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다랭이지겟길에서 ; 남해 바래길 1코스 (1)

솔뫼들 2016. 5. 13.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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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나마 신기한 구경을 하느라 시간을 보내고 오후 2시가 가까워 버스에 올랐다.

한 나절 걸었으니 평산항에 도착하면 무얼 먹을까 생각을 하면서.

그런데 평산항에 내리니 횟집 외에는 없다.

갈 길이 먼데 다리 펴고 앉아서 회를 먹을 일은 없고 어쩐다?

 

 오후 2시 30분, 마음을 굳게 먹고 오늘 점심은 배낭에 든 비상식량으로 해결하기로 했다.

해파랑길 걷는 동안 해본 것 아닌가.

잠깐 길을 따라 걷다가 멀리 힐튼남해 리조트가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왕이면 전망 좋은 곳에서 점심을 먹자고 하면서.

가져온 빵과 스프로 허기를 채우고 곧장 일어선다.

오후에 갈 길이 더 멀지.

 

 

 1코스는 평산항에서 가천 다랑이마을까지 가는 길이다.

어떤 길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지만 오후에 이 길을 다 걷기는 빠듯하다.

그렇다고 중간에서 멈추면 차편이 그리 원활하지 않으니 내일 힘들어질테고.

일단 걷는데까지 걷기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을 지나자 나즈막한 산비탈에 일군 밭이 나타난다.

남해는 섬인데도 높은 산이 많다.

일단 남해 하면 보리암과 더불어 떠오르는 금산, 남해에서 가장 높은 망운산, 가천 마을 뒷산인 설흘산, 용문사가 있는 호구산 등등.

이런 산자락을 일구어서 계단식 밭을 만들었으니 연세가 드신 분들이 비탈밭에서 일을 하기가 얼마나 힘이 들까?

농사일을 하면서도 미끄러질까 봐 발에 힘을 주어야 하니 갑절 힘이 들 것이다.

 

 

감자, 마늘, 완두콩들이 심긴 밭 옆을 지난다.

일찍 심었는지 완두콩도 벌써 꼬투리를 달고 있고, 간혹 옥수수도 잎을 키우고 있다.

감자도 잎이 꽤 자란 걸 보니 알이 굵어졌겠는걸.

누가 시골 출신 아니랄까 봐 줄줄이 농작물을 보면서 혼자 중얼거린다.

 

가는 길에 세워진 이정표를 살핀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일이람?

아까도 유구마을이었는데 계속 이어지는 이정표마다 유구마을이란다.

유구마을은 동네가 커서 그런가 아니면 여기저기 집들이 띄엄띄엄 있어서 그런가

정말 유구하게 이어진다고 투덜거린다.

걸어도 걸어도 유구마을...

 

 

 마을길을 걷다 산길이 나오면 잠시 그늘에 몸을 담그고

산길을 벗어나면 다시 해안길에서 바닷바람과 놀고...

지나는 길가에 시멘트로 만든 설치물이 보이기에 무슨 용도인가 싶었더니만

바닷물을 끌어들여 전복을 양식하는 곳이었다.

이렇게 양식을 하면 날씨의 영향을 덜 받으니 위험부담이 줄어들겠군.

전복 양식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는 값도 비싸고 물건도 귀해 보통 사람들은 전복 구경하기도 힘들었는데

양식 덕분에 쉽게 전복을 먹게 되었으니 역시 기술 발달이 대단하기는 하다.

 

드디어 유구마을을 벗어나니 사촌해수욕장이다.

남해 바래길을 걸으면서 보면 해수욕장이나 항구라고 해도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고만고만한 해변이 이어져 있고 자그마한 숙소들이 몇몇 보이는 곳들이다.

몽돌해변 역시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몽돌을 주루룩 던져 놓은 것만 같다.

 

 

가다가 만난 풍경은 영락없는 60~ 70년대 시골 마을 풍경이다.

아직도 우리나라에 소로 밭을 가는 사람들이 있었네.

느릿느릿 꾸려가는 섬마을이 바로 여기였구나.

소도, 소로 쟁기질을 하는 농부도 내 어릴 적 고향 모습 같아 공연히 코 끝이 찡하다.

 

물먹은 소 목덜미에

할머니의 손이 얹혀졌다

이 하루도

함께 지났다고

서로 발잔등이 부었다고

서로 적막하다고

 

   김종삼의 < 묵화 > 전문

 

다시 잠깐 엉뚱한 길로 들어섰다.

설흘산으로 올라가야 하나 보다 했더니만 이정표가 옆으로 쓰러져 있는 바람에 실수를 한 것이다.

지쳐서 어떻게 올라가야 하나 걱정을 했는데 다행이라면서 발길을 되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