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산행기

신동엽 문학관에서

솔뫼들 2016. 1. 1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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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형!

 

이번에는 신동엽 문학관으로 이동하오.

사실 부여에 오기 전에는 신동엽 시인이 부여 출신이라는 걸 몰랐습니다.

어쩌면 부여의 이 깊고 깊은 느낌과 어울리는 시인이라는 생각도 드는군요.

 

유장하게 흘러가는 '금강'을 노래한 장시도 그렇고

울림이 커다랗게 다가왔던 '껍데기는 가라'는 시도 그렇고

대학시절 한동안 시인이 어떤 사람인가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더랬습니다.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東學年)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신동엽 문학관을 찾아가니 나즈막한 집들이 골목을 이루고 있는 동네와,

그리고 신동엽 시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주변과 조화를 이루고 상징적인 인물을 잘 드러내는 건물을 누가 설계했을까 궁금했지요.

그리고 나서 자세히 보니 승효상이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었습니다.

건축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답사차 자주 들른다고 하더군요.

 

신동엽 시인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6.25전쟁과 분단 그리고 4.19혁명을 모두 겪었지요.

역사의 격랑기를 지나오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유순해 보이는 얼굴이지만 속으로는 세상을 향한 끊임없는 열정을 가졌다는 작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들이 그대로 그의 시에 녹아 있는 듯 하지요.

 

 

문학관을 돌아보니 참으로 많은 것들이 잘 보존되어 있군요.

40년을 채 못 살고 세상을 떠난 시인의 유족들이 어떻게 관리를 했는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짚풀생활사박물관을 운영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부인 인병선 여사도 기억이 납니다.

많은 것들이 물질주의에 밀려 사라지는 시대에 향토적인 것을 자신의 업으로 삼고 평생을 사는 분이지요.

지푸라기 할머니로 불리는 부인과 시인은 천생연분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학관을 나오니 마당에 깃발처럼 시가 나부낍니다.

누가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바람에 나부끼는 시를 표현한 사람은 작가 임옥상이군요.

임옥상이 부여 사람이라는 것도 이번에 알았습니다.

임옥상의 작품이 가끔 직설적이라 부담스럽기도 했는데

이 작품을 보니 그런 마음이 눈 녹듯 사라집니다.

 

 

겨울 하늘에 나부끼는 시를 읽다가 시인의 마음과 만났습니다.

시인이 원하던 것처럼 세상이 변하면 얼마나 좋을까요?

문학관을 나오니 바로 옆에 시인 생가가 있습니다.

한때 형편이 어려워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다가 유족이 다시 매입해 부여시에 기증을 했다고 하네요.

고마운 일이지요.

그런 정성이 있었기에 이렇게 시인을 떠올리고 그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소박한 생가를 들여다보다 발길을 돌립니다.

아침 일찍부터 너무 바쁘게 돌아다녔군요.

점심을 먹었지만 차 한 잔 마실 틈도 없었습니다.

신동엽 문학관 들어오는 골목 어귀에 작은 찻집이 있었던 생각이 나서 발걸음을 옮깁니다.

 

 

문학관 옆에 게스트하우스가 있군요.

시인을 찾아온 사람들을 위한 공간 같아 보입니다.

시인의 생가와 문학관을 돌아보고 이 게스트하우스에 묵으면서 시대와 시를 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지 않나요?

시인의 시가 담벼락에 씌어 있는 게스트하우스를 바라보면서 이 골목과 문학관, 모두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합니다.

 

 뜨거운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부여 거리를 내다봅니다.

한적한 고을입니다.

車가 아니고 말 그대로 '뚜벅이'로 여행을 해도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종일 걸어다녀도 원하는 곳은 거의 훑어볼 수 있는 곳 말입니다.

그런 여행지가 많지는 않아 더 정겹게 느껴지는, 여기는 부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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