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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뱀

솔뫼들 2011. 8. 30.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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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뿔뱀'이라는 제목의 책을 읽었다. 연암 박지원의 생활을 일부 바탕으로 해서 씌여진 책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연암은 다산과 더불어 시간이 흐를수록 조명을 받는 인물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실학파라거나 '양반전', '허생전' 등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한 소설로 그를 기억하지만 낮은 직책일 망정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면서 백성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더 낫게 하기 위해 그가 고민하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물건을 고안해 도움을 주는 것은 먼 후일 내가 읽어도 참 기분이 좋다.

 

 목민관으로서 그는 자질이 차고 넘쳤다. 다만 시대가 그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어느 시대이든 선구자란 늘 그런 것 아닐까? 그의 파격적인 문체에 반해 본받으려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정조는 어쩔 수 없이 문체반정을 거론하고 연암의 문체를 따르는 일명 '백탑파'에게 자송문을 지어 올릴 것을 명한다. 일부는 한양에서 명령을 따르지만 연암은 멀리 안의에 있어서 슬쩍 비켜갈 수 있었다. 하지만 임금이라도 정조 혼자만의 힘으로는 노론 세력을 좌지우지할 수 없었는지 화성 천도 계획 등 여러 가지를 실천에 옮기지 못 한다.

 

 어떻든 연암은 좌천된 듯 내려간 안의에서 선임 현감들이 처리하지 못 했던 일들을 말끔히 처리해 백성들로부터 칭송을 받는다. 또한 의식주 해결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는 생각에 치수를 통해 식량 생산을 늘리고, 정미소를 만들어 여인들의 일손을 덜어주고, 길쌈을 돕기 위해 물레방아처럼 실을 잣는 기계를 만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이권에는 전혀 개입하지 않고 오직 백성들의 몫으로 하니 어느 누가 마다할 것인가. 또한 안의는 산골 지역이니 농한기에 약초나 산나물을 캐어 외지에 내다 팔면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에 한양이나 대구 등 판로를 개척하는 등 오로지 백성들의 입장에서 보고 생활하려고 노력했던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그가 청백리로 살다가 안의를 떠날 때 여비도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말 한 마리 없이 주유하듯 휘적휘적 떠나는 모습은 쓸쓸하다. 또한 녹록치 않은 살림에 자신을 보살펴준 자미라는 여인에게 선물 한 가지 해주고 싶었을텐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내 마음이 찡하다. 물론 소설 속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요즘의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연암의 이런 모습을 본받으면 얼마나 좋을까 헛된(?) 생각을 한다. 신문지상에 연일 선거법 위반이나 뇌물죄, 공금횡령죄로 거론되는 단체장들의 모습은 이미 목민관의 모습이 아니다. 그저 자기 배 채우기에 급급하고 명예를 좇기에 바쁜 사람들을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우리네 국민들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선정비나 공덕비는 자기 손으로 그 지역을 떠나면서 손수 문구를 만들기도 했다니 새삼스럽게 지금까지 전해오는 그런 비문이 우스워질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인산이 더 우러러 보이는 것 아닐까? 혼자 떠나는 길이라도 만 명의 백성들 서명이 적힌 만인산이 있다면 무엇이 부럽겠는가? 단숨에 읽어내려간 책에서 다시 한번 연암을 면모를 확인하면서 세월이 흘러도 존경과 흠모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이 이 시대에도 있을 것인가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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