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한산도 역사길을 걸으며 (3)

솔뫼들 2016. 3. 10.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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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망산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다시 걸음을 옮긴다.

여기까지 오는데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지금 같은 오르막길이 이어지지는 않겠지만 지금까지 온 것보다 2배 이상 걸어야 한다.

마음을 다잡고 걸음을 옮긴다.

 

 

 한동안 오솔길 같던 길에 바위가 나온다.

살짝 신경이 쓰여서 지루할 틈이 없다.

이렇게 다양한 길이 나오면 투덜거릴 여유도 없어지지.

걷는데 정신을 집중해야겠다.

바다도 섬도 안 보이는 길에서 혼자 중얼거린다.

 

 망산교를 지났다.

작지만 깔끔하게 단장된 다리를 보니 만들어진 지 오래 되지 않았나 보다.

친구 말에 의하면 우리가 문어포에서 진두로 이동할 때 이 다리 아래를 지나갔단다.

마을과 마을을 잇는 길을 만들기 위해 산 중간에 길을 낸 모양이다.

 

 

 길은 마음을 놓을라 치면 다시 긴장하고 올라가라 하고

힘들어 헉헉거리면 다시 착한 길로 안내한다.

때로는 살짝 언 흙길이 발끝을 조바심나게 하고

흩뿌려 놓은 솔가리도 내 발을 멈칫거리게 한다.

 

 얼마쯤 걸었을까?

비슷비슷한 길에 물 한 모금 마실 틈도 없이 걸었다.

등에는 땀이 흠뻑 나서 겨울인가 봄인가, 아니 여름인가 헷갈릴 정도이다.

삼거리 이정표가 보이는 곳 벤치에서 잠깐 쉬면서 물을 마시고 초콜릿 하나를 꺼내 입에 넣으며 숨을 돌린다.

바닷길이라고 방심하고 왔더니만 그게 아니었군.

운동 제대로 하는구만.

 

 

 그나마 한동안 이어진 쭉쭉 뻗은 소나무에서 기운을 얻었다.

곰솔 군락이 이어지는 곳에서 만난 건강한 소나무는 얼마나 반갑던지...

청청한 소나무 기운을 받으며 충전을 하는 느낌이다.

누가 심었을까 아니면 저절로 자란 것일까?

해풍에 시달리면서 근사한 몸피를 만들기까지 그 세월이 얼마였을까?

 

 500m 간격으로 서 있는 이정표를 확인하면서 걷는다.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나니 또 나타나는 상록수 군락지.

이 씩씩한 나무는 화백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걷는다.

소나무도, 측백나무도, 편백나무도 아닌데...

아무튼 푸른 나무들이 잇달아 있으니 기분은 좋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경사가 가파른 걸 보니 여기만 내려가면 덮을개가 나오겠군.

'덮을개'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재미있는 이름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다른 곳처럼 여기도 임진왜란과 관련된 것 아닌가 싶어서 순간 마음이 움츠러든다.

 

 오후 3시 40분, 드디어 덮을개에 도착했다.

이정표상에 7.2km라 되어 있는데 2시간 50분 걸렸다.

오래 쉬지 않았고 길이 험하지 않았는데도 오래 걸린 건 오르막길이 많았기 때문이리라.

이름은 없어도 작은 봉우리를 서너 개는 넘은 것 같다.

정말 큰 산이나 작은 산이나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니까.

 

 

그런데 산행을 시작할 때 마음가짐이 다르니 더 힘들게 느껴지는 것 아닐까.

안내도에는 한산도 역사길이 12km에 4시간 걸린다고 되어 있는데 이또한 시정되어야 하리라.

진두에서 덮을개까지 천천히 걸으면 4시간이 걸릴 수는 있지만 거리 표시는 정확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직 바다백리길이 자리를 잡지 않았는지 다녀간 사람들의 흔적도 거의 없다.

평일이기는 하지만 썰렁하다고 할 만큼 산길에는 우리밖에 없었다.

 

길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통영 출신 예술가들을 알리는 시와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김춘수, 박경리, 김상옥, 전혁림 등등.

그러고 보면 통영은 藝鄕이다.

전혁림 화백의 그림이 그려진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코 끝을 스치는 향기.

저절로 향기를 따라가니 매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툭툭 꽃망울을 터뜨린 것도 있고, 아직 봄을 가득 품은 채 하늘을 향한 것도 있고.

나 또한 봄을 가슴 가득 안고 선착장으로 향한다.

나는 어느 새 봄길이 된다.

 

매화꽃이 피면
다사강 강물 위에
시를 쓰고

수선화꽃 피면
강변 마을의 저녁 불빛 같은
시를 생각하네

사랑스러워라
걷고 또 걸어도
휘영청 더 걸어야 할
봄 길 남아 있음이여

 

 곽재구의 < 봄길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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