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 구경을 하러 나선다.
해가 지기 전에 부지런히 발길을 옮겨야겠다.
일단 등대를 향해서 걷는다.
등대에 가까이 가면 다리로 연결된 내영산도와 외영산도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걸으면서 보니 정말 주변이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전국으로 홍어를 판매한다는 상점들, 다방, 허름한 식당...
그리고 저녁이 되어 돌아온 어선들과 배에서 일하는 것으로 보이는 외국인들.
다소 쓸쓸해 보이는 풍경이다.
걷다 보니 고래 모형이 보인다.
흑산도에 홍어공원이 아닌 고래공원?
조선시대에는 특별히 포경업이라고 할 게 없었는데 흑산도에 일제가 포경근거지를 만들었다고 한다.
그 당시 고래 波市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대형고래를 무려 1만마리 이상 잡았다고 하니 짐작이 되고도 남는다.
그때 여기 예리항 부근에서 고래를 잡아 해체하곤 했는데 일제 말에는 일제에 의해 잡힌 고래가 얼마나 많았는지 대형고래가 멸종 위기에 놓이기까지 했단다.
세월이 흘러 고래잡이가 불법이 되자 이곳 예리항 고래잡이는 이제 전설처럼 남아 있는 것이다.
사실을 알고 나니 씁쓸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 머리 속에 잠시 고래 파시로 성황을 이루던 풍경이 떠오르는 듯하다.
흑산도가 쇠락한 이유 중 하나가 고래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슬렁어슬렁 등대를 향해서 걷는다.
등대로 가는 길 입구에 흑산도 아가씨 동상이 서 있다.
흑산도는 이 노래를 빼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노래비가 있는 상라산 전망대에도 있었지만 2012년에 가수 이미자가 방문했을 때 만들었다는 핸드 프린팅도 보인다.
사실 노래는 1966년에 나왔다고 하니 이미자의 방문이 꽤나 늦은감이 있다.
이 노래가 대표곡으로 어디에든 소개되니 말이다.
등대로 가는 길목으로 접어들었다.
길 바닥에 고래 그림이 그려져 있다.
흑산도가 고래잡이가 한창일 때를 그리워하는 느낌이 드는구만.
룰루랄라 등대를 향해 걷는데 뉘 집 개인지 친구를 졸졸 따라다닌다.
나는 개가 친구를 알아본다면서 개띠 친구를 놀려댔다.
주변을 둘러보니 운동 삼아 걷는 주민 몇 명뿐 사람들이 별로 없다.
그런데 저쪽에 앉아 전화를 하는 여인이 보이네.
개를 바라보다 그 사람을 보니 개가 그 사람 반경에서 그다지 멀리 가지 않는다.
견주인 모양인데 무슨 전화이기에 밖에 나와 그리 오래 통화를 할까 쓸데없는 호기심으로 친구와 키득대며 웃는다.
걷는 동안 옆으로 파도가 치는 것 같은 길에서 장난을 친다.
금방이라도 파도가 사람을 덮칠 것 같은 그림을 바닥에 그려 놓았군.
바닥을 유리로 만든 것 같은 느낌을 주는데 실감나게 잘 그렸다.
어휴! 무섭네.
이번에는 영산도에 비친 노을이 아름다워 연거푸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석양을 배경으로 대영산도와 소영산도를 잇는 다리가 초생달처럼 보여 멋스럽다.
나도 모르게 자꾸 바라보게 된다.
이렇게 우리만의 여유있는 시간을 갖는게 여행의 참맛 아닐까.
등대에 도착했다.
하얀 등대에서 초록색 불빛이 반짝인다.
초록색 불빛은 배에게 어떻게 하라는 신호일까?
등대의 색깔에 대해서 전에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얀 등대를 한 바퀴 돌면서 사방을 둘러본다.
등대에서 보는 흑산항 모습이 다르게 보인다.
흑산도여객선터미널, 흑산시장 먹거리촌, 고만고만한 숙박업소들에 요양병원까지.
이제 발길을 돌린다.
불이 들어온 예리항을 따라 걷는다.
어디나 그럴지 모르지만 흑산도도 밤의 풍경이 더 다사롭다.
바다에는 해산물 양식을 위한 바지선이 보인다.
바지선 위에는 양식에 필요한 어구들로 보이는 것이 잔뜩 쌓여 있고.
흑산도에서는 주로 전복 양식을 하는데 전복의 먹이로 줄 다시마 양식도 더불어 한다고 한다.
다시마만 먹고 오랜 시간이 걸려 자란 흑산도 전복은 빨리 키운 완도 전복에 비해 자연산과 비슷하게 식감이 좋아 비싸게 팔린다고 자랑을 했었지.
어젯밤 홍도에서 먹은 꼬들꼬들했던 전복회가 생각난다.
동네를 돌면서 마트를 찾아 본다.
인터넷에서 흑산도에는 하나로마트가 있어서 필요한 물건을 대부분 구할 수 있다고 했는데 하나로마트가 안 보이네.
친구가 스마트폰에서 길을 찾아서 가 보니 문을 닫았다.
초저녁인데 문을 굳게 걸어 잠근 것으로 보아 폐업을 한게 아닌가 싶다.
우습게도 우리가 아이스바와 맥주를 산 홍도의 마트 이름도 '하나로마트'였다.
처음에 우리가 익히 아는 농협 하나로마트인가 고개를 갸웃 했는데 구멍가게 수준이었지.
골목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다행히 마트를 하나 찾았다.
마트는 생각보다 규모가 커서 원하는 걸 살 수 있었다.
몸에 열이 많아 늘 차가운 음식을 원하는 친구는 대형 빙과회사의 빙수, 나는 캔맥주 하나.
산 물건을 비닐봉지에 넣어 달랑달랑 들고 숙소로 향하는데 더욱 붉은 노을빛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이걸 놓치면 아깝지.
나중에 사진이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흑산도의 석양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번 여행 두번째 날이 이렇게 저물어간다.
저녁이 와서 하는 일이란
천지간에 어둠을 깔아놓는 일
그걸 거두려고 이튿날 아침 해가 솟아오르기까지
밤은 밤대로 저를 지키려고 사방을 꽉 잠가둔다
여름밤은 너무 짧아 수평선 채 잠그지 못해
두 사내가 빠져나와 한밤의 모래톱에 마주앉았다
이봐, 할 말이 산더미처럼 쌓였어
부려놓으면 바다가 다 메워질거야
그럴테지, 천지를 빼곡히 채운 이 어둠 좀 보아
막막해서 도무지 끝 간 데를 몰라
두런거리는 말소리에 겹쳐
밤새도록 철썩거리며 파도가 오고
그래서 망연한 여름밤은 더욱 짧다
어느새 아침 해가 솟아
두 사람을 해안선 이쪽저쪽으로 갈라놓는다
그 경계인 듯 파도가
다시 하루를 구기며 허옇게 부서진다
김명인의 < 천지간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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