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비진도 산호길에서 (1)

솔뫼들 2016. 3. 5.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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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후 3시 10분경 비진도 외항에 도착했다.

비진도는 내항과 외항, 두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比珍島.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 신비롭고 가 보고 싶은 느낌이 들지 않는가.

아니 아끼는 마음으로 숨겨 두고 싶은 느낌이 든다고 해야 맞지 않을까.

 

 

 비진도는 미인도라고도 불리는데 '산수가 수려하고 풍광이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해산물 또한 풍부하여 가히 보배[珍] 에 비(比)할 만한 섬'이라 하여 그런 이름을 얻었다고도 하고,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로운 곳'이라는 뜻에서 비진도가 되었다고도 한다.

거기에 산호빛 해변까지 더해졌으니 말해 무엇 하랴.

비진도 바다백리길 이름이 산호길인 것이 거기에서 비롯되었겠지.

 

 

 오후 3시 30분 본격적으로 산호길 입구로 들어섰다.

외항 마을 한가운데 있는 망산을 돌아 내려오는 코스이다.

배를 타기 전부터 으실으실 춥고 두통이 있어 약 두 알을 사서 주머니에 넣었는데 잘 견딜 수 있을까?

약간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그리 큰 산도 아니니 일단 걷는 거야.

그렇게 마음을 먹고 한 발 내딛는데 은은하게 향기가 풍겨온다.

매화꽃에 마음을 빼앗기니 언제 컨디션이 안 좋았나 금세 잊었다.

 

 경사진 산밭을 지나자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바닷가라고 얕보았는데 그럴 일이 아니었네.

겉옷을 하나 벗어 배낭 사이에 끼우고 오르는데 금세 숨이 거칠어진다.

해발 200m나 300m나 1000m나 4000m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니까.

친구도 뒤따라오며 쉬운데가 없다고 한 마디 한다.

 

 

 언제 추웠냐 싶게 몸에 열이 난다.

허리 통증도 많이 걸은 다음날은 멀쩡해지더니 감기 기운도 사라졌다.

역시 걷는 것이 만병통치약이라니까.

수도권 산과는 달리 여기는 푸른색이 눈에 많이 띈다.

무언가 생명력이 느껴져서 저절로 기운을 받는 느낌이 든다고나 할까.

 

 사람들이 하나도 없던 산에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린다.

여대생으로 보이는 사람 둘이 헉헉대며 올라온다.

잘 걷는다고 한 마디 해 주니 미인전망대에서 비진도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고는

배 시간에 쫓겨 빨리 내려가야 한단다.

섬이다 보니 늘 배 시간이 문제가 되는군.

 

 발 아래로 절구통 같기도 하고 잘록한 개미 허리 같기도 한 해변이 내려다보인다.

희한하게 두 섬이 그렇게 연결이 되었네.

작은 섬인데도 섬 한가운데는 산이 있고 산 아래쪽에 옹기종기 소꿉놀이하듯 집들이 모여 있다.

조금 높은 건물은 우리 같은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일테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오늘 여기에서 하루를 묵는다고 해도 해가 지기 전에는 산에서 내려가야겠지.

낯선 곳이다 보니 조금은 긴장이 된다.

산길에는 돌이 많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흔들바위를 지난다.

하늘로 올라간 선녀가 홀로 남은 어머니의 식사가 걱정이 되어 땅으로 내려보낸 밥공기 모양의

바위가 이 흔들바위라는 전설이 전해 온단다.

 

 엎치락뒤치락 하는 것 같은 길이 이어진다.

그러더니만 이번에는 계단길.

정말 있을 건 다 있다니까요.

 

 

 선유봉(해발 312m)에 도착했다.

겨우 300m라고 가볍게 여겼는에 역시나 힘이 드는군.

곳곳에 만들어진 전망대에서 점점이 떠 있는 섬을 바라본다.

날씨가 흐릿해 전망이 좋지는 않지만 정말 섬이 많다.

전망대에는 지명에 대한 설명도 친절하게 붙여 놓았다.

노루여, 설핑이치, 거미끝치...

소박하고 정겨운 이름들이다.

 

 어디선가 후두둑 소리가 들린다.

산짐승이라도 있는 건 아닐까?

귀를 쫑긋 하고 사방을 둘러보니 아래쪽으로 둘러앉아 있는 것이 모두 까마귀이다.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크다.

자기가 이 섬 주인이라는 듯 사람이 지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서도 눈길 한번 안 주네.

 

 

 한참을 걸었다.

고사목이 길을 가로막기도 하고, 기묘한 인상을 주는 바위도 있고,

금세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 같은 곳도 있고...

그러더니만 길이 순해진다.

한결 마음이 편안해졌다.

 

 길가에 있는 나무들을 바라본다.

짧은 안목에 아는 것이라고는 동백나무, 사철나무가 전부이다.

우리가 중부지방에서 후박나무라고 알고 있는 것은 칠엽수라고 했었지.

후박나무는 이곳처럼 아열대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이고.

여기가 후박나무 자생지란다.

가는 길에 보이는, 잎이 반짝이는 나무에 눈을 준다.

잎이 다섯장 정도 보자기처럼 펼쳐져 있는 저 나무가 붓순나무인가?

다 비슷비슷해 보이지만 관심을 갖고 안내문의 사진과 비교해 보느라 걸음이 느려졌다.

 

 길이 오른쪽으로 돌아든다.

걷다 보니 나타나는 집 한 채.

위쪽에서 언뜻 지붕이 보이기에 산중에 마을이 있나 보다 했더니만 비진암이다.

돌담으로 둘러싸인 고즈넉한 암자에 인기척 하나 없다.

나도 덩달아 발걸음소리를 줄이고 암자를 지난다.

 

 

 어둑어둑하게 느껴지는 대숲을 지나고 나니 언제 그랬냐 싶게 평지이다.

거의 다 내려온 모양이다.

계단식 밭이 이어지는 곳에서 재잘거리는 저건 무슨 새지?

"후여!"

일부러 소리를 내 보니 정말 작은 새들이 무리지어 날아간다.

너무 작아 보여 모양이나 빛깔을 구별할 수 없을 정도이다.

까마귀와는 대조적이네.

 

 오후 5시 10분, 다 내려왔다.

스마트폰 앱으로 측정한 결과 거리는 4.8km쯤 된다.

미리 알아본 바와는 다르다고 친구는 투덜거린다.

비진도 산호길은 내항까지 걷게 되어 있는데 외항쪽 거리만 이러니 잘못 측정되었다는 것이다.

외항과 내항 거리를 합해 알려주어야 하는데 우리 같은 초행인에게는 문제가 될 수도 있겠지.

무인도가 아니니 큰 일이 나지는 않겠지만 하루에 걷고 섬에서 나가려고 하던 사람이 섬에 갇힐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제는 섬을 둘러보며 개미 허리로 보이던 산호빛 해변을 지나 묵을 곳을 찾아야 한다.

마을을 돌며 펜션을 알아보는데 가격이 만만치 않다.

인원과 상관 없이 80000원 이상이란다.

비수기에 평일인데도 이러면 주말에는 더할텐데

증도처럼 소문이 나쁘게 나서 장기적으로는 사람들이 외면하지 않을까?

 

 울며 겨자 먹기로 한곳에 짐을 풀고 비진 외항 마을에 하나밖에 없다는 음식점을 찾아가니

저녁 6시도 안 되었는데 식사가 안 된단다.

여러 가지로 마음에 안 드는군.

하는 수 없이 음식점을 겸하는 가게에서 라면과 통조림 등을 주섬주섬 사고 김치를 조금 얻어 나오는데

우리에 앞서 식품을 사 갔던 젊은이가 되돌아와 물건 값을 확인한다.

아무래도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든 게지.

라면 하나 값이 무려 1500원에 참치 통조림 값이 3000원이나 하니 완전히 바가지를 쓴 셈이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다른 가게에서 '햇반'에 햄을 더 사서 숙소에 들어왔다.

그래도 밥을 먹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기면서 김과 멸치볶음, 햄에 김치를 더해 저녁을 때운다.

유난히 천천히 데워지는 방에 나왔다 끊겼다 하는 온수...

예쁜 이름을 가진 비진도는 우리를 이렇게 실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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