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눈 구경을 할 수 없었다.
도시에서는 물론이고 산에서도.
답답하던 차에 갑자기 호남지방에는 눈이 많이 내렸다는 생각이 났다.
서울둘레길을 걷던 날 생각난 김에 일행에게 덕유산 산행을 제안했다.
한 명이라도 동조하면 그냥 떠나자고 생각을 하면서.
일정을 잡고, 일행이 정해지고, 대피소 예약을 하고, 교통편 예약에 준비물 분배까지
급속도로 진행이 되었다.
가끔은 이럴 때도 있는 거지.
설 연휴 대체 휴일인 수요일 새벽 4시 25분 집을 나섰다.
칠흑같이 어둡다는 말을 실감하면서 묵직한 배낭을 메고 나서는데 四圍는 온통 고요하다.
이렇게 이른 시간 집을 나서는 것도 참 오랜만이다.
교통편이 걱정되어 콜택시 전화번호를 알아 두었는데 다행히 바로 택시를 만났다.
택시기사분도 집을 나온 지 10분만에 손님을 바로 만나 즐거운 표정이다.
사당역에 도착한 시간이 오전 4시 47분.
그런데 고문님께서 벌써 와 계시다.
댁이 가깝기는 하지만 부지런도 하시네.
새벽이라고 해도 예상보다 춥지 않은 날씨라 버스를 기다리는데 부담이 없다.
오여사도 버스가 기다리지 않고 떠날까 봐 걱정이 되었는지 일찍 나왔다.
버스는 우리를 태우고 종합운동장으로 간다.
거기에서 각 방면 스키장으로 가는 버스가 모여 출발하는 모양이다.
무주리조트행 버스로 갈아타고 신사장님을 기다린다.
신사장님도 일찍 오셨는데 주차장을 못 찾아 헤매셨단다.
버스에 앉아 있으려니 6년 전 엉뚱하게 버스를 잘못 타는 바람에 강원도 하이원 리조트로 갔던 생각이 난다.
하이원 리조트에서 셔틀버스를 이용해 고한버스터미널까지 가서는 원주를 거쳐 대전, 그리고 무주까지
우여곡절 끝에 한 나절을 꼬박 버스를 갈아타고 갔었지.
귀숙씨는 무주리조트에서 우리를 기다리느라 지루하게 고생을 했고.
그때는 황당하고 한심했지만 지나고 나니 절대 잊을 수 없는 기막힌 추억이 되었다.
오전 5시 53분 버스는 무주리조트를 향해 출발했다.
버스 안에 사람들이 많지 않아 널찍하게 자리를 잡고 바로 잠에 빠진다.
지난 밤 버스 시간에 늦을세라 잠을 거의 못 잤으므로.
그리고 오늘 밤에도 대피소에서 숙면을 취하는 것은 무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버스는 오전 8시 30분경 우리를 무주리조트에 내려 놓았다.
벌써 흰 눈[雪]이 눈[目]에 들어오니 기분이 들뜬다.
물론 스키장이니 인공설도 섞여 있기는 하겠지만.
고문님께서 예약하신 곤돌라 티켓을 확인하고 남은 시간 간단히 아침을 먹기로 했다.
푸드 코트로 향하는 도중 생명보험회사에서 하는 이벤트에 참여해 선물도 받고.
아침으로 우동을 먹고도 허전해 신사장님께서 준비해오신 빵까지 커피에 찍어 먹고는
배낭을 멘다.
우리 말고도 등산객들이 꽤 눈에 띈다.
이제 백련사쪽으로 오르는 사람은 거의 없는 모양이다.
거리가 멀기도 하고 무척이나 재미가 없기는 하지.
설천봉까지 곤돌라를 이용해 오르고 거기에서 향적봉까지만 관광 삼아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식생이 망가지는 부작용이 생겼다고 환경단체들은 주장한다.
한번 망가진 자연은 회복하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므로 이런 시설물 설치는 신중하게 결정할 문제인 것은 틀림이 없다.
우리도 손쉽게 해발 1000m가 훌쩍 넘는 설천봉까지 편하게 시설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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