 있겠구나.
성모 발현을 목격한 세 명 중 두 명은 그 당시 유행하던 스페인 독감으로 사망했고, 당시 나이가 제일 많았던 루치아는 수녀가 되어 수녀원에서 생활했다고 한다.
세 명의 시신은 모두 파티마 대성당에 안치되어 있단다.
해마다 성모가 처음 발현되었던 5월 13일과 마지막으로 발현되었던 10월 13일이 되면 파티마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고 하네.
파티마 대성당 앞에 도착했다.
여기에서 자유시간을 주면서 가이드는 호텔에 오후 7시 30분까지 각자 알아서 찾아오란다.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오는 동안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지나온 것도 아니니 가능하겠지.
우리가 온 길을 머리 속으로 복기해본다.
파티마 대성당에 들어가 기도를 할 것도 아니니 할게 별로 없다.
성당 사진 몇 장 찍고 커다란 십자가 앞에서도 사진을 찍는다.
성당으로 들어가는 길 가운데를 보니 어린아이가 무릎으로 기어가면서 기도를 올린다.
갑자기 내 몸이 긴장되는 느낌이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스스로 이런 기도를 하는 것일까?
여기에서 기도를 하면 죄의 사함을 받는다는데 사람으로 태어난 원죄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세속적인 죄를 많이 지을 나이가 아니지 않은가.
그 아이를 보면서 인도 라다크에서 오체투지로 불탑을 돌던 사람들이 생각났다.
자신의 몸 다섯 군데를 바닥에 대고 하는 오체투지.
지금은 어떤 시위 목적으로 하기도 하지만 자신을 가장 낮추는 자세 아닌가.
몸을 풀어서
누에는 아름다운 비단을 짓고
몸을 풀어서
거미는 하늘 벼랑에 그물을 친다.
몸을 풀어서,
몸을 풀어서,
나는 세상에 무얼 남기나.
오늘도 나를 자빠뜨리고 달아난 해는
서해바다 물결치는 수평선 끝에
넋 놓고 붉은 피로 지고 있는데.
이수익의 < 오체투지 > 전문
이제 호텔로 돌아가야 한다.
호텔 방향 가는 길을 찾아가는데 올 때는 안 보이던 골목이 왜 이렇게 많대?
하필이면 스마트폰 로밍을 해 왔던 미야가 스마트폰을 두고 오는 바람에 내비게이션을 사용할 수도 없고.
이리 가고 저리 가도 올 때 보았던 성모 발현 아이들 사진이 있던 건물이 나오지 않는다.
분명히 초반에 길을 잘못 들었다.
다행히 호텔 이름을 기억해 지나가던 중년 남성에게 물으니 영어를 하나도 못 하네.
어째 이런 일이...
우리 넷은 졸지에 포르투갈에서 국제 迷兒가 됐다.
다시 기억을 더듬어 가는데 확실히 오던 길과는 다르다.
호텔 앞에 회전교차로가 아니라 大路가 있었는데...
이리저리 뱅글뱅글 돌다가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를 만났다.
미야가 영어로 길을 물으니 자기네 스마트폰을 켜서 자세히 알려준다.
얼마나 친절한지 고맙기 그지없네.
희야 스마트폰에 지도 사진을 찍어 놓고 좌회전을 한다.
어떤 때는 목적지를 코 앞에 두고 헤매기도 한다니까.
호텔 바로 근처에서 우리처럼 호텔을 못 찾고 헤매는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호텔을 못 찾아 인솔자에게 전화를 했단다.
우리를 만나고 그들은 또 얼마나 반가워하는지...
호텔을 찾았다 싶으니 마음이 놓인다.
시간 확인도 안 하고 길 옆에 보이는 수퍼마켓에 들어갔다.
와인은 있으니 오늘은 과일 위주로 시장을 보자고 하면서.
애플망고에 사과, 오렌지, 살구까지 다양한 과일을 샀다.
과일 가격이 우리나라 반값 정도밖에 안 해서 기분이 좋아졌다.
아쉽게도 희야가 노래를 부르던 납작복숭아는 여기에도 없네.
계산을 하면서 보니 버스 옆자리 모녀도 시장을 보러 왔다.
언제 호텔에 갔다 왔느냐고 하니 아예 파티마 대성당에 안 갔단다.
카톨릭 신도도 아니고 종교에 관심이 없으니 편히 쉬면서 하고 싶은 일을 했나 보네.
그게 현명한 일일 수도 있겠다.
그 모녀는 우리가 그라나다에서 시장 본 걸 부러워하더니 시간만 나면 오렌지 착즙 주스를 사서 들고 다니며 마신다.
오렌지 착즙주스도 이베리아반도에서 먹어야 할 음식으로 손꼽히기는 하지.
아무 생각없이 기분좋게 호텔로 들어가니 인솔자가 맞아준다.
우리가 정해준 시간에 안 오기에 가이드를 보냈단다.
우리가 안 와서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시간을 보니 7시 37분.
정해준 시간에서 7분 지났다.
인솔자는 낯선 곳에서 호텔까지 찾아오라고 한 가이드 잘못이라고 하지만 우리도 잘한 게 없다.
길을 잘 모르면 자세히 물어보든가 했어야 하고, 늦었는데도 시장까지 보고 왔으니 할 말이 없지.
인솔자에게 얼른 사과를 했다.
정말 미안하네.
캐리어를 방에 옮겨 놓고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내려갔다.
외국인을 포함해서 사람들이 무척이나 많다.
뷔페 음식 종류도 다양하고 맛도 스페인보다는 훨씬 좋다.
스페인 뷔페에서는 보이지 않던 생선요리까지 있어서 골고루 찾아 먹었다.
물가가 스페인보다 싸기 때문일까?
저녁을 먹은 후 잠깐 쉰 다음 우리 방에서 와인 한 잔 하기로 했다.
지야는 미야가 준 감기약 먹고 일찍 잔단다.
오늘 푹 자고 내일은 지야가 쌩쌩 날아다니는 컨디션이면 좋겠네.
여행 중에 아프면 난감하기는 하다.
본인도 힘들고 일행도 신경이 쓰이기는 하지.
와인을 마시며 과일을 종류별로 꺼낸다.
망고를 어떻게 하면 보기도 예쁘고, 먹기에도 좋게 잘 자르냐 한바탕 소동을 벌이면서 밤이 깊어간다.
다들 먹어보기는 했는데 직접 깎아본 적은 없단다.
그럼 누가 깎아준 거지?
망고는 정말 잘 샀다.
완숙되어 그런지 우리나라에서 먹던 것과 맛이 다르네.
살구는 생각보다 맛이 없고.
오늘 길을 잃고 겪은 일을 돌아보며 여러 가지로 민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희야는 다음에 여행을 한다면 스마트폰 로밍을 해야겠다고 한다.
패키지 여행이니 이런 일이 생길 줄 예상하지 못 했다.
그라나다에서 마을 수퍼마켓에 다녀오면서 미야를 너무 믿기도 했고.
포르투갈에서의 밤이 이렇게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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