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다 깨다 몇 번 하고 나니 스마트폰에서 알람이 울린다.
일찍부터 먼 길을 서둘러 떠나는 사람들로 대피소는 진작부터 어수선하고.
잠깐이나마 더 누워 있자면서 게으름을 부리다 그만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더워서 잠을 못 잤다는 오여사 말로는 어제 우리 식탁에 밤손님이 다녀갔단다.
먹다 남겨 놓은 소시지가 몽땅 사라졌다고.
주변에 사는 야생 고양이짓 아닐까 싶은데 아침부터 동물성을 먹지 말라는 경고 아닐까.
아침은 어제 남은 밥을 끓여 된장찌개와 간단히 먹는다.
과일도 먹고, 커피도 마시고, 오늘 갈 길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주변에서 아침을 먹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짐을 정리한다.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향하는 곳도 다양하다.
우리가 온 길로 향적봉을 향해 가는 사람, 남덕유산과 서봉을 거쳐 육십령까지 가는 사람,
어디로 갈까 고민하는 사람 등등.
중학생이 된다는 아들을 데리고 온 팀은 고민이 많아 보인다.
아이가 공연히 따라왔다고 부루퉁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육십령까지는 무리이지 싶다.
육십령까지는 어제 온 거리보다 더 멀고 난이도도 더 높으니 신경이 쓰이겠지.
영각사 코스는 남덕유산을 지나면 계속 내리막길이라고 하자 마음이 내키는 눈치이다.
오전 8시 10분경 삿갓재대피소 앞에서 기념사진을 한 장 찍고 남덕유산을 향해서 출발했다.
남덕유산까지는 4.3km.
지도상에 내려가는 길이 올라오는 길보다 시간이 더 걸리는 것으로 나와 있다.
경사가 심하다는 말이겠지.
마음을 다잡고 출발한다.
아침이라 길은 살짝 얼었다.
눈이 녹아서 질척거리는 것보다는 차라리 낫다.
여기서는 넘어져도 옷을 다 버릴 염려는 없으니까.
식재료를 어느 정도 빼고 나니 배낭도 가벼워졌다.
아침을 가볍게 먹어서 몸도 가볍고.
어제 점심과 같은 시행착오는 더 이상 하지 말아야지.
부지런히 발을 놀리다 돌아보면 오여사가 안 보인다.
어젯밤 더워서 잠을 못 잤다고 하더니만 오늘은 속도가 늦네.
어디선가 스슥 소리가 난다 싶어서 바로 뒤에 오나 싶으면 멀리 굽은 길에 오여사가 나타난다.
다른 소음이 없는 곳이라서인지 소리가 참 가깝게 들린다.
오여사를 기다렸다가 갈림길에서 삿갓봉으로 향한다.
모르기는 해도 두 분은 직진을 하시지 않겠나 하면서.
오전 8시 45분, 삿갓봉(해발 1419m)에 올라 시원스레 펼쳐진 山群에 눈을 주고 있는데 두 분이 올라오셨다.
왜 이쪽으로 왔느냐고 투덜대면서.
저는 이쪽으로 올라오시라고 한 적 없는데요.
덕분에 운동 조금 더 하시지 않았나요?
가는 길에 봉우리가 옆으로 살짝 비껴 있으면 고문님께서는 늘 그러셨다.
나는 저기 전에 여러 번 가 보았으니 다른 사람들은 다녀와요.
그래서 이번에도 옆길로 가실 거라 생각을 했는데 따라오셔서 하시는 말씀이다.
저도 여러 번 왔었거든요.
웃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다가 멀리 솟은 남덕유산을 향해서 출발했다.
아직도 갈 길이 머네.
그런데 겨우 1시간 남짓 걸었나 싶은데 속이 허전하다.
누룽지 한 그릇으로 힘을 내기에는 부족한게지.
'나는 왜 이렇게 연비가 안 좋은 거야.' 혼자 구시렁거리며
배낭 옆구리 주머니에서 초콜릿을 꺼내 우물우물 먹는다.
그리고는 물 한 모금 마시고.
가다 쉬고 가다 쉬고...
뒷분들이 따라오셨는데 신사장님께서 시장하시단다.
그럼 여기는 쉴 만한 장소가 아니니 월성치 가서 쉬시지요.
거기는 햇볕도 잘 들고 평지라서 쉬기가 좋으니까요.
그러자 신사장님께서는 내게 몇 번이냐 왔는데 그런 걸 기억하느냐고 하신다.
전에 세 번 와 봤는데요.
사실 산행을 계획하면서 예습 삼아 지도를 보고, 다녀와서 산행기를 작성하다 보면 기억에 도움이 된다.
예습과 복습의 효과겠지.
거기에 앞장서 가이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책임감 때문에도 기억을 하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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