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1시 20분 드디어 하산을 완료했다.
역시나 여름처럼 땀을 줄줄 흘리면서.
땀을 닦고 탐방센터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일행을 기다린다.
여러 번 와도 이 코스는 정말 재미없다고 하니 그런데 왜 이 코스로 오냐는 말이 돌아온다.
하산길이 짧으니 울며 겨자 먹기로 오는 건데요.
그 직원도 길이 재미없다는 걸 인정하면서
80년대 만들어진 철계단도 등산객이 1년에 몇 십명 수준이던 그 시절에 맞추어 만들어지는 바람에
교행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렇구나.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몇 십 명을 넘을테니 당연히 문제가 되겠지.
콜택시 번호를 부탁해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일행이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도 영 소식이 없다.
쓰레기를 처리하고 벗은 옷도 정리를 하고...
기다리다 지쳐 전화를 드리니 거의 다 내려왔다고 하신다.
오후 1시 45분 일행들이 모두 내려왔다.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하니 오여사가 두 번이나 미끄러지는 바람에 다시 아이젠을 착용했단다.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고, 그러고 보니 콜택시가 와서 기다릴 거라고 하면서
물집이 잡힌 발을 절룩거리며 영각사 버스 정류장으로 가니 택시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다시 전화를 하니 자신이 먼 곳에 있어서 못 온다던 그 분은 다른 택시를 분명히 보냈다고 하시네.
택시를 보내고 전화로 확인을 해 달라고 하니 지금 택시가 올라가고 있다고 하는데 통화 상태가 좋지 않아 잘 안 들린다.
아무튼 택시가 올라오고 있다니 겨우 서울행 오후 2시 30분 버스는 탈 수 있겠군.
조금이라도 거리를 줄일 겸 아래쪽으로 내려가고 있는데 택시가 한 대 올라온다.
부지런히 택시에 올라 기사분의 이야기를 들으니 조금 전에 올라왔다가 우리가 안 보여 그냥 내려갔단다.
전화번호를 알아두고 확인을 했어야 하는데 미안해진다.
서울행 버스를 탈 예정이라고 했더니 버스 정류장에 전화를 해서 표가 있나 확인하란다.
그리고는 점심은 아무래도 빵이나 김밥 등으로 버스 안에서 때워야 할 것 같다는 우리 말을 듣고는
다시 그곳에 전화해서 점심을 차려 놓으라고 하면 10분 정도에 밥을 먹을 수 있을 거라는 정보를 전해 준다.
늦으면 주인이 잠깐 버스를 잡아 놓고 기다린다는 기막힌 '팁'도 함께.
시간이 촉박해서인지 머뭇거리던 정류장측에서는 마지못해 알았다고 했다.
서상 버스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식탁에 차려진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정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다는 말이 맞다.
그런데 5000원짜리 백반이 어찌나 맛있던지 밥은 세 공기밖에 없다고 하는데 게눈 감추듯 먹어치우고
식당 주인이 잠깐 잡고 있는 버스에 올랐다.
오후 2시 30분 출발하는 버스가 미안하지만 우리 때문에 1분 늦게 출발했다.
눈이 스르르 감겨 버스가 고속도로에 오르자마자 잠이 들었다.
버스는 3시간만에 우리를 동서울터미널에 내려놓았다.
오는 동안 생각해 보니 무거운 배낭을 잔뜩 짊어진 산꾼을 한 차에 가득 태우고,
한번은 허탕을 치기까지 한 택시기사분께 무척이나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허탕을 쳤으면서도 불평 한 마디 없고 급하게나마 점심을 먹을 수 있도록 배려해 준 것도 감사하고.
신사장님께서 가 봤다는 맛집을 찾아 주변을 헤매다가 들어간 영덕횟집에서는
무거운 다리를 질질 끌고 돌아다니느라 애썼다며 신사장님께서 저녁을 산다시네.
커다란 접시에 먹음직스럽게 나온 가자미 조림은 입에 착 달라붙을 만큼 맛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일행들에게 택시기사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휴대전화 번호가 있으니 감사 문자라도 보내야겠다고.
작은 일이지만 그런 일이 있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
급하게 계획하고 다녀온 덕유산 눈 산행을 마무리하는 자리이다.
함께 해준 일행들이 있어서 행복했지.
더구나 큰 산은 쉽게 혼자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내가 원할 때 함께 할 친구가 있다는 것은 감사할 일이다.
1박 2일 짧은 일정이었지만 겨울을 제대로 느끼고 자연 속에 흠뻑 빠진 시간이었다.
나무가 내게 걸어오지 않고서도
많은 말을 건네주듯이
보고 싶은 친구야
그토록 먼곳에 있으면서도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부르는 너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니?
겨울을 잘 이겨냈기에
즐거이 새봄을 맞는
한그루 나무처럼 슬기로운 눈빛으로
나를 지켜주는 너에게
오늘은 나도 편지를 써야겠구나.
네가 잎이 무성한 나무일때
나는 그 가슴에 둥지를 트는
한마리 새가 되는 이야기를
네가 하늘만큼 나를 보고 싶어할때
나는 바다만큼 너를 향해 출렁이는
그리움임을
한편의 시로 엮어 보내면
너는 너를 보듯이 나를 생각하고
나는 나를 보듯이
너를 생각하겠지?
보고 싶은 친구야.
이해인의 < 친구에게 >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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