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한산도에서 (1)

솔뫼들 2016. 3. 7.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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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는 금세 한산도 문어포에 달랑 우리만 내려 놓고 떠났다.

배에서 내려 두리번거리면서 어디에서 버스를 탈 수 있나 찾아 보니

버스 시간표가 붙은 곳이 있는데 도무지 어떻게 시간을 계산하는지 알 수가 없다.

하는 수 없이 바지선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분들에게 물으니 길을 따라 올라가야 버스를 탈 수 있다고,

10시쯤 버스가 도착하니 빨리 올라가라고 일러 준다.

 

 갑자기 100m 선수라도 되는 양 무거운 배낭을 메고 가파른 길을 질주한다

마을 어르신을 만나 다시 여쭈니 고갯길을 가리키며 버스가 곧 올 거라고 하신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정류장에 도착했다.

섬에서는 버스가 배 도착시간에 맞추어 다니므로 이걸 놓치면 얼마나 기다려야 할지 기약이 없겠지.

숨을 돌리고 있는데 마을 아낙네 한 분이 지나기에 또 물어보니 같은 대답이다.

버스가 곧 오겠구나.

 

 

 

 

 그런데 '곧 오겠지.' 하고 기다린 시간이 30분을 넘겨도 버스는 올 기미가 없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가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보지만 뾰족한 대답을 들을 수 없다.

스마트폰 앱에는 11시 20분에나 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나.

1시간을 넘게 기다리다 통영시청으로 전화를 하니 한산면사무소로 연결해 준다.

혹시나 콜택시를 부를 수 있을까 했더니만 한산면에는 아예 택시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섬이 꽤 커 보였는데...

성격 급한 내 인내력을 시험하는 것 같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듣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 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 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이성부의 < 봄 > 전문

 

 마음을 비우고 근처를 빙빙 돈다.

폐교가 된 초등학교 건물 앞에는 누구 동상인지 쓸쓸하게 서 있고 건물은 시나브로 무너져 내리고 있다.

운동장은 이미 밭으로 변해 지난 가을 추수한 흔적만 남아 있고.

이 동네에 어린 학생들이 있으면 그 아이들은 어디로 학교를 다닐까?

그런 생각을 하니 갑갑하다.

 

 

 버스를 기다리다 지쳐 장난감 삼아 카메라로 여기저기 찍어대는데

멀리 높은 탑이 보인다.

저게 뭐였지?

그러자 친구가 한산대첩기념비라고 일러준다.

저기까지 다녀오려면 얼마나 걸릴까?

내가 중얼거리자 친구는 얼마 안 걸릴 거라고 다녀오란다.

 

 

 움직이기 싫어하는 친구는 정류장에서 배낭을 지키며 음악을 듣는다 하기에

나만 후다닥 뛰다시피 걷는다.

마을로 들어서자 한산대첩기념비까지 5분 걸린다고 되어 있다.

거리로 표시를 해 놓아야지 누구 걸음으로 5분인 거야?

구시렁거리며 길을 따라 걷는데 생각보다 멀게 느껴진다.

깨끗하게 정비된 길이 여기가 바로 한산도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저절로 옷깃이 여며진다.

 

 

 배 위에 높이 솟은 형태의 비석을 한 바퀴 돌아본다.

거북선을 본뜬 좌대 위에 세워진 비석에는

鶴翼陣으로 이순신 장군이 왜적선을 무찌른 내용이 씌어 있다고 한다.

이순신 장군의 애국심과 위대함, 희생정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새삼스럽게 존경하는 마음이 생긴다.

 

 발길을 돌린다.

혹시나 버스가 올까 염려가 되니 저절로 발걸음이 빨라진다.

헉헉대며 뛰어가 숨을 돌릴 만할 때 버스가 한 대 도착했다.

얼른 배낭을 메려고 하자 운전기사가 손짓을 한다.

버스를 돌려나올 때 물으니 우리가 가려는 진두에는 가지 않는단다.

조금 있으면 진두 가는 버스가 온다고 또 기다리라 하네.

이성부 시인이 봄은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고 했는데

버스는 기다려도 안 오는구나.

 

 

 또 멀거니 앉아서 기다리다 지칠 무렵 오전 11시 40분경 버스가 한 대 왔다.

이번 버스 기사는 바닷가에서 차를 돌아나올 거면서 우리 보고 얼른 타란다.

무려 2시간 가까이 기다려 버스를 타고 나니 감개무량하네.

보퉁이를 하나씩 안은 村老들이 가득 찬 버스는 마을을 하나 지날 때마다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버스는 이리 돌고 저리 돌다 우리를 진두에 내려 놓았다.

여기에 면사무소도, 학교도, 보건지소도 있단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지쳐서 간식을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점심을 먹어야겠지.

 

 눈에 띄는 음식점 두 곳을 눈으로 비교해 보다가 한 곳에 들어가 7000원짜리 백반을 시켰다.

그런데 여기는 가격 대비 음식이 잘 나온다.

비진도에서의 바가지 요금에 질린 나머지 전혀 기대를 하지 않았었는데...

그리고 우리 보고 산에 오를 거냐면서 2시간 30분에서 3시간 정도 걸린다고 친절하게 알려 준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우리를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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