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그마한 문고판 책을 연속해 손에 들었다. 내용도 충실하고 들고 다니며 읽기도 편해 좋다. 80년대 한동안 문고판 책이 유행을 하더니만 어느 틈에 자취를 감추고 보기에 좋은 하드커버 장정의 책이 매대를 장식하기 시작한 듯하다. 책값만 비싸고 무거운데... 그러더니 조금씩 실용적인 면을 감안해 이런 책이 다시 나오는 것 같아 반갑다.
제목이 '책쾌 송신용'이다. '책쾌'라는 단어는 처음 들어 보았다. 물론 책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려니 하는 짐작이야 하지만 서적 중간상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물론 단순히 책을 사고 팔도록 중개해 주는 역할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나름대로 서지학이나 책에 대한 애정, 그리고 전문적 지식이 갖춘 인물이었던 모양이다. 저자는 책쾌 송신용을 그리며 이렇게 표현한다.
해방 후 송신용은 전방위적으로 활동했다. 이 시기 그의 활약상을 보면 그를 단순한 서적 중개상으로 불러도 될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그는 서적 중개상이자, 학자이자, 문화 보존에 열렬한 관심을 보인 위인이었다.
송신용 같은 인물이 있었기에 그나마 우리의 고서가 일본으로 유출되는 것을 어느 정도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서적 중개상으로 머문 것이 아니라 책의 내용을 보고 보충하고, 주를 달 정도였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학자였다는 말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기의 직업에 대해 나름대로 자부심을 갖고 늘 자신이 '책쾌'라고 했다는 것을 보면 존경심이 절로 우러난다. 그리고 학연(휘문의숙)을 중심으로 전개된 그의 인맥도 그가 책을 사고 파는데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최남선이나 전형필, 박종화, 이병기, 오세창 그리고 종로에서 한남서림을 운영했던 백두용 등과 교류하며 비록 상인이기는 하지만 좋은 고서가 나오면 값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것을 지키는데 공력을 들이는 사람들에게 먼저 팔려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으니 그 시대에 방법은 달랐지만 확실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고전 중에서 지금 그의 손을 거쳤기에 남은 것들이나 그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 필사를 했거나 출판을 했거나 - 것들을 보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직업인 송신용의 위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전문가란 모름지기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일에 대한 소신이 사람을 얼마만큼 자신만만하게 만드는지 말이다. 책의 홍수 속에 살면서 때로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하나 고민할 때 송신용 같은 안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물론 그런 안목이 아무런 노력 없이 저절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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