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덕유산 그 너른 雪原에서 20160210 (3)

솔뫼들 2016. 2. 21. 08:57
728x90

 향적봉에서 바글거리던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들이었는지 산길에는 사람들이 반도 넘게 줄었다.

한가해진 길에서 경치를 구경하며 걷는다.

이런 深山에 오면 고층빌딩을 보지 않아도 되어 좋다.

눈[目] 가는 곳 어디나 산이요 들판이다.

거기에 하얗게 쌓인 눈이 빚어내는 경치를 어떻게 내 짧은 언어로 표현할까.

 

 앞을 보며 눈길을 걷다가 문득 故人이 된 이청준 선생의 '눈길'이라는 작품이 생각났다.

실제 자신이 경험한 일을 바탕으로 썼다던가.

어린 시절의 가난 때문에 어머니의 사랑을 애써 외면해 오던 주인공이 아내와 함께 고향을 찾는다.

어머니가 집을 고치고 싶어하는 걸 알고 부담을 느껴 일찍 서울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아내를 통해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머니의 사랑을 깨닫고 마음속으로 화해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왜 그 작품이 생각났을까?

하루가 다르게 건강이 안 좋아지시는 노모 생각이 났을까?

그런데도 살갑게 대하지 못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일까?

 

 

 

 눈길은 끝간데 모르게 구불구불 이어져 있다.

가끔씩 나오는 이정표를 확인하건대 아직도 갈 길이 멀다.

고문님은 일찍 가면 무얼 하느냐 하시는데 아직도 겨울이라 해가 짧고 더구나 산에서는 해가 일찍 지니

마음 편하게 서두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가다가 뒷분들이 어디쯤 오시나 이따금 뒤를 돌아다보며 걷는다.

바로 뒤를 오여사가 따라온다.

선두로 나서라니 그냥 두번째가 좋다고 하네.

가본 길이기도 하지만 이정표가 잘 되어 있고 헷갈릴 일도 없는데...

 

 날씨는 겨울 맞나 싶게 쾌청하고 포근하다.

부지런히 걸으니 금세 땀이 난다.

우모복을 벗고도 더워서 모자 대신 귀마개를 한다.

한겨울에 설산에서 티셔츠 차림으로 걷다니 정말 예측불허이다.

일기예보를 확인하기는 했지만 혹시 눈보라라도 칠까 걱정했는데 정말 杞憂였다.

악천후보다는 나으니 감사할 일이겠지.

 

 

 

 

 백암봉을 지나 생각없이 걷다 보니 동엽령에 도착했다.

벌써 12시를 훌쩍 넘겼다.

전에도 그랬지만 여기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좋겠다.

여기는 안성지구와 송계사지구로 갈라지는 사거리이다 보니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도 전에 그런 것처럼 당일치기로 온 사람들이 주로 이곳에서 하산을 했었지.

 

 일행을 기다려 데크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오늘 점심은 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물을 꺼내고 떡을 얼른 꺼낸다고 했는데 신사장님께서 선수를 치셨네.

빨리 꺼내는 사람이 임자라고 무게를 줄일 수 있는데 이번에도 실패했다.

그나마 나는 물을 많이 마셔서 물통이 비었는데 다른 분들은 통 물을 안 드셨네.

어떻게 물을 안 마시고 걸었느냐고 했더니 신사장님께서는 내가 물 마실 틈을 안 주고 걸었다고 지청구를 하신다.

아니 지금부터 물 마실 시간이라고 알려드려야 하는 거였나요?

 

 

 

 

 리조트에서 많이 먹어서 그런지 시장하지도 않았는데 떡라면을 배 두드리며 먹고 나니 몸이 무겁다.

1시간 남짓 먹고 마셨으니 다시 몸을 일으켜야겠지.

삿갓재 대피소까지 반도 못 왔으니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여기서부터는 정말 산꾼 찾아보기가 어렵다.

멀찍이 떨어져 걷는 우리 일행뿐이다.

호젓해서 좋기는 하네.

 

그런데 이를 어쩐다?

배가 불러지자 자꾸 몸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듯하다.

배낭은 뒤로 넘어질 것 같고 다리는 천근만근이고...

갈 길이 까마득한데 완전히 실수를 했다.

왜 그리 식탐이 많은지 스스로 한심할 지경이다.

그런다고 대신 가줄 사람도 없는데 억지로라도 기운을 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