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람선은 섬을 돌고돌아 앞으로 나아간다.
만물상 바위도 보이고, 사람이 누운 것 같은 형상의 바위도 눈에 들어온다.
여기는 그야말로 멋진 바위들의 전시장이네.
넘실넘실 넘어가는 가이드의 구수한 해설을 들으며 전설이 어린 부부바위를 올려다보느라 고개가 아프다.
저런 전설은 누가 만들어 내었을까?
요즘에야 의도적으로 '스토리 텔링'을 공모하기도 하지만 전설 따라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오랜 옛날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 든다.
시선에서 먼 곳에 병풍처럼 넓게 펼쳐진 바위가 보인다.
그 바위 가운데 뻥 뚫린 곳이 보이고.
독립문바위라고 하는데 정말 꼭 맞는 이름 아닌가 싶다.
마이크를 잡고 끊임없이 이야기하던 가이드가 숨을 고른다 싶자 근처에 있던 어선이 슬금슬금 다가온다.
근해에서 잡은 생선을 그 자리에서 회를 떠서 유람선 승객에게 파는 장터가 열리는 순간이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줄을 서서 회를 한 접시씩 들고 소주까지 더해 홍도를 즐긴다.
홍도 외에는 할 수 없는 특별한 시간이다.
가만히 보니 아까 사진을 찍어주던 사람이 어느 틈에 회칼을 들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네.
회 한 접시에 3만원이오, 소주 한 병에 5천원!
누구는 돈을 받으며 주문을 받고, 누구는 생선 껍질을 벗기고, 누구는 회를 뜨고...
손발이 척척 맞는다.
다 동네 사람들이고, 이웃이고, 친척 아닐까 싶어진다.
유람선 안은 순식간에 회를 먹으며 소주를 마시는 시끌벅적한 장터로 변했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홍도에서 하는 이런 이벤트를 베트남 하롱베이에서 따라 했다나.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지만 하롱베이에서 유람선을 타고 하는 그런 이벤트가 인기 있다는 이야기는 들은 기억이 난다.
이제 배는 슬슬 출발한 곳을 향해 간다.
연세 지긋한 분들만 산다는 홍도 2구를 지난다.
쫄깃한 회 몇 점, 소주 몇 잔에 사람들 마음이 풀어졌을까?
가이드의 말에 별 반응이 없다.
흥이 나지 않는 가이드도 그냥 먼 산을 보면서 마이크를 잡고 있다.
오늘 우리는 정말 운이 좋은 셈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혹시나 비가 오거나 안개가 심하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결과적으로 杞愚가 되기는 했지만 안개가 심하면 유람선을 타도 제대로 경치를 감상할 수가 없고, 풍랑이 심하면 아예 유람선 운행이 중단된다.
게다가 홍도에 갇혀 꼼짝 못 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예전에 날씨가 안 좋을 때 여행객이 10박11일 동안 홍도에서 못 나가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 작은 섬에서 꼼짝 못하고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
시간을 보내기 좋은 소일거리도 없고, 날씨가 안 좋으니 산책도 쉽지 않았을테고...
처음 울릉도에 갔을 때 파도가 높아 돌아오는 날 오전에 배가 못 떴다.
울릉도 入島客은 모두 先入先出이라 뒤로 밀리는 바람에 제 시간에 돌아오는 배를 못 탄 적이 있었지.
한번은 또 풍랑 때문에 1박2일 일정이 당일 일정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굴업도에서는 안개로 배가 못 떴는데 섬에서 나오기 위한 비상수단으로 비싼 돈 내고 어선 지하에서 마음 졸이던 일도 있었고.
이런저런 일을 겪다 보니 특히 섬 여행에서는 날씨 변수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승선한 지 2시간 15분만에 배가 드디어 선착장에 도착했다.
홍도의 바다를 가슴에 하나 가득 품은 시간이었다.
어디 먼 나라를 여행하고 온 듯 나른한 느낌에 몸이 둥둥 뜬다.
정신을 차리고 내려서 건어물상에 맡겨 놓은 짐을 찾으러 가려니 흑산도행 배를 탈 때 가져가란다.
잠시 쉬면서 삶은 거북손을 사 먹기로 했다.
만원에 한 접시인데 거북손이 워낙 커서 몇 마리 되지 않는다.
도시에서 먹은 것과는 크기가 정말 천지 차이군.
거북손을 먹은 다음 비린 맛을 없앤다고 아이스바까지 사서 입에 문다.
이번 여행을 하면서 정말 열심히 먹는다.
물론 그 지역의 특색있는 음식을 먹어 보는 것도 여행에서 중요한 요소이기는 하지.
다 먹고 짐을 찾으러 가니 건어물상 주인장께서 자연산이라면서 건어물 시식을 권한다.
이것저것 먹어보고 결국 자연산 홍합 말린 것과 아귀포를 샀다.
울릉도에서 먹었던 홍합밥이 생각나 홍합을 불려 홍합밥을 해 주겠다고 친구에게 큰소리를 땅땅 치면서.
홍도는 이렇게 내 마음에 멋진 점을 진하게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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