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선두에서 남덕유산을 향해 걷는다.
스틱이 땅을 짚는 소리만 산을 울린다.
역시나 오르막내리막이 이어지고 얼어붙은 길 때문에 방심할 수는 없다.
전에 미끄러운 경사에서 스틱에 힘을 주다가 스틱이 그대로 휘어져 버린 일이 있었지.
비슷한 일이 있었는지 길가에 누군가 부러진 스틱을 던져놓은 것이 눈에 띈다.
그것마저 짐이라고 여긴 모양인데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줍는 사람 따로 있나?
수시로 쉬면서 일행을 기다리는데 뒤따라오신 분들이 쉬고 싶어 하신다.
그러면 오가는 사람도 없는데 여기에서 간식을 먹자고 했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티가 나네.
고문님께서 가져오신 빵에 인스턴트 스프를 마시기로 했다.
그런데 인원은 넷인데 빵 갯수가 10개이다.
시장하다던 신사장님 하나 더 드시고 나머지 한 개는?
이럴 때 나머지는 꼭 내게로 온다.
배가 '빵빵'해졌다.
배낭을 메고 한 걸음 내딛는데 아이고! 금세 배부른 역효과가 난다.
시행착오는 하지 말자 했는데 나머지 하나 더 먹은 것이 내 뒤꼭지를 붙잡네그려.
무거운 몸을 끌고 월성치를 지났다.
어쩔 수 없이 천천히 걷는다.
앞에 보이는 남덕유산 꼭대기에 사람들이 보인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사람들인가 아니면 영각사에서 온 사람들인가?
얼핏 보이는 사람들 모습이 하늘을 배경으로 인형극을 하는 것 같아 카메라를 줌으로 해서 사진을 찍어 본다.
오래 된 카메라라 확대 기능이 약하기는 하지만.
남덕유산 올라가는 갈림길에 섰다.
직진하면 서봉 거쳐 육십령 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오르면 남덕유산 오르는 길이다.
이정표에 기대어 배낭이 둘 있기에 누구 것인가 했더니만 대피소에서 내 바로 아래층에 머물던 커플이다.
남덕유산 오르는데 힘들어 잠깐 배낭을 두고 갔었나 보다.
충분히 이해가 되는 일이다.
남덕유산에서 '인형극'을 하는 것으로 보였던 사람들도 그들이었고.
육십령까지 간단다.
여기서도 무려 8km 이상을 더 가야 한다.
생각만 해도 까마득해 내가 한숨이 나오네.
안전한 산행을 빌며 그들과 헤어져 남덕유산을 오른다.
고작 300m인데 늘 여기서는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이다.
100m마다 쉬는 셈인가.
가다 서고 가다 서고 하면서 오전 11시 15분 드디어 남덕유산(해발 1507m)에 도착했다.
잠깐 쉬는데도 바람이 차서 겉옷을 꺼내 입고 일행을 기다린다.
오여사와 번갈아가며 사진을 찍어주고 있는데 학생과 일행이 도착했다.
부지런히 따라왔네그려.
여전히 입을 일자로 다물고 있는 학생에게
힘들었지만 나중에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라고 말해 주는데도 대꾸가 없다.
학교에 근무하는 오여사는
요즘 자유학기제가 시행되는데 어려움을 극복한 사례로 좋은 소재가 된다고 일러준다.
말해주는 사람이 무색하게 학생은 어떤 말에도 아무 말 없이 일행들과 단체사진만 찍고 바로 영각사 방면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세찬 바람에 추위가 몰려올 무렵 두 분이 올라오셨다.
일행 넷이서 단체사진을 찍고 멀리 지리산까지 한눈에 담는다.
저기가 천왕봉, 저기가 반야봉...
안개 때문인지 희미하기는 하지만 옷감을 펼쳐 놓은 것처럼 부드럽게 출렁이는 산들이 이어진다.
연첩된 산들을 보며 정말 우리나라에 산이 많구나 생각이 든다.
외국인이 우리나라 그림을 보고 산 그림이 많아 고개를 갸우뚱 했단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나라를 와 보고는 고개를 끄덕이더라고.
전국 어디를 가나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것이 산이다 보니 한국인의 DNA에 산이 새겨져 있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그래서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그만큼 많은 것이고.
대신 좋아하면 좋아하는 만큼 아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는 아쉬움이 든다.
어제 점심을 먹은 동엽령에 널린 쓰레기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왔지.
그걸 줍자면 한나절은 걸릴 것 같아 나도 그냥 왔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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