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이순신 호국길에서 ; 남해 바래길 13코스

솔뫼들 2016. 5. 1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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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길 위에 서기 위해 떠난다.

이번에는 남쪽 끝 남해 바래길을 찾아서.

동해를 따라 해파랑길 770km를 걷고,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을 걸은 다음 선택한 문화생태탐방로가 바로 남해 바래길이다.

'바래'라는 뜻은 남해 사람들이 척박한 환경에서 바다를 생명으로 여기고 물때에 맞추어 갯벌과 갯바위 등에서 해초류와 해산물을 캐는 행위를 일컫는 남해의 토박이말이라고 한다.

 

 남해 바래길은

'빠르면 빠를수록 삭막해집니다.

느리면 느릴수록 행복해집니다.

남해 바래길은 삶의 제안입니다.'라는 문구로 나를 손짓했다.

그래 행복해지기 위해 보물섬 남해로 떠나는 거야.

 

 

 무려 4시간 30분을 버스에서 보내고 남해에 내리니 여기도 역시나 미세먼지의 영향으로 뿌옇다.

하지만 어쩌랴.

여기까지 왔는데 실내에 들어가 꼼짝 않고 있을 수는 없지.

남해 터미널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고 남해대교 입구에서 내린다.

남해대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알려져 있는 현수교이다.

이 다리의 개통으로 남해는 모름지기 육지가 된 셈이다.

 

오늘 걸으려는 코스는 남해 바래길 13코스 이순신 호국길이다.

남해안에는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적이 아주 많다.

남해도 예외는 아니다.

이순신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후 유해를 잠시 모셨던 곳에 사당인 충렬사를 세웠는데

충렬사에서부터 이순신 호국길이 시작된다.

지난 번 한려해상 바다백리길을 걸을 때 한산도에서 충렬사를 돌아보았기 때문에 이번에 충렬사는

건너뛰고 대신 바다에 떠 있는 거북선 모형의 배에 올라 그 당시 군인들의 생활을 엿본다.

여행하기 좋은 계절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제법 많다.

 

 

 단체 관광객이 타고 온 버스가 보이고 어수선한 곳을 빠져나와 이순신 호국길로 들어선다.

길을 걷는 중간중간 이정표는 잘 되어 있다.

그런데 이정표에 거리 표시도 되어 있으면 좋겠는걸.

아직 마무리가 덜 되었는지 리본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길은 바다를 따라 난 데크를 걷다가 남해 대교 아래를 지나고 나면 평범한 어촌으로 접어든다.

멀리 광양의 높은 굴뚝들이 보인다.

저 굴뚝들은 제철소의 굴뚝일까?

특별할 것 없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미세먼지 때문에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에 눈을 준다.

터미널에 위치한 대형마트에서 마스크를 샀지만 마스크를 하면 호흡이 거칠어져 걷기가 거북하다.

그렇지 않아도 기온이 올라가 더운데 참자고 하면서 가능하면 코로만 호흡을 하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네.

올해는 유난히 미세먼지가 우리를 괴롭히는 날이 많다.

 

 

 물이 빠지는 시간인가?

드러난 갯벌에서 무언가를 캐는 어민이 보인다.

조개나 게 등을 캐어서 생활에 보태는 모양이지.

뙤약볕에 허리를 굽히고 갯벌을 헤매고 있는 모습에서 삶의 고단함이 묻어난다.

 

 햇볕 피할 곳 하나 없는 바다 옆을 따라 걷다가 산길이 나오면 그나마 반갑다.

주로 도로변 포장도로라고 해서 걱정을 했는데 얼마나 다행인가.

산길을 지나면 이어지는 다랭이밭.

거기에는 어김없이 마늘이 심겨 있다.

이곳 날씨가 따듯해서인지 아니면 일찍 심어서인지 마늘은 벌써 마늘쫑을 내밀고 있고

내다 팔려는지 마늘쫑을 따는 아낙네의 손길이 분주하다.

마늘이 남해 특산물이었지.

 

 

 지나는 길에 남해 마늘을 홍보하는 문구와 행사를 보았다.

남해 마늘로 생각한 것보다 많은 가공식품을 만드는 모양이다.

마늘로 만든 차를 시식하는 행사도 있는 것 같고.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마늘이지만 늘 음식에 넣거나 구워 먹는 정도였는데

여기 오니 마늘의 다양한 쓰임새를 생각하게 된다.

심지어 마늘을 먹여 키운 한우가 맛있다고 한다.

일부러 한우를 찾아 먹으러 갈 일은 없지만 마늘을 먹인 소고기는 어떤 맛이 날까 궁금하기는 하다.

 

 

 

 산길을 벗어났지만 깊은 산골 같은 느낌이 드는 곳으로 접어들었는데

밭에서 일을 하시던 아주머니가 화들짝 놀라셨다.

우리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고 멧돼지인줄 아셨단다.

공연히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그런 길을 어느 만큼 걸었을까?
이번에는 우리가 놀랄 차례이다.

길 앞을 후다닥 가로질러 달려가는 저건 뭐지?

고양이처럼 생겼는데 야생화된 길고양이인가?

고양이치고는 몸집이 큰 것 같다고 하자 친구는 고양이가 아닌 것 같다고 한다.

그럼 삵일까?

삵이 있다는 말은 들었는데...

 

 

 한동안 산길과 바다에 면한 밭길이 이어지더니 관음포에 가까워졌는가?

이순신 장군의 어록으로 만든 안내판이 이어진다.

작년에 본 영화 '명량'에서도 나왔지만 이순신 장군이 한 말들은 이미 인구에 회자되어 많이 들은 내용들이다.

한번씩 읽으면서 지나간다.

우리나라에서 이순신 장군처럼 자신을 희생해서 나라를 구한 인물이 또 있던가.

곳곳에서 이순신 장군을 기리는 경쟁이 일어나지만 그만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 까닭이다.

 

 어록 안내판이 끝날 즈음 관음포에 도착했다.

오가면서 차창을 통해 두 번이나 본 곳이다.

공원을 조성하고 있는데 아직 미완성이라 영상관 건물만 덩그러니 서 있다.

영상관을 지나 李落祠에 오른다.

이락사는 이순신 장군이 전사한 후 유해가 처음 육지에 내려진 곳이란다.

그런 다음 관음포를 지나 운구된 유해가 잠시 모셔졌던 곳에 충렬사가 세워진 것이라고.

결국 이순신 호국길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운구되던 길을 따라 걷는 길인 것이다.

 

 

오후 1시 30분쯤 걷기 시작해 오후 4시경 관음포에서 걷기를 마쳤다.

남해 바래길 관련 안내지도를 얻을 겸 관광안내소를 찾아 지도를 얻고 버스 시간을 알아 본다.

주변에 잘 곳, 먹을 곳도 마땅치 않아 다시 남해읍으로 들어갈 생각으로.

그런데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고 진주나 하동 등 어느 곳에서 시외버스가 들어오느냐에 달렸다고 한다.

마냥 기다려야 할 판이다.

 

안내판 앞에서 사진을 찍고 도로변에 나가 무턱대고 버스를 기다린다.

미처 도착하기 전에 버스가 한 대 지나가더니만 버스는 올 기미가 없고 슬슬 지루하고 지쳐갈 찰나

관광안내소에서 안내해 주시던 분이 어디를 다녀오는 길에 버스를 기다리는 우리를 보더니만

5시 퇴근길에 남해읍까지 태워다 줄 수 있단다.

 

신세를 지기로 하고 기다리는 동안 남해 유자빵을 사서 요기를 한다.

거제도 유자빵이 새콤달콤하고 맛있었는데 이곳 유자빵은 맛이 어떨까 궁금하기도 하고.

재래종 유자나무에 열린 유기농 유자에 유정란을 재료로 만들었다는 유자빵은 건강식품이라고 하는데

신맛이 덜 해서 친구도 좋단다.

그럼 거제도 유자빵에는 신맛을 더 첨가한 것인가?

 

 

 관광안내소 직원 덕분에 편안하게 이동하면서 설명도 듣는다.

주차장 주변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주민이라고 한다.

이순신 영상관 주변에 엄청한 크기의 공원과 체험공간을 조성하는데 매립된 논을 수용해 공사중이란다.

대신 땅을 수용당한 사람들에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고.

거기에서는 주변에서 나는 농산물과 산에서 채취한 산물만 팔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아하! 주차장 앞쪽에 줄을 지어 앉아서 고사리나 두릅, 마늘쫑 등을 팔던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었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남해 터미널 앞에서 내려 숙소를 찾는다.

숙소에 짐을 풀고 저녁 먹을 곳을 물으니 마땅치 않다고 하면서 시장 근처 한 곳을 알려 준다.

필요한 먹을거리도 사고 시장 구경도 할 겸 나섰다.

시장은 일찌감치 문을 닫는지 비교적 조용하고 숙소 주인이 알려준 식당도 일요일이어서인지 문을 닫았다.

하는 수 없이 문을 연 가게에서 다시 근처 음식점 추천을 부탁하니 한 곳을 일러준다.

 

 이것저것 가릴 것 없이 방황(?)을 끝내고 바로 식당을 찾아갔다.

여러 신문에 났다는 기사가 벽에 붙어 있고,

주인 아주머니 글솜씨가 좋은지 지역신문에 남해 생활을 바탕으로 쓴 글도 보인다.

잡어를 넣어 끓인 매운탕을 넉넉하게 먹고 밤 거리로 나선다.

여기가 남해로구나.

통영보다 덜 관광지 같고 조용한 동네여서 휴양지 같은 느낌이 드는 곳 남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