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솔뫼들 2005. 12. 18.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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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한 영혼을 위하여

                                          고정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 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물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이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 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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