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연구가 김재일의 '산사의 숲, 바람에 물들다'라는 책을 손에 들었다. '108 사찰 생태기행' 네번째 책으로 사찰 주변의 생태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여 남기고자 하는 마음에서 책을 내었다고 한다. 미사여구나 지나친 감상에 빠지지 않고 담담하게 후손에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서 쓴 글이라는 사실을 읽는 동안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우리나라의 국립공원이나 넓은 숲은 대부분 사찰과 관련이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찰 주변만 꼼꼼하게 살피고 다녀도 충분히 생태 공부를 할 수 있을 정도가 될 것이다. 일례로 해인사 같은 경우는 뒷산인 가야산의 꽤 많은 부분이 사찰림이다. 그래서 가끔씩은 국립공원 관리공단과 갈등을 빚기도 하는 모양이다. 사찰들이 자연 그대로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하면 규모를 넓히려는 확장주의에 빠지든지 아니면 신도수를 늘리기 위해 주변을 포장하고 나면 주변 생태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사찰림도 사유림이다 보니 국립공원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누구도 말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도 그런 일을 부채질하고.
그래서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희양산 봉암사 주변은 특별히 관리가 잘 되었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禪風을 세우기 위해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수행 도량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지만 결과적으로 사람의 발길과 차량들에서 멀어지니 자연스럽게 자연은 제 모습을 간직할 수 있게 되었으리라. 山사람으로서 부처님 오신 날은 개방한다는 말을 듣고 희양산은 찾았다가 산에서 내려가는 길을 막는 바람에 엄청나게 고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그런 이유로 자연이 살아있다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는 사찰과 숲 사이에 화재가 났을 경우 불이 더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防火林이 조성되어 있는 곳이 많다는 것이다. 물론 옛날 유서 깊은 절에서 부처님 도량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결과적으로 숲도 보호할 수 있게 된 것이다. 樹種 중에서 화재에 강한 나무를 골라 심는 지혜를 확인하면서 안도의 마음이 들었다. 지금 우리 현실에서도 멀리 내다보는 안목으로 다른 일도 그렇게 추진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밝아지지 않겠는가.
책을 읽으면서 사찰 주변의 생태가 생물들에게 비오톱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다. 대충 알고는 있었지만 '비오톱'이라는 용어에 대해 찾아보게 되는 계기가 되어 새로운 것을 알게 된 기쁨도 컸다. 나무와 풀, 양서류와 파충류, 그리고 곤충과 산짐승까지 망라하는 시각으로 사찰을 찬찬히 돌아보며 조근조근 건네는 작가의 이야기에 빠져 나도 모르게 어느 사찰로 떠나볼까 마음이 공연히 들뜨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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