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굴업도 여행 (8)

솔뫼들 2019. 7. 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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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펜션으로 돌아가야 한다.

바람 속을 헤매고 다녀서 그런지 배가 고프다.

얼른 가서 밥을 먹어야지.

 

 밥상에는 고사리나물이 올랐다.

어제 펜션 담장 옆에서 말라가던 고사리가 밥상에 오른 모양이다.

연한 고사리나물이 입맛을 돋운다.

통신탑 주변에 고사리가 지천이더니 거기에서 따온 것일까?

들깨순이든 고사리든 곰취든 정말 부지런하면 먹을게 널려 있구나.

이런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베풀어주는 것인데 우리는 언젠가부터 자연과 멀어져 향기도 잊고, 맛도 잊고,

벌레 먹은 자국도 잃고 그저 비닐하우스에서 나온 공산품 같은 식재료에 익숙해졌다 싶다.

 

 옆방 친구들에게 어디를 다녀 보았느냐고 하니 방에서 쉬었단다.

어제 여자 친구가 연평산 가는 길에 벌레에 쏘이는 바람에 그만 다니기를 싫어 했다나.

여기까지 와서 꼼짝 않고 있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이다.

그러지 말고 함께 토끼섬에 가자고 말을 건네 본다.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

안개가 끼었어도 조업을 위해 배가 나간게지.

안개가 걷혔다 심해졌다 반복되는 바람에 오늘 우리가 타고 나갈 여객선이 들어올지 예측할 수 없단다.

덕적도에서 인천행 배가 출항했다는 소식이 마이크를 통해 마을에 울려퍼진다.

그러면 우리 배도 뜨는 것 아닌가 희망을 가져본다.

 

 그런데 비상 상황에서는 어선을 이용해 덕적도까지 가는 방법도 있다고 펜션 주인장이 알려 준다.

물론 선택은 본인 몫이겠지.

어선이 사람을 실어나르는 건 불법인데다 배에 타는 사람 신원도 확인이 안 된다.

물론 보험도 들어있지 않고.

배가 뜰 거라 했다가 대기중이라 했다가...

마음이 몹시 불편해지는군.

                        
이 그리움조차
끝끝내 그대에게 닿지 못한다
그걸 배우며 사는 자의 상처를 적시는 파도 소리
지치도록 퍼올려지는 바람결에
나 쓸쓸히 풍화하는 잠으로 누우면
그대 어느새 한 개 뜬 섬 축축한
눈물로 솟고
저물도록 출렁이는 수평선 위엔 자리 바꾸는
별빛 희미하게 껌벅거린다 

 

 김명인의 < 섬 > 전문

 작년 청산도에 갔을 때 들은 바로는 풍랑보다 안개가 더 무섭다고 했다.

그래서 며칠에 한번 꼴로 출항이 취소된다고.

내일은 비 예보가 있었으니 습기가 많이 몰려와 안개가 끼는 것인데 그런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다음에 섬에 갈 때면 장기예보를 통해 예측을 해야겠구나 생각한다.

섬에 들어오면 언제든 겪을 수 있는 일이다.

내가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니 마음을 비우자.

 

 밥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한 다음 토끼섬 물때를 알아 본다.

굴업도에 오기 전부터 친구는 토끼섬에 대해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

토끼섬 해식와(海蝕窪)를 꼭 보아야 한다고.

해식와는 바닷물에 의해 회오리 모양으로 패인 굴을 말한다.

굴업도는 정말 다양한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섬이다.

 

 

 

 12시경 물이 빠진다는데 바다를 즐길 겸 11시에 큰말 해변으로 나갔다.

너른 해변에 역시나 사람이 우리뿐이다.

바다 생물 흔적을 찾아 바위 틈을 기웃거리고, 게를 잡겠다고 스틱으로 모래 구멍을 파 보고, 불가사리 사체를 관찰하고...

자연은 늘 체험학습장 아닌가.

 

 물이 서서히 빠지기 시작한다.

내 마음이 공연히 급해져서 그러는지 모르지만 물이 들어올 때는 KTX 속도 같더니 나가는 데는 비둘기호 수준이다.

물이 빠질 때마다 한 발자국씩 토끼섬 가까이로 다가간다.

어떤 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이 기분도 괜찮은걸.

 

 그런데 멀리서 볼 때 손톱만하게 보이던게 사람이었네.

아하! 산을 따라가서 물이 빠지기를 기다리며 고동을 잡고 있구나.

어제 연평산 가는 길에 만났던 사람들이었다.

그분들도 여기저기 꽤 부지런하게 다닌다.



 

 가끔 물이 적게 빠지는 날이 있다는데 다행히 오늘은 물이 멀리 나간다.

물이 많이  빠졌다 싶자 조심스럽게 토끼섬 가까이로 다가갔다.

토끼섬 바로 앞쪽 바위들 모습도 눈길을 잡아끈다.

층층이 쌓아 놓은 것 같은 바위가 금세 떨어질 것 같기도 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타포니(Tafoni)도 있고,

인공 조형물 같은 바위도 있고...

 

 바위 구경으로 눈이 바쁘다.

하나라도 놓칠까 싶어 카메라를 들이대며 여기저기 돌아다닌다.

그런데 물에 잠겼던 바위가 엄청나게 미끄럽다.

몇 번이나 넘어질 뻔 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는다.

그나마 굴 껍데기를 밟아야 넘어지지 않는데 여기에서 넘어지면 굴 껍데기 때문에 곰보 되기 십상이겠는걸.

얼마나 긴장을 하고 한 발자국씩 옮겼는지 저절로 한숨이 나온다.

 

 드디어 토끼섬으로 넘어갈 수 있다.

거침없이 맨발로 물에 빠지는 걸 감수하고 가는 사람과 평소 릿지 산행을 즐긴다는 사람을 따라 나도 씩씩하게 들어간다.

발이 물에 빠질까 신경을 써야 하고, 바위에 낀 이끼와 물기에 미끄러질까 긴장을 늦출 수 없는데다 바위에 매달리기까지 해야 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암릉에서 하는 릿지 못지 않은 걸.

진땀이 다 나는구만.

 


 드디어 소문난 해식와를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파도 때문에 둥글게 파인 지점이 선명하게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면 좋으련만 물이 들어올까 걱정이 되어서 이 끝에서 저쪽 끝까지 서둘러 눈으로 훑는다.

토끼섬을 한 바퀴 돌아보려던 계획은 슬그머니 철회하고 사진을 찍은 다음 여러 번 와 봄직한 선배(?)를 따라 섬에 오른다.풀과 나무가 우거져 길을 잘 찾을 수 없는데 앞 사람들은 잘도 가네.

도대체 토끼섬 꼭대기에는 뭐가 있는 거야?

 

 섬에 오르니 눈에 들어오는게 별로 없다.

날씨가 좋으면 멀리 덕적도도 보이고 문갑도, 백야도, 선단여(삼형제 바위섬)도 눈에 들어온단다.

거기에 가까이로는 시원스럽게 펼쳐진 큰말 해변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뻥 뚫린다는데 오늘은 기대할 게 없네그려.

 


 바로 토끼섬에서 내려오는데 순간 수풀 때문에 길이 사라졌다.

이리저리 찾다가 겨우 길을 찾아내 한숨을 쉬고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딘다.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는 않다.

때로는 스틱으로 중심을 잡고 살금살금 미끄러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발걸음을 옮긴다.

휴! 다 내려왔다.


 토끼섬 입구에서 고동을 잡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지?

검은 비닐봉지에 고동이 한가득이더니만 민박집에 고동 삶으러 들어갔나?

토끼섬 해식와를 보기 위해 건너온 사람은 우리 포함해 대여섯 명 정도이다.

나머지는 그냥 왔다갔다 하더니만 슬그머니 자취를 감추었다.

우리처럼 발발거리는 사람도 많지 않구만.


 우리가 토끼섬을 빠져나올 무렵 옆방 젊은 친구들이 개머리언덕에서 내려와 토끼섬으로 왔다.

아직 시간 여유가 있으니 돌아보고 오라고 하면서 가는데 어제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던 적극적인 여인은 뒤늦게 우리 뒤를 따라 토끼섬에 들어갔다 나왔다.

남편으로 보이는 남정네는 근처에서 서성이다가 그만 발길을 돌리는데 두 사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직업상 그런 분위기를 잘 알아채는 친구 말이 부인만 혼자 다녀와서 남편이 삐진 것 같단다.

두 사람이 셀카봉으로 사진도 찍고 하더니만 여자만 후딱 앞서서 민박으로 가 버린다.

억지로 남편 비위를 맞추려고 했는데 효과가 없으니 그만 여자도 토라졌나 보네.

부부가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경우를 전에도 본 적이 있어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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